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배려 사이에서
평범한 금요일 밤에 온 페이스북 메신저는 집 안의 평범했던 공기를 한 순간에 바꿔 버렸다.
딸아이 친구 엄마(편의상 B)가 보내온 메신저 내용은 딸아이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다른 친구 A(편의상 A)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B 엄마가 B에게 우리 딸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본인에게 전화를 달라고 했다. (A와 B는 딸아이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는데 인문계가 아닌 다른 고등학교를 가서 대학 시험을 앞두고 있지는 않았다)
순간 이 내용을 읽고는 딸아이에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몇 분 동안 고민을 했다. 딸아이의 시험을 위해 친구 B 엄마가 배려로 한 행동도 있어서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당장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작 엄마가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말을 안 해 줬다? 내가 아이 입장이라면 정말 원망스러울 것 같았다. 그리고 딸아이 친구인데 친구의 마지막에 대한 소식을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유라 생각해서 지체 없이 아이에게 가서 얘기를 해 줬다.
아이는 믿기지 않는 거 같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다시 말해줬다. B 엄마가 보낸 메시지라고. 그러자 아이는 본인이 직접 B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전화를 걸어서 그 내용을 확인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 순간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시험 앞두고 아이 감정선이 널뛰고 있는데 아..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이기적인 엄마다. 정말로.)
전화를 끊은 아이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도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B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소식을 알려줘서 고마운데 혹시 무슨 상황인지 아냐고 물었다. B 엄마도 잘 모르지만 B와 다른 친구가 A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안 오니까 계속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경찰이 받아서 비보를 전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B는 다른 친구의 집에 가서 같이 슬픔을 달래고 있다고 했다. 이 내용을 전하니 아이는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왓츠앱을 보내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그러다 연락이 된 친구에게 전해 들은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친구들하고 만남에 안 나타나 전화를 했는데 경찰이 받았다는 건 사고일 가능성이 높으니 사고인가 봐하고 있었는데... 스스로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니.. 하.. 아이는 울면서 떠난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고 알았으면 도와줬을 텐데... 왜 그런 선택밖에 못 했냐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나중에 들은 A에 대한 이야기는 1학년 때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2학년으로 못 올라가고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라서 어디까지 맞는 건지 뭐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진실은 18살 꽃다운 나이의 한 소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그리고 그 소녀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슬프고 비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몇 시간을 울다가 퉁퉁 부은 눈으로 잠이 들었다. 혹시 악몽이라도 꿀까 봐 걱정했는데 울다 지쳐서 그런지 다행히 잠은 잘 잤다.
다음날 아이는 생각보다는 덤덤했다. 전날 운 탓에 눈이 퉁퉁 부어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가서 햇빛도 쬐고 아침도 먹고 산책도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늦게 일어난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기 시작한 오후가 되면서 아이는 좀 싱숭생숭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다 모여서 슬픔을 달래고 A를 추모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도 가고 싶다는 말이라는 거 너무 잘 아는데, 다녀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더 매정하게 가 봐야 모여서 울기만 할 거라고 말하고 있는 내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니 아이는 예상했던 답안인 듯 아무 말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아이는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내일 A가 다녔던 교회에서 A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고 월요일은 A의 장례식이라고. 아이는 친구들과 왓츠앱으로 그룹 통화를 하면서 내일 어디에서 만날지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아이 방을 나왔다.
하루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도 난 아이에게 그 소식을 전한 게 잘한 일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고 있다. 예상보다 여파가 더 클 수도 있다. 내일과 모레, A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장례식을 다녀올 때까지 아이의 슬픔과 감정이 어떻게 휘몰아칠지 가늠이 안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뭐라 해야 할지 나도 답을 모르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연락을 준 B 엄마가 고맙기도 하지만 진짜 이기적인 생각에서 이게 진정 배려였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본인의 딸 B에게 우리 아이 시험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했다면, 그리고 진짜 배려할 거였으면 엄마인 나한테도 연락 안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알고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얘기를 안 할 거라 생각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혹여 내가 아이에게 말은 안 해 줬는데 그걸 나중에 아이가 알게 됐다면 얼마나 나를 원망할런지. 그리고 본인의 딸 B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우리 딸에게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터넷과 SNS 세상에서 사는 요즘 아이들 아닌가. 그리고 왜 우리 딸이 친구의 마지막 소식을 다른 친구한테 듣는 게 아니라 친구의 엄마를 통해서 듣게 만드는 지도 이해를 못 하겠다.
물론 악의 없는 선의였을 거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본인이 중간에 나서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본인은 배려였을지 모르지만 난 전혀 배려라고 느껴지지 않으니 이걸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
A의 친오빠가 보낸 메시지에는 A가 친구들에게 남긴 편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A의 친오빠는 그 편지를 열어 볼 힘도 없다고 친구들이 오면 전해주겠다고 한다.
제발, 부디, 너무 슬픈 내용이 적혀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A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 슬픔이 지나치게 길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 그저 엄마의 마음으로는 아이가 이 시기를 잘 지나가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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