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을 기다리는 매일 매일
요새 남편과 나의 하루는
실없는 농담으로 시작해
우리만 아는 말장난으로 끝이 난다.
남편이 볼록 올라온 내 배를 만지며
동동이도 잘 잤니? 물어보면
내가 애기 목소리를 흉내 내며
네! 아빠! 하고 활기차게 대답을 한다.
아침마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남들이 보면 어이 없어 할
연극같은 대화를 한바탕 마치고,
천천히 옷을 주섬 주섬 꺼내 입은 뒤 집 밖으로 나선다.
거리에는 언제부터 저렇게 많았나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하는 어린 아이들이
우리 또래의 엄마 아빠들의 품에 안긴 채로
우리 두 사람의 눈에 띄고,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두고
갖가지 상황을 만들어내기 바쁘다.
"나중에 동동이가
놀이터에서 친구 장난감 뺏으면 어떡해?"
"아니 남의 물건은 뺏는 게
아니라고 가르칠 거야."
신기하게도 아기에 관한 장난스러운 말장난은
대부분 부모의 책무에 대한 결연한 의지로 이어진다.
"엄마가 장난감을 많이 안 사줘서 그런 거예요!
라고 소리치면 어떡할거야?"
"그렇다고 장난감을 많이 사주면 안 돼.
내가 가진 게 없다고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사랑스럽고 어리숙한 생명체에 대한 농담이
그 아이를 바르고 성숙한 어른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의 복기로 이어지는 구간은
내가 이 말장난에서 가장 좋아하는 클라이막스다.
아주 예전에,
왜 많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까 궁금한 일이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혼탁하고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삶의 가능성이 명백히 갈라지는데
어떤 이유로 수많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다음 세대를 이어가려는 용감한 선택들을 해내는 걸까.
논리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삶이 얼마나 화려하거나
소박한 지를 따지는 것을 떠나서,
누구나 저 마다의 가족은 자기만의 요새였다는 걸 알겠다.
요새의 새로운 일원이 들어온다는 것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분명하니,
삶의 희망을 갈망하는 일이 비합리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희망이라는 게 지나치면
요새를 망치는 욕심이 되기도 할 것이고,
또 희망이란 어디까지나 아직은 연약한 희망일 뿐이어서
현실에서 전력을 다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순수한 희망은 그 자체로 얼마나 드물고 값진가.
그래서 나는 이제 알겠다.
아이를 갖고 수많은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은
한 번쯤 진심으로 행복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쓸모와 삶의 이유를
선명하게 발견해 나갔을 것이라는 것도.
말장난 틈틈이
요새 내가 즐기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우리는 아기가 아들인 것을 좋은 핑계로 들면서
많은 일들을 남편에게 미리 미리 준비시키는 거다.
수영장에 가면 아이를 씻기는 일이라든가,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배우는 일들이 대표적이다.
"동동이는 남자 아기니까
남자인 정훈이가 성교육도 시켜줘야해."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근데 그걸 처음에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되게 어려울 것 같아."
"고등학생 졸업하면
남자대 남자로 둘이 여행을 가는 거야.
맥주 한 잔 하면서, 아들아, 잘 들어봐라, 하면서
진지하고 투명하게 가르쳐 줘야해."
"그때는 너무 늦은 거 아냐?
고등학생 졸업하기 전에
먼저 경험을 했으면 어떡해? "
"그럼 중학교 때 가르치면 되지."
"아냐. 성교육이 너무 빨라서 오히려 성에
너무 빨리 눈을 뜨게 만드는 거면 어떡해?"
"음, 그럼 교육 시점은 10대 시절에
여자친구가 처음 생겼을 때로 정하자."
“나도 그런 걸 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잘 가르쳐주는 걸까..“
"아빠가 남자대 남자로서,
사랑을 하게 되는 건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걸 축하해주고
성관계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상대방도 원할 때만
청결하게 건강하게 해야한다고 꼭 알려줘."
우리는 사뭇 진지해진다.
"안 돼. 쑥쓰러워서 나 혼자 못할 것 같아.
여행갈 때 세희랑 같이 갈 거야."
“좋아. 우리가 힘을 합치면
건강하고 바른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숱한 말장난과 농담들 사이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겪을 미래의 시간들과 점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해야할 더 많은 감투들을 기다리면서
기꺼이 그를 위한 정신과 체력을 단련해 내려 한다.
희망을 향한 성실한 대비는
내가 임신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나와 남편의 재능이기도 하다.
"동동이가 서울대에 갔으면 좋겠어."
"아니 언제는,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며."
"아니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데,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그러면 더 좋겠다는 거지."
"나중에 유별난 극성 엄마가 될거야?"
"근데 이왕이면 하버드도 괜찮을 것 같아."
"안 돼. 난 동동이랑 한국에서 같이 살고 싶어."
"우리가 미국으로 가면 되지."
남편과 내가 도착할 미래가 기대되면서도
그 미래는 그 미래대로 나중의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미래를 꿈꾸며 있는 그대로 즐거워하는 일.
그리고 단지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은 미래를 기대하고 대비하는 지금의 장면들은
지금 그대로 내 인생의 한 계절,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처럼 느껴진다.
"(잠시 생각해보다가)
아니야, 정말로 건강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맞아.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만 하면
그걸로도 엄청난 일이야.”
“엄청 감사한 일이야.”
"내가 많이 예뻐해줄거야."
"엄청 많이 사랑해줄거야."
나는 바다 위 윤슬을 놓쳐버릴 새라
몇 번이고 우리의 대화들을 사진 찍듯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