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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2. 2024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을 때

연애*사랑*결혼

난 고시생이야.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그래서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지금은 돈도 많지 않아. 그래서 직장에 다녔던 그녀가 나한테 많은 걸 줬어. 난 그런 그녀에게 사랑도 믿음도 주지 못했어. 결국 지금은 헤어졌어. 서로 너무 사랑했지만 헤어져버렸어. 우리가 그렇게 많이 싸우고 다투니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내가 왜 이렇게 싸우면서 이 여자랑 만나야 되지? 그리고 그녀는 날 떠났어. 날 사랑한다고. 나랑 있으니까 너무 좋다고. 하지만 지금 너무 힘들다고. 날 방해하는 것만 같고 지금은 자기가 너무 힘들다고. 그냥 편안하게 사랑받으면서 사랑하고 싶다고. 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 일기를 적고 있어. 그녀에게 표현 못했던 그동안의 사랑과 지금의 내 마음을 하루에도 서너 번씩 노트를 펼쳐서 쓰고 있어. 나중에 한 권이 완성되면 일기장과 그렇게 사달라고 조르던 반지와 좋은 노래들을 골라서 직접 만든 시디랑 주려고. 내 마음을 다시 받아달라고? 아니. 물론 그런 마음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지금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면 그녀의 전부를 사랑해야 하니까. 소유해서는 안 되니까. 그냥 단 한 번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랬어. 
...




지금 하루에도 서너 번씩 펼쳐서 쓰고 있는 그 노트가 완성될 때쯤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애를 가져서 배가 불러올 겁니다. 그렇게 사달라고 조르던 반지, 좋은 노래를 골라서 직접 만든 시디가 필요한 게 아니고 그녀가 필요했던 것은, 당신이 필요했던 거죠.


연애를 할 때 바쁜 상황에서 연애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안 보면 멀어지는 게 사람이라고 바빠서 자꾸만 안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위에서 저 둘이 과연 어떻게 연애를 해서 어떻게 결혼을 했단 말인가 싶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커플들을 봅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업이나 생활환경, 패턴 등을 보면 하루에 1분, 일주일에 5분 보기가 힘든 커플이었을 텐데 저 커플은 계속 갑니다. 남자나 여자 중에 한 명이 유학을 가서 1년을 못 봤는데 그 커플은 갑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주 박하기는 하지만 귀하게 둘이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라도 있다면 그 커플은 가능해야 맞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남자가 2년 동안 유학을 가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트러블도 없고 사랑의 변화도 없었다. 근데 막상 남자가 한국에 돌아와서 매일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그 커플 깨진다. 이런 상황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연애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 없다 볼 수 있다 없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들이 분명히 깨달아야만 이런 연애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떤 조건이 굉장히 부족할 때. 만약 상대방을 위해서 내가 시간을 내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상대방도 그것을 알 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위 중의 하나는 미안해하는 겁니다. 뻔뻔해져야 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그냥 지나치는 겁니다. 미안해하지 않는 것과 그냥 지나치는 것은 다릅니다. 미안해하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건 나쁜 겁니다. 그냥 지나치지는 않되 미안해, 미안해.. 이걸론 상황이 해결이 안 된다는 거죠.


저도 비슷한 경우를 굉장히 많이 겪어봤습니다. 당장 내일 스케쥴이 뭔지를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연예인 활동을 하다 보면 굉장히 얼굴 본다는 게 가뭄에 콩 나듯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제가 저지른 잘못은 뭐였냐면,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내주지 못한 것이 아니고, 그녀를 내 주위에서 밀어냈다는 것이 제일 나쁘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고시공부를 한다고 하셨는데 고시 공부를 해서 볼 시간이 없고 바쁜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미안해. 나 바쁘니까 이번 주 주말에는 꼭 보자’ 이럴게 아니라 고통을 분담하라는 겁니다. ‘나 지금 힘들고 바빠 죽겠으니까 아주 아침 되면 밥도 못 먹고 무슨 국이라도 싸들고 와봐바’. 껴 주라는 거죠. 자신의 고통과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뭔가에 일에.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녀가 하고 있는 뭔가의 일에 서로 끼어들라는 것이죠.


제가 20살 때 연애를 실패했을 때로 되돌아간다면, 이렇게 할 겁니다. ‘나 이번 주 스케줄이 서른몇 개가 꽉 차있어. 못 볼 거 같아. 미안해’ 이게 아니라, 전화해서 ‘야, 나 지금 아침도 못 먹고 튀어나오는 길이거든. 나 지금 너희 집 지나갈 건데 너희 엄마한테 얘기해서 김밥이든 샌드위치든 뭐든 싸 오란 말이야’라고 얘기해서 집 앞으로 불러내서 여자친구 바쁘고 학교 가야 되는데 학교 지각하고 나 김밥 싸주느라고 학교 못 가요. 떼를 쓰면서 난리를 치는 거죠. ‘나 배고파!! 굶고 일하잖아!’ 그러나 내가 힘들고 배를 곪아가면서 일을 하고 바쁘고 지치고 입술이 부르트고 이럴 때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내 여자친구에겐 그 고생 안 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반드시 그 연애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더라는 겁니다. ...


바쁘고 힘들 것 같지만 함께 하고 있는 거거든요. 떼를 쓰기도 하고,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 사랑은 물리적인 균형이 딱 맞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다른 한쪽에서 받아들여주면 그것으로 오케이가 되는 거고 제삼자가 뭐라 그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제일 슬픈 것은 상대방을 나에게서 밀어내는 겁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한다. 날 방해하는 것만 같고 자기가 너무나 힘들다. 힘든 건 문제가 안돼요. 그런데 왜 그녀로 하여금 방해한다는 느낌을 주게 하셨어요? 저 같았음 말입니다. 제가 실제로 제가 중요한 일에 대해 작업이 많을 때 그 방법을 잘 썼는데요, 여자친구 불러가지고 옆에 앉아있으라고. 그 짓을 제가 좀 자주 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이해를 받고 또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놀라워요. ... 현실에 있는 요만한 콩알 반쪽만 한 시간만이라도 같이 나누고, 내가 힘든 때가 되면 날 보러 와서 내가 힘들고 초췌해진 내 모습을 보게 하고, 좀 하란 말이에요 좀.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 사랑의 지름길인 것 같으나, 상대방을 부려먹는 것이 상대방에게 할 일을 만들어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나의 지침과 피곤함과 고통을 분담시키는 것이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나 힘드니까 너 이거 이거 해줘’라는 애교가 더 귀여운 모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당분간 만나지 말자. 내가 너를 바쳐 줄 자신이 없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 돕고, 나누고. 사랑이라는 게 뭡니까. 좋은 시절, 고통스러운 시절, 그리고 좋은 것, 기쁜 것, 나쁜 것도 있으면 이것도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일종의.



@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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