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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염색체가 검출되었습니다

아들이라는 소식을 알게 된 후의 기쁨

by 로란


몇 주 전에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Y 염색체가 검출되었습니다."


내 몸에 Y염색체가 검출되다니?

그렇다. 우리 아기의 성별은 아들이다.


실은 임신 12주 차에 니프티 검사를 했었다.


니프티(NIPT) 검사란, 산모가 진행하는

Non-Invasive Prenatal Test를 말하는 것으로

태아의 기형아 위험도를 판단하는 검사다.


임신한 산모의 혈액을 통해

태아의 유리세포 DNA(cfDNA)를 채취한 뒤,

다운증후군이나 에드워드증후군

그리고 파타우증후군 등을

유발하는 염색체 이상을 분석해 낸다.


산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형아 검사 중에서도

태아나 산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검사 방식이라

부적용이 없는 편이라 알려져 있고

정확도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보통 임신 10주 차 ~ 임신 12주 차에 접어들면 진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만 들으면

산모들 누구라도 니프티 검사를 받고 싶을 테지만,

아무래도 검사 비용이 높아서

고위험군 나이대의 산모가 아니라면

모두가 니프티 검사를 선택하진 않는다.


검사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50만 원 전후의 값이 나가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산전 검사를 지원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 없이 니프티 검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상황이었다.


물론 니프티 검사는 절대 필수는 아니다.

일반 산전 검사 시 시행하는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 목 뒷부분의 액체 공간인

'투명대'(Nuchal translucency)의 길이를 검사해

미리 태아의 염색체 이상을 판단한다.


이때 저위험군이라고 판단이 되면

추가적인 니프티 검사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의학계든, 출산 경험자 여성들이든, 다들 지배적이다.


나 역시 먼저 진행한

목 투명대 검사(NT 검사)에서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 저위험군으로 나왔었다.


만약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면

니프티 검사(NFT 검사)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니프티 검사 덕분에

임신 12주 차 ~ 임신 13주 차에도

일찍이 알게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아이의 성별이다.


"Y 염색체가 검출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니프티 검사 덕분에 빨리 듣게 된 것이었다.


아기가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고 소감이 어땠을까,

조금 얼떨떨한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실은 임신을 알리고 주변에서 딸이길 바라는지,

아들이길 바라는지 많이들 내게 자주 물었다.

특히 요새는 아들이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고

부모를 부양하던 시대를 지난 지 오래,

정서적 유대가 깊은 딸을 선호하는 추세가 있어서

다들 은근히 딸을 낳길 바라지 않냐며 부추기는

느낌도 자주 받았다.


그런데 진심으로 딸이든 아들이든 나는 상관없었다.

그냥 건강한 생명체가 찾아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일인데, 내 아이를 두고

어떤 성별은 원하고 어떤 성별은 덜 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친구 같은 딸과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다거나

든든한 아들 둘과 각종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는 둥,

특정 성별의 자녀와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내 마음속의 전형적인 이상향도 없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말 아들이라는 게 확실시되고 나니

다른 이유로 기뻤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 대해서

물리적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아기에 대해,

아이에 대해 아직 하나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장난꾸러기일까?

초등학생까지는 얌전한 아이로 크다가

20대가 되면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인싸가 될까?

내향적인 아이일까? 외향적인 아이일까?


나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하나 알았다.

우리 아기는, 우리 아이는 남자아이로구나!



새로 만날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


분명한 한 가지를 알았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쁘고 신기한 마음만 드는 것이다.


"우리 아기는 아들이야. 남자 아기라고!"


임신 초기는 피곤하고, 불편하고,

그야말로 많이 힘들어서 마음고생을 했었다.


어쩌면 아기를 품고 있는 9개월 내내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모든 행복한 소망과 성취들은

힘들게 죽을 둥 살 둥 노력해도

손에 쥘 수 있을까 말까하지 않나.


그에 비하면

몇 달 동안 그저 내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을 견디기만 해도

사랑하는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가.


어쩌면 그 노력에 비하면,

너무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한 그때부터였을까,

어쩐지 17주차에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몸이 힘든 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루 하루 아기를 더 많이 알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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