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익 Jan 13. 2023

걸어서 하늘까지.

나는 오랜시간 뚜벅이었다.

나는 걷는걸 좋아했다. 트레킹이나 등산이 아니라 그냥 걸어서 이동하는걸 좋아했다.

운동삼아 걸었다기 보단 재밋어서 걸었다.

스무살에 처음 온 서울은 낯설고 신기했다.

티비에서 보던 풍경들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창경궁을 지나서 종로로 해서 광화문으로 가고, 신촌에서 시작해서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도 가고 참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풋풋했던 첫사랑 친구도 걷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걷는것이 더 즐거웠던지 모르겠다.


택시 탈 돈이 없고, 대중교통 노선이 익숙하지 않았던 덕에 시내 구석구석을 하염없이 걸어다녔다.

노점들도 구경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다니나 구경도 하고 참 재밋었다.

      

오랜만에 대학생때 자주 거닐던 동네를 걸어봤다.

많이 바뀌었다. 길은 그대로이고, 근처 지하철 역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보던 풍경들은 없었다.

늙어버린 건물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우뚝 서있었다.

신기했다.

익숙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 낯설었다.

길을 헤매기도 했다. 그래도 길은 잘 찾았다.

스마트폰에 지도가 나오니까 길 찾기는 오히려 쉬웠다.      


내가 가진 것들과, 겉 모습은 세월에 함께 늙어가고 있지만

열심히 걸어다니며 기억속에 담은 추억들은 그대로인게 좋다.

가끔 상념에 잠기곤 하면 예전 풍경들이 떠오른다.

풍경을 거닐고 있는 장면속에 내 모습도 보인다.

참 좋다. 서글프기도 한데 괜히 미소짓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다시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싶다.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기억속에 잘 저장해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나 보다.

카메라를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건 더 큰 축복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것

상반되는 개념 같지만, 어찌보면 산다는건 변하는 순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기쁨을 계속 쌓아가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이 곧장 과거가 되어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시간속으로 날아간다고 해도, 마음속에 지금은 항상 간직 할 수 있다.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듣고.

그렇게 시간을 조금씩 서랍장에 넣어둔다면 훗날 꺼내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2500년전 장자는

인생을 마치 문틈 사이로 흰 말이 지나가는걸 보는것과 같다고 했다.

조금씩 이해가 된다.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예전보다 훨씬 와닿는것 같다.

그래서 더 많이 걷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오롯이 기억에 담고 싶다.


이번주는 고향에 내려가야겠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해질녘까지 놀던 골목을 걸어봐야겠다.

그리고 다시 내 마음속 서랍 한칸을 채워야 겠다.

언젠가 매일 출퇴근 하는 내 모습도 문틈 사이로 흰 말이 지나가는 찰나에 생각이 나겠지?

괜시리 코끗이 찡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