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Jan 15. 2022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가 달라져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장례식장을 나와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내 당신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당신을 봤다는 안도감보다 당신이 견뎌야 할 시간에 대한 걱정이 점점 마음을 압도하기 시작해 마치 당신과 내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있듯 머릿속에서 또 마음속에서 당신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새벽 공기가 내려앉던 시간, 당신에 대한 염려를 당신에게 연락해도 된다는 명분 삼아 한 글자 두 글자 적었다가 고쳤다가, 또 적고 다시 고쳐내려 갔다. 잘 버티고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는 약속으로 끝난 글에 나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그날 나는 그 가느다란 실이 풀리기 전까지는 위로가 되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사로 출근해 오후에 있을 중요한 회의를 준비하며 보니 오늘 회사분들이 많이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회사에서 잘 살아왔는지 당신을 챙기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근데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당신이 회사로 복귀할 때까지는 매일 잊지 않고 연락을 해야겠다 다짐했는데 하루를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니 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톡 창을 켜서 확인해보니 당신은 아직 내 연락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혹여 귀찮지 않을까, 혹여 성가시지 않을까, 혹은 마음이 문자에 그대로 나타나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어제 당신의 얼굴을 보고 깊어진 걱정보다 오늘 당신의 반응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해 지하철 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10년 전 나는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10년 전 나는 내 마음에 있어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당신에게 연락했을 텐데.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6시를 넘기고 6:30으로 달려가던 순간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었고 그 시절 나의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어폰 너머 퇴근길 가끔 듣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 2주 즈음 전 주말,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가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사연을 보냈었다. 가끔 보내면 종종 당첨이 되어 사연이 나오곤 했는데, 이제까지의 패턴으로 보아선 채택이 되는 경우 보통 일주일 이내에 사연이 나오길래 이번에는 아닌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고 있었다. 그러다 그 순간, 6:19:34, 만약 오늘 라디오에서 선배에 대해 보낸 사연이 나온다면 연락해도 된다는 하늘의 사인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베팅을 해보자 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10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이미 2주나 지나 이제는 사연이 나올 가능성이 없는데 이런 베팅을 한다는 건 애초에 가능성을 없애고 시작하는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


6:30:00. 광고가 나오고, 그다음에 뉴스가 나오고, 그러다 코너를 시작하는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고, 이어 DJ가 내뱉은 첫 단어에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건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한 내 손 끝에서 적힌 문장이었다.  


6:40:00. 사연이 끝나고, 신청곡이 나오고, 댓글창은 결말이 어떻게 됐냐는 질문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는 응원으로 도배되어가고 있는데 10분 즈음 편성된 그 시간 동안 나도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해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때 올린 사연이 오늘 나온다고? 지금 정말 이렇게 나온다고? 그러면 나는 이제 하늘의 뜻이라 믿고 연락을 해도 되는 건가. 그럼에도 이 상황이 황당해 용기가 나질 않아 다시 한번 라디오로 문자를 보냈다.


"뭘 물어봐요. 지금 빨리 거기로 가요. 빨리요. 한 시간이라도 30분이라도 10분이라도 먼저 가서 정말 갑자기니까 지금 너무 식구들 당황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텐데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하세요. 거기서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갈 생각 하시고, 정말 그런 거 있잖아요 음식도 나르고 하여튼 사람 손이 필요한 데잖아요. 그러니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요 거기서. 머리 질끈 묵고, 외투 벗어서 걸고, 앞치마를 두르던 뭘 하던 무조건 일을 하고 선배도 꼭 안아줘요. 지금 같은 때는 필요한 거예요. 아우 왜 물어봐요, 빨리 가요. 물어볼 시간이 어딨어. 여러분도 제 생각과 같죠? 빨리 가야 하는 거 맞죠? 더군다나 지금 선배가 제일 힘든 때인데 그때 같이 있어줘야죠. 빨리 가요. 거 봐요, 지금 게시판에 계속 빨리 가시라고, 당장 가시라고 사연이 계속 올라오고 있잖아요.


