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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i Forrest Lee Aug 29. 2022

수영을 하면서도 아기가 생각나네


출산 후 100일이 지나고 나서 이제 슬슬 운동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맞는 옷이 없다...) 이번 달 수영을 등록했다! 원래 지난주부터 가야 하지만 생리 기간이라서 갈 수가 없었다. 등록할 때 가임 여성 10% 할인이 있길래 왜 해주는 거지 싶었는데 바로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 드디어 첫 수영을 하러 갔다!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여느 때와 같이 해서랑 지지고 볶다가 6시 40분이 되어 집을 나섰다. 처음 배우는 것도 아닌데 너무 두근거렸다.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도 너무 맑고 예뻤다.







처음이라 회원증에 사용될 사진을 찍고, 회원증 대신 등록 영수증을 내고 락카 키를 받았다. 처음 온 사람답게 여자 탈의실은 어디인지, 신발은 어디 넣어야 되는지, 실컷 두리번거리면서 드디어 수영장 입성. 대충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나름 준비 운동도 조금 하고 물에 들어갔다. 물이 따뜻하다. 시간이 되어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다 보니 아차차 여긴 초급반이었다. 운동만 마치고 중급반으로 이동했다.



중급반은 나까지 4명인 것 같고, 옆 레인은 상급반인데 6-7명쯤 있었다. 같은 선생님이 두 반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명 한 명 가르치는 분위기는 아니고, '킥판 잡고 2바퀴 하세요. 자 출발. 왜 안 가요. 그다음 자유영으로 3바퀴 하세요.' 뭐 이런 분위기다. 그래도 수영 강사 중에 쓸데없이 무섭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강사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초급반에 들어가면 너무 처음부터 가르칠 것 같아서 중급반을 신청하긴 했는데 제대로 된 수영은 대체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나는 터라 과연 내가 자유영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강사가 '하, 회원님. 회원님은 초급이세요. 저쪽으로 가세요.' 하면 어떡하지. 마음이 쫄렸다. 어쨌든 출발.




오, 그래도 물에 뜨네, 앞으로 나가네, 숨도 쉬어지네 하면서 슬슬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하려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 집에 두고 온 아기가 생각난다. 우리 해서도 내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양수 안에 있었지. 이렇게 수영하는 느낌이었을까. 광고에서 가끔 보던 수영하는 아기 영상 같은 것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 한 바퀴는 그래도 여유롭게 돌고 왔는데 두 번째 바퀴부터는 힘에 부친다. 발차기도 약해지고 호흡도 가쁘다. 헉헉. 두 번째 바퀴를 다 돌고 시작점에 도착했는데 나도 모르게 으어! 하는 기합 소리가 나온다. 이때 또 생각나는 해서의 기합 소리. 어른들에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은 움직임이지만 뭔가 하나 할 때마다 해서에겐 많은 힘이 필요할 테지. 뒤집으려 애쓰다 말고 으어! 하고 기합을 내뱉는데 그게 꼭 '아이고 나 힘들어 죽겠다~' 소리처럼 들려 우습다. 하지만 오늘 내가 수영하며 나도 모르게 기합을 내뱉어보고 나니 해서가 얼마나 힘들어서 그러는 건지 알겠다. 그래도 귀여운 건 여전하다.





이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기들은 그렇게 힘든 일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우리 어른들은 살 빼야 한다, 체력 길러야 한다 이렇게 의지적으로 생각을 해야만 겨우 몸을 움직이는데 말이다. 힘에 부칠 만큼 몸을 움직여야 근육들이 발달한다는 게 DNA에 새겨져 있는 걸까, 힘들긴 해도 자기가 자기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재미에 푹 빠진 걸까.



어쩌면 후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어제 접영 발차기를 처음으로 배우면서 오랜만에 배우는 재미를 느꼈으니까. 내가 지금 내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고 밖에서 누가 보면 꽤나 우스운 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새로운 움직임을 배우고 연습하고 있다는 기쁨이 컸다. 힘들어도 멈추고 싶지 않고 시키지 않아도 한 바퀴 더 돌고 싶다. 최근 인라인스케이트를 처음 배우면서 다리가 후들거린다면서도 '너무 재밌어요!'를 외치는 조카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강습이 끝나고 물에서 나오는데 물 밖으로 몸이 나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물속에서 움직일 때도 힘들다고 느꼈지만 물 밖으로 나오니까 몸이 엄청나게 무거웠던 것이다. 태어나서 내 몸의 무게를 그렇게 크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색할 만큼 무거운 중력을 이겨내며 비틀비틀 수영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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