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가 싫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사가 귀찮다.
요즘들어서 이사가 더 귀찮아졌다. 이사 할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이사는 집을 옮기는 것만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까 이사 해야 하는게 비단 집 뿐만은 아니란걸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이 이사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장이사 업체가 생겨났다.
냉장고에 상한 반찬통 까지 그대로 옮겨주는 그야말로 신기한 서비스다.
돈을 좀 더 지불하고, 집을 그대로 옮겨준다는건 해볼 만 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거처가 3개가 있다.
하나는 먹고 자고 하는 나의 집 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의 반을 보내는 직장이고,
마지막 하나는 내 삶 전체를 함께하는 스마트 폰이다.
휴대폰을 바꾸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이사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플리케이션을 새로 깔고, 전화번호부를 새로 등록하고, 어플리케이션에 따라서 비밀번호를 모두 다시 설정하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 바꾸는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몇년 전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까,
동생이 '형아 이거 한번 봐봐' 라고 하면서 새 휴대폰 카메라로 이전 휴대폰 화면에 센서를 작동한 적이 있었다.
"이게 뭐하는거야?"
"아니 잠시만 있어봐...짠 . 이것봐라 그대로 휴대폰이 옮겨왔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쓰던 어플리케이션은 물론, 가장 귀찮았던 금융관련 인증서까지 그대~로 새 휴대폰으로 옮겨져 있었다. 포장이사보다 더 꼼꼼하게 이사가 된 것이다. 찾아보니 '마이그레이션'이라는 기능인데, 하드웨어를 바꾸면서 소프트웨어가 고스란이 옮겨가는 기능이라고 했다.
참 세상이 좋아지다 못해 신기할 정도로 나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있구나 싶었다.
포장 이사도 있고, 마이그레이션도 있어서 이제는 이사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래도 귀찮은건 매 한가지다. 내가 집을 사기엔 한참 멀었고, 휴대폰은 계속 바꿔야 하고, 인사발령이 나면 회사에서 자리도 계속 이동해야 한다. 즉, 이사는 살아있는한 계속된다는 것이다.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사가 좋은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사를 하면 하나씩 버리게 된다. 정리를 하면서 가져갈 것, 버려야 할 것들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아무리 포장이사를 하거나 마이그레이션을 한다고 해도 새롭게 정리를 하며 맺고 끊음을 겪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하나씩 버리게 된다. 오랜기간 가지고 있던 것들은 버리기란 쉬운게 아니었다. 그래도 하나씩 버려봤다.
처음만 힘들지, 버리기 시작하니 점점 과감해 졌다.
버리고 또 버리는 연습을 하니 머리가 가벼워졌다. 가지고 있던 이유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미련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버렸다. 하나 둘씩 나를 둘러싼 것들이 이사를 통해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꽤 많이 버렸다.
쓰지 않는것을 다 버렸고, 필요 없는 것들도 다 버렸다.
심지어 살이쪄서 입지 않았던 옷들도 버렸다. 비싼돈을 주고 산 옷일 지라 하더라도 버렸다.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한 마음이 덩달아 커졌다.
버리다 보니 남아 있는 것들이 나를 좀 더 명확하게 표현 해주는 것 같았다.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제 휴대폰도 메인 페이지 1개만 으로 살고 있다, 쓰지 않던 생활용품은 필요로 하는 어딘가로 다 보내졌다.
어제는 회사에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또 이사를 했고, 또 열심히 버렸다.
덕분에 책상은 너무 깨끗해졌다. 마음도 가벼워졌다.
다시 복잡해 지는건 시간 문제겠지만, 지금은 정신이 가볍다.
왠지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기분이다.
나는 이사가 정말 귀찮고 싫다. 지금도 이사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를 한번씩 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지 제대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감히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이사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사를 계속하는 한
이사를 싫어하면서, 버리는 것을 좋아해야겠다.
먼 훗날 이사가 필요 없어 졌을때 나에게 남는 게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