이상하게 그런, 아주 오래전이지만 제 후배 하나가, 거긴 이제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그냥 계속 만날까 말까 정도였대요. 딱히 이 사람이다 하는 마음이 안 들었는데, 그 친구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편찮으시긴 했어요. 온 가족이 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는데, 근데 그때 아버님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또 어떻게 그때 마침 그 사람이 연락을 해온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정말 무슨 이 집 사위처럼 소개팅 한번 한 것뿐인데 장례 기간 내내 자기가 올 수 있는 모든 시간에 와서 일하고 위로해주고, 그게 그렇게 고마웠대요. 그래서 결국 결혼해서 지금 애 낳고 잘 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 인연은 정말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른 달려가요."



살면서 한번 즈음 온 세상이 다 응원해주는 듯이 우연이 연속되어 신기한 인연으로 이어질 때가 있는데, 나는 이미 오래전에 도착한 집 앞 지하철역 벤치에 앉아 계속해서 올라오는 댓글들과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DJ의 응원을 가만히 읽고 또 듣고 있었다. 10년 전이었으면 이런 응원 없이도,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말렸어도 내가 먼저 뛰어갔을 텐데 10년 뒤 지금은 이런 응원을 듣고도 선배 옆에 보낼 수 있는 건 마음뿐이었다. 오늘 내가 내리는 결정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도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고 나는 10년 후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런 고민들로 지하철역 벤치에 앉은 채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그다음 순간 본 나는 이 모든 고민을 가방에 넣어둔 채 택시가 아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도 잘 버티고 있어요? 겨우 하루니까 아직 그대로 힘들죠?  

어제는 내가 첫날밤이 제일 힘들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모든 이별은 둘째 날 밤이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갈 수 없었다. 다시는 운명을 내 손으로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기에, 그 모든 사람들의 응원을 입고도 갈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맺는다 한들 나의 것이 아니면 결국 끊어지는 것이 사람의 연이었고, 그걸 한번 더 할 자신이 없는 게 나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입고도 그저 당신에게 마음을 문자로 대신한 채 그날 당신 곁으로 가지 못했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택시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시간이라도, 30분이라도, 10분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 누군가에게 연락해 잠깐 밖으로 나올 수 있냐고 묻고 곧 택시가 도착한 곳에 내려 나는 어딘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10분이라도, 5분이라도, 아니 5초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저 멀리 불이 켜져 있던 건물 앞으로 달려가니 어제 봤던 짙은 상복 차림의 소년이 시선을 땅에 둔 채 가만히 서있었다.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도 옷매무새도 다시 만질 겨를 없이 소년 앞에 서게 된 순간 나는 소년을 품에 소중히 끌어안았다. 소년을 꼭 끌어안았다. 품에 안으니 어색한 상복 뒤 그동안 얼마나 추웠는지 떨고 있는 것이 느껴져 잠시 동안 당신은 나의 소년이 되고 나는 당신의 보호자가 된 채 우리는 그 순간 그대로 멈추었다.



괜찮아?

괜찮아.

힘들지?

응, 힘들어. 알아?

응, 알아. 다 알아.



당신이 한번 그런 나의 모습을 알아봐 준 적이 있었다. 겨울보다 춥던 여름날, 회의실에 미리 가 준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복도를 지나가다 내가 서있던 자리 즈음에서 멈춰서는 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그날따라 그 시선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몇 초 후 고개를 돌려 보니 당신이 복도 밖 나와 선을 맞춰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찡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힘들지, 이런 눈빛으로. 알아 너 힘든 거, 이런 마음으로.



알아?

응, 알아. 너 힘든 거 알아.

네 마음 다 알아서, 네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자꾸 네 얼굴이 마음에 걸려.

펑펑 울어야 해. 마음속에 슬픔이 다 충분히 밖으로 나와야 해. 그래야 병이 덜 나.

그래야, 병이 덜 나.



그래서 나도 그냥 당신 곁에 있고 싶었다. 당신 옆에 있고 싶었다. 그냥, 당신이 잠깐 고개를 들었을 누군가 보이길 바랐고 온기가 느껴지길 바랐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길 바랐다. 꿈속에서 보았던 우리의 모습은 사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또 잠에 들기 전 머릿속으로 그렸던 내가 결국 선택하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소년의 두 눈을 보면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담아두고 있었을 눈물이 가득 차 있었을 텐데,

꿈속에서 보았던 그림이 만약 꿈이 아닌 어젯밤 두 눈으로 보았던 모습이었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가 달라져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가 달라져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3.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가 달라져,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그해우리는 #최웅 #국연수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