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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chy foot Sep 25. 2023

다시 발바닥이 가려울 때

해외살이, 선택의 기로에서

점을 보러 가끔 가면 항상 듣는 말이 있는데, 매번 타고난 역마살이라고 한다. 역마살이 어찌나 심한지 눈앞에 바쁜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발이 보인다면서 발바닥이 아프지 않냐는 소리까지 듣곤 했다. 그래서 그 말 끝에 "해외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타고난 팔자라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에서 살아야 본인이 편하다고 그런다. 심지어는 해외에 있지 않았으면 큰 사고까지 겪었을 수 있다면서. 좀 섬뜩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환을 알아서 피해 갔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름 위안을 삼으며 살고 있다.


이제는 운명이려니 팔자려니 하면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잘 정착해서 뿌리를 좀 내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그런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다시금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인생의 큰 갈림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발바닥이 먼저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았던 해외살이가 점점 길어졌던 건 아이 교육 때문이었다. 부담되는 학비나 월세를 낼 때면 매번 왜 말도 잘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이러고 있냐며 한국으로 돌아갈까를 수십 번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있는 아이의 삶을 뿌리째 뽑아서 옮길 수는 없었다. 뒤에서 해결해야 하는 여러 부담감들은 그저 부모의 몫일뿐이니까 말이다. 


그런 아이가 여기서 고3이 됐다. 대학 입시 시험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같이 고민하다 보니 우린 선택의 폭이 꽤나 넓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선택지로 놓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말 그대로 전 세계가 모든 선택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넓어지는 선택지만큼 나의 고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래 머물렀야 했던 1순위가 아이의 교육 때문인데 교육 장소가 바뀌게 된다면, 그땐 내가 이곳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 나라에 계속 살던 사람이 그 나라 안에서 아이를 대학에 보내면 그건 아이의 인생에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처럼 아이 교육이 1순위라면 애 학교에 따라서 이곳에서의 삶을 계속 유지할지 접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생이 아이 대학 선택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해외살이 중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직은 꽤나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발바닥이 벌써부터 간질간질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조바심이 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운명을 다 믿는 것도 아니지만, 운명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면 그 길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역마살이 내 팔자라고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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