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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chy foot Oct 22. 2023

3개 국어 하는 아이로 키우기 (3)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중고등학생 시기는 부모가 해 줄 게 없어지는 시기이다. 게다가 초등과정 6년 공부의 결과를 막 치르고 나면 중학생 초반 시기는 참 여유롭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달리 중학교 과정이 4년이다. (점수에 따라 반이 나눠지는데 Express반은 4년, Normal반은 5년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PSLE 시험을 막 끝내고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부모도 학교도 공부를 하라고 푸시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춘기가 심한 그 시기에 정말 미친 듯이 논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애들이 다른 나쁜 생각을 못 하게 하려는 건지, 폭발하는 호르몬을 다 쓰게 하려는 건지 온갖 동아리 활동, 캠프, 봉사활동, 학생회 같은 다양한 활동을 끊임없이 시킨다. 학교에 보통 오전 7시 30분까지 도착해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학교 정규과정 끝내고 동아리 활동, 학생회, 축제 준비 등 뭐 이런 걸 하다 보면 집에 3시 넘어서 오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럼 땀에 쩐 냄새를 풍기며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면 아이는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밥 먹고 쉬다가 숙제하면 슬슬 잘 시간이 다가온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다시 학교를 가야 하니 자동적으로 일찍 자게 된다. 9시, 10시가 되면 눈이 풀려 슬슬 자러 들어간다. 그러니 뭐 딴짓을 하고 싶어도 할 에너지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 과정은 어느 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 2년, 3년 과정으로 달라진다. 고등과정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아래는 싱가포르 정규 교육 과정을 정말 간략하게 만들어 본 것이다. 사실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하게 작성하였다. 초등학교까지는 6년으로 한국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초등 때 만나게 되는 첫 시험, PSLE를 치르면 정말 세분하게 나눠진다.

싱가포르 정규 교육 과정

 1) IP 과정: PSLE 성적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이 가는 과정으로 6년 과정을 자동으로 할당받게 된다. 그래서 중학교 4년을 마치고 GCE O-level 시험을 보지 않고 자동으로 인문계인 JC로 들어가게 된다. (IP 과정이 있는 중학교들이 따로 있다.)


 2) JC 과정: 중학교 4년을 마치면서 GCE O-level 시험을 보고 받은 점수에 따라 교육부에서 JC 지원 자격을 준다. JC는 말 그대로 GCE A-Level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때 같은 중학교에서 같은 연계 고등학교(Affiliated school)로 진학을 하는 경우는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 유리하다. 그래서 PSLE 시험 후 중학교 진학 시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JC는 2년 과정인데 Millennia institute 한 곳만 3년 과정이다.)


 3) Poly 과정: GCE O-level 시험을 봤는데 JC 지원 자격을 받지 못했을 경우나 혹은 JC 지원 자격을 받았어도 본인의 선택여하에 따라 Poly 과정을 지원할 수 있다. 이 과정은 Poly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게 취업에 맞춘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Poly 과정을 마치고 GCE A-Level 시험을 보고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4) ITE 과정: GCE O-level 시험결과가 JC, Poly를 가기 어려운 성적인 경우 ITE를 진학하게 된다. ITE도 Poly와 마찬가지로 취업을 위한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



 

   싱가포르 교육부에서는 특정 재능을 지닌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특별 과정이 있다. 수학이나 과학은 굳이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게 아니어도 올림피아드, 실험 대회 등 다양한 곳에서 수상이 가능하다. 예체능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언어 쪽은 범위가 넓은 편이 아니다.

   특히나 한국 학생들은 영어가 조금 부족한 경우에 수학, 과학에 집중을 시켜 여러 상을 받고 이 과목들에 점수를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영어나 중국어와 같은 언어에서 빛을 발하는 한국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도 주변 한국 엄마들에게 언어 관련 특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듣지를 못했었다.


   그러다 아이가 중학교 입학해서 영어/중국어 특별 프로그램 CAP에 뽑히게 되면서 언어 쪽도 특별 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CAP(Creative Arts Programme)은 영재교육부(GEP), 교육부(MOE), 예일-NUS College가 공동으로 조직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창의적인 글쓰기 세미나 과정(Creative Arts Seminar)멘토 지도 아래 첨삭 과정(Menthership Attachment) 2개의 과정으로 진행이 된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우선 발행된 적이 없는 자신이 쓴 시나 소설, 에세이를 제출하면 되는데 최소 5편 이상을 제출을 해야 한다. 싱가포르 중학교 2, 3학년, JC 1학년만 참여할 수 있는데 매년 이 프로그램에 뽑히는 인원은 중고생 합쳐 170~180여 명 정도라 보면 된다. (매년 뽑는 숫자가 달라진다.)


  아이가 초등 5학년 말부터는 끄적거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는지라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CAP에 지원하라고 독려하자 한번 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8개월 동안 정말 출품할 5 작품을 쓰느라 혼자 끙끙거렸다. 사실 부모로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아이는 덜컥 그 프로그램에 뽑혔다. 아이 본인도 될지 몰랐다며 너무 행복해했다.

