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Jul 29. 2019

그 모든 순간 너에게

진정한 직구는 너에게 직접 표현하지 않았던 모든 순간이었음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좋으니까

무리는 하지 말아줘


일 년을 기다렸단 말이야

알 수 없는 시간은, 때로는 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금방 내 앞에 데려놓기도 하고

때로는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게도 했어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늘 복잡했던 인생을, 조금 더 복잡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거든

그래서 더 만나고 싶었어, 기회가 닿는다면


그렇게 일 년 만에, 어쩌면 정말 우연히도 딱 일 년이 되어 돌아오던 이 시기에

내가 다시 널 보러 돌아가게 되었을 때

오기 전에는 많이 망설였고

도착해서도 온 것이 잘한 결정이었는지

그냥 그곳에서 망설임 속에 있어야 했던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꽤 오랜 시간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금요일 저녁을

너와 보내기로 약속을 잡았을 때의

나의 마음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눈물이 마르면

웃음이 피어나

자, 벌써 웃고 있잖아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서

너를 만나러 가기 전

그냥 가만히 바다를 보면서 앉아 있었거든

하늘은 그래도 밝은데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고

다행히 지붕 아래 벤치를 찾아 바다에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다가

너를 만나러 회사 근처로 갔어, 작년과는 다른 장소로


나는 너와 만나기로 한 책방 옆에서

다시 멈춘 공기 속에서

내가 걸어온 횡단보도 앞에서

우연히도 네가 걸어올 방향을 바라보면서


네가 손을 흔들며 올 때에도 한층 어른스러워진 모습에

너를 몰라봤어, 그 환한 미소를 보기 전까지는



망설이는 데에는

미래가 있으니까


너무 오랜만이라

못 알아봤다는 나의 말에

너는 언젠가부터 보이기 시작한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그래도 너는 마지막으로 본 지 얼마 안된 거 같다며

그렇게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고른 곳으로 데려갔어


작년과 올해, 너와 밥을 먹으며 느낀 건

너와 함께 밥을 먹으러 들어가면

왠지 그냥, 연인인 기분이더라


그 도시 특유의 무언가가 있는 걸까

그냥 무언가, 너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널 바라봐온 시선과 비슷한 거 같아서

그래서 난 조금 설렜거든, 그날도 그랬듯이



눈부심에 지지 않는

용기를 갖고 싶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 중 한 곳이라고 소개한 곳은

입이 짧은 나도 좋아할 만큼 정말 맛이 있었고

비가 꾸준히 조금씩 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우리밖에 없던 그곳에서

일 년 만에 만난 넌

일 년 동안 많이 성장했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지금 있는 곳에 만족하며, 지금 하는 일에 성실하며

너의 삶에 감사하고 있었어

그게 너의 진심이었어

보통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들어갈 때 품고 갔던 열정은 사라지고

괜히 이 길은 아닌 거 같고, 다른 곳에 눈길이 가고 그러기 마련인데


그래, 내가 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너의 모습이

너의 삶 모든 면에 스며 있더라



너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네가 꼭 데려가고 싶어 하던 카페로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면서

요번 만남에서 한 가지 전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그건 아마, 솔직함이었던 거 같아


여느 때보다 솔직해지고 싶었어

솔직하게 나 자신과 너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어

그렇게 시작되었던 걸까



이어지는 감촉을 계속 확인해 가

지금 이야기는 begin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나에 대한 나의 솔직한 이야기와

너에 대한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솔직해서 너의 눈을 직접 보고 하지 못한 이야기를


어릴적 나는 그냥, 네가 조용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너는 되게 성숙했던 친구 같다고

내가 너의 성숙함을 미처 맞추지 못했던 거 같다고


나는 너를 그냥 조용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내가 이제서야 조금씩 갖추어 가고 있는 모습을

이미 그때부터 갖추고 있었던 거 같다고



눈동자를 외면하고

피하는 거니

그래도, 나는 좋아해


"너는 정말 솔직한 거 같아

직구야"



떨어져 있어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건 그래

추억이 있으면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을 

친구로서 친구에게 한 것뿐인데, 

계속 웃던 널 보면서

진짜 직구를 던져 볼까

그러면 우리는 여기까지일까

아니면 여기서부터일까



어제 또 안녕이라 말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시간은

헛된 것일 뿐이니까


직구라는 너의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아서

지난 일 년, 무엇이 힘들었는지

너와 함께하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 달라진 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내가 되었는지

너와 직접 마주 본 채 얘기를 하게 되더라



식지 않는 미열만

주체하지 못하고


이전에는 분명

너보다 내가 너를 더 오래 보고

네 눈을 더 오래 찾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나보다 네가 나를 더 오래 보고

내 눈을 더 오래 찾으며


흔들리는 눈동자에

약해지는 마음에

나는 너를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감각을

더욱 더해 나가

지금 그대와 난 begin


작년과 이야기가 좀 달라졌지?

작년에는, 고민을 한가득 안고 왔지만

그때는 이런 고민이 아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꺼낸 이야기인데

딱히 지금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닌데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점점 흔들려 버려서

 


사실은 나도 똑같아

밤의 어둠에 두려워하고 있어


그러면 나는 나의 시선을

그 흔들림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을

너와 다른 곳에 두고선


찢어진 마음 위에 애써 정성스럽게 덧칠을 해보아도

티가 나는 나를 보면서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혼자가 아니야


그 사람들이 너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모르고 했을 거라고

마음에 담지 말라는 너의 말에

그 사람들은 일부러 최대한으로 상처를 주기 위해 했던 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잠시나마 너의 그늘에서 위로가 되어서



그래도 혼자가 아니야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얘기에

일어나서 카페를 나와 동네를 걸으며

역까지 바래다주는 길



떨리는 너의 손을

꼭 잡고 있을 테니까


그 모든 순간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는 주제처럼



이어지는 감촉을

계속 확인해 가

지금 이야기는 begin


그 모든 순간 나는 너에게


오히려 진짜 직구는

너에게 직접 표현하지 않았던

모든 순간이었는데


너를 만나러 달려간 그 길

너에게 우선순위가 맞춰져 있던 일정

너의 회사 앞에서 너의 퇴근을 기다리던 시간

무심한 듯 던져도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놓은 기억

누군가에게 보이기 부끄러웠을 수도 있는 모습도 보인 솔직함

네가 사는 그 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같이 가기로 하는 약속

헤어지기가 아쉬워 마감 시간까지 돌리지 못하는 발걸음



지금 이야기는 begin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는 주제처럼

그 모든 순간 나는 너에게


너에게 그렇게 표현했던

그 모든 순간이

내가 너에게 던지는

직구였는데



그걸

모르는 너에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한 주를 보내니

지난주 이 시간에 나는 너와 함께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놓을 수가 없어서


지난주 이 시간에는

지난주 이즈음에는


그곳에서, 너와 함께



지금 이야기는 begin


아주 긴 시간을 친구인

그리고 지난 몇 년 마음에 품게 되어버린

너를 만나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식지 않는 미열만

주체하지 못하고


지난 주 이 시간, 이 즈음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졌구나


어른이 되어 비로소 친구가 되는

나이가 들어 비로소 마음이 맞는 인연들이 있는데

네가 그런가 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는 주제처럼

그 모든 순간 나는 너에게



두 사람의 운명을

조심히 더해 나가

지금 둘이서 begin


그 모든 순간

나는 너에게




Reference. Begin - 동방신기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https://pixabay.com/)

이전 24화 바람이 전해주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