  그렇게 방학 2주 동안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 National University Singapore)에 가서 여러 모듈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싱가포르 교수님, 초청 강사, 초청 작가들에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글쓰기를 직접 가르치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듣는 강의, 강연이라서 아이는 너무 행복해했다.

  그 이후 아이는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JC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금 CAP에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봐도 잘 썼다면서 당연히 뽑힐 거라 큰소리를 쳤다. 사실 속으로 설마 2번 뽑히겠니 했는데 2번 뽑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런데 이 때는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라서 모든 프로그램을 온라인을 진행을 하게 되어서 아이가 무척 아쉬워했다. 하지만 한번 뽑히기도 힘든 CAP을 중, 고등과정에서 모두 뽑힌 후 아이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CAP에 뽑히면서 유치원부터 아이에게 해 왔던 영어 책 읽기와 듣기의 그 과정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영어 점수가 좋았지만 아주 잘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시켰던 영어 책 읽기 과정은 학교 점수와 상관 없이 아이의 창의성과 상상력, 그리고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중고등과정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국어와 담을 쌓기 시작한다. 심지어 집에서 모국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중국어 시험에서 바닥을 치고 낙제하기도 한다. 그러니 중국어에 경기를 일으키던 우리 아이에게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중국어에 돈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중고등 6년 과정 중에서 중국어 학원은 한 번도 안 보냈다. 단지 고등학교 입학시험 O-level을 앞두고 중국어에서 낙제를 할까 봐 6개월 정도 과외를 시킨 게 다였다. 그것도 아이 성향에 맞는 선생님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체험수업(trial class)을 진행해서 연세가 좀 있으시고 친절하신 선생님을 만나 다행히 통과(Pass)를 하였다.

   고등학교를 들어오면서는 자신에게 중국어가 필요 없다며 교육부에 중국어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게 하는 레터를 써 달라고 했다. 하지 말란다고 말을 들을 상태도 아닌 것 같아서 써서 학교에 보냈는데 중국어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엄마도 원하냐고 물으셨다. 이런 레터를 내는 아이가 비단 우리 아이만은 아니니 교육부에 제출 전 확인차 전화를 돌리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는 원하지 않으나 아이의 요구로 써 준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웃으시더니 교육부에 내 보기는 하겠지만 안 될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예상했던 바인데 아이가 원하니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보냈다고 했다. 결과는 뭐 역시 안 됐다.
   중국어와 같은 제2언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먼저 시험을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 떨어지면 2학년 때 좀 더 쉬운 시험으로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냥 통과(Pass)만 하면 된다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통과를 해야지만 더는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을 테니 힘을 내 보라고 했다. 정말 시험을 2번 보기는 싫었는지 혼자 열심히 공부하더니 통과(Pass) 성적표를 받고는 전화로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역시 공부는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O-level과 A-level의 중국어 점수에서 웃기는 부분이 말하기 점수였다. O-level에서는 말하기만 우수함(merit)을 받아온 거였다. 읽기, 쓰기는 바닥인데 말하기 덕분에 그나마 통과가 된 거였다. A-level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기 부분이 제일 점수가 좋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5, 6학년 때 2년 동안 몰아서 시킨 온라인 말하기 수업이 빛을 발했다는 생각을 했다.



  

   학년이 높아지면서는 한국어를 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듣기, 말하기 잘하고 한글만 잊지 말아라 같은 마음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보여주던 KBS World나 다른 케이블 방송 등을 계속 보여주면서 한국어 노출을 해 줬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발음만 들으면 해외에서 살다온지 아무도 모른다. 한국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평소대로 말씀을 하시는데 아이는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아서 나에게 중간중간 많이 물어본다. 한국어 쓰기는 잘 못하지만 읽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어로 카톡을 보내면 아이는 영어로 카톡을 보낸다. 그리고 아이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내가 한국어로 물어보면 친구들에게 영어로 통역도 해 준다.

  한국어는 대입이 끝나면 다시금 몰입의 시간으로 읽기와 쓰기 실력을 늘릴 예정이다.



  

   3개 언어를 해서 그런지 아이는 언어 부분에서 좀 빠르다. 그리고 친구들 중에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도 있어서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언어를 좋아해서인지 혼자 인터넷을 찾아서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조금씩 익히면서 나에게 영어와의 차이점도 이야기를 해 준다.


   언어를 잘하는 건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적인 부분이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적인 요인도 엄청 크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살 때는 3개 국어, 아니 2개 국어만 잘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에 와 오니 2개 국어는 학교에서 기본으로 가르치고 3개 국어는 보통인 경우가 많다. 가족이 중국계인 경우는 만다린 외에 부모나 조부모의 방언들도 자연스레 배우기 때문에 중국어 사투리도 다양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알아야 세상이 보이고 알아야 들리는 게 맞다. 아이가 좀 더 넓은 세상을 마음 편히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 왔던 3개 국어의 과정이 이제는 슬슬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이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언어의 숫자가 달라질 거라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https://ko.photo-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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