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무엇인지 요즘 난리하고 하니 서점에서 'ESG'라고 검색해보라. 두 종류의 서적이 있다. 'ESG 투자를 합시다!' 그리고 'ESG 백과사전', 이렇게 두 가지.
첫째, ESG 투자를 하자는 쪽은 대강 이러한 내용이다. 앞으로는 ESG 투자가 뜰 거다, 우리 모두 잘 살려면 지구를 살려야 하니까 ESG 투자하자, 유럽에서도 ESG 하도록 규제한다고 하니 우리 모두 ESG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
둘째, ESG 백과사전 류는 구글의 하드카피 버전, 검색하면 나오는 유럽 (EC)의 가이드라인 요약본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이 더 많아보이는 ESG에 관하여 'ESG 규제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예언하는 것도 그렇고, EC의 공표 내용들을 표와 그림과 원문으로 나열한 것도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법률처럼 소개되는 부분들이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법률이 아니기도 하고, 설사 법률이라 하더라도 개정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곧 개정판이 나올 것이고, 그 책 지금 사면 라면 받침되니까.
ESG는 남의 일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 문제, 내 문제 중에서도 내 돈 문제이다.외국에서 시작한다니까 하는 일, 정부가 시키니까 하는 일, 기업에서 하라니까 하는 일이 아니다. 일단 모든 월급쟁이들의 지갑에서 매달 뭉텅 빠져 나가는 국민연금과도 관련 있다. 워낙 큰 돈을 많이 '쏘기' 때문에 해외에서 vip 대접을 받는 국민연금, 그런데 그들이 '쏘는 돈'은 내 노후를 담보 잡고 있다. 그 투자가 망하면 나는 돈 없는 늙은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투자가 ESG 에 영향을 받는다면, ESG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1년,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비중을 70%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2021년 초에는 심지어 ESG 부서가 신설되기도 했다. 해외에서 ESG라는 규제, 혹은 투자 방향이 트렌디하다보니, 해외 투자 비중이 70% 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으로서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돈 맡겨둔 이상, 한가지 확인 받고 싶다. ESG 한다고 수익률 양보하면 안된다. 내 노후 날아간다. ESG 투자는 반드시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좋은 투자 전략이어야 한다.
사실, 해외 투자 많이 하는 큰 손, 국민연금은 ESG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그와 유사한 주제에 지배되어왔다. 그 유명한 스튜어드쉽코드를 생각해보자. '스튜어드쉽코드'가 등장했던 2017년 겨울 이후 국민연금은 투자에 있어 스튜어드쉽코드를 행사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일환으로 실제 투자 대상 기업의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종국적으로 그 대상회사의 주가의 상승을 뒷받침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사의 근거가 해외에서 유행하는 그 무엇이든, 그것이 스튜어드쉽코드이든 ESG이든 임팩트 투자든, 그거 좇아간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그렇게 유행 다 따라하다가 내 돈 날리면 내 노후는 망하니까.
내 돈 얘기라고 하니 바짝 긴장된다면 이것이 궁금할 것이다. ESG, 그럼 뭘 하면 되는거냐, 뭘 할 때 잘했다고 하는 거냐, 잘 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냐. 국민연금도 ESG 투자팀을 신설하고 각 기업을 ESG 지표로 평가한다는데 그 기업은 뭘 준비하나. 무슨 보고서를 만들고,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나. 이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ESG 지표는 새로운 지표들이 아니며, ESG 평가방식은 '공자님 말씀'처럼 막연하다. 그래서 ESG 하겠다는 말만 듣고 알 수 있는 게 없다. 규정을 보면 더 머리 아프고, 일단 전문가를 초빙하고 싶어진다.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다. 김영란법도 그랬다. 좋은 취지, 어색한 규정. 새로운 입법이요란하게 시작되면 머리는 아프고 내용은 모르겠다. 단, 대강의 흐름은 예측이 된다. 정부는, 일단 외국이 만든 규제를 기초로 우리나라에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해당 주무관청에 가이드라인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주무관청은 보도자료를 낼 것이다. 그걸 들고 각종 자문사들에게 'ESG'라는 평가지표에 관한 용역 자문을 맡길 것이다.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 업체들은 해외 사례를 케이스로 삼아 기업 상대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것이다. (죄없는) 기업들은 안 그래도 입법예고 보도 자료를 보고 겁 먹고 있었는데, 프레젠테이션 하겠다는 사람들이 오겠다니 오라고 한다.
‘ESG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엄청한 것들을 평가할텐데 그거 준비 안되면 당신들 큰일난다. 그거 혼자 준비하기 힘들테니 우리한테 맡겨라. 그 시스템을 만들어주겠다.’
로펌과 회계법인은 억대 컨설팅 비를 받기로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기업으로부터만 수수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정부 관계당국으로부터도 용역을 수임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 쪽에는 기준 마련해준다고 수수료 받고, 다른 한 쪽에는 내가 기준 잘 안다고 수수료 받는 구조이다. 일단 하나 깔고 가면 다음 건을 따기 쉬운 구조, 게다가 평가업무의 성격상 일단 하기로 하면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이니, 그걸 평가하는 사람들, 그걸 검증하는 사람들은 이 정책이 실행되면 정기적으로 용역 수수료를 벌 수 있다. 어차피 너희들은 평가받아야 한다. 그럴거면 나한테 받아라라는 새로운 컨설팅 용역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일자리 창출이라면 일자리 창출인가. 이 창줄의 원천 자금은 사기업이 부담하고 돈은 평가사가 벌어가게 되겠지만, 사기업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감사도 받고 ESG 평가도 받고, 기업 내부 자료는 계속 오픈될 것이다. 각 기업의 생명력의 원천이 되는 비즈니스 노하우는 서서히 평가사들의 노하우로 옮겨갈 것이다. 새로운 산업에 대하여 돈 받고 공부하게 된 평가사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영업을 확장하게 된다.
그럴리 없다고?
혹시 ESG 보고서를 본적 있나?
공공기관은 물론 대기업들도 공시를 시작한 ESG 보고서, 가령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예로 들자. 그 보고서도 외부 용역사가 만든다. 기관과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행 용역을 발주하면, 외부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한다. 입찰은 주로 보고서를 '예쁘게' 만드는 능력에 따라 업체가 선정되고 선정되면 꽤 놓은 수수료를 받는다. 이렇게 돈이 든 공시를 통해 공시 기업이 얻는 효용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고 그 공시된 정보를 보는 사람도 그 자료를 읽느라 쓴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얻는 효익이 별로 없다. 공시된 내용이란 것이 거의가 우리 기업은 ESG 잘 따를 것이다, 환경 보호하고 고용창출하고,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통해 내가 혹은 내 돈 가져간 국민연금이 어떤 투자를 할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투자 했다고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보고서를 작성한 대가를 받아 돈을 벌고는 있으니 신사업 창출이라고 박수를 쳐야할까.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나는 회사원이다. 공채로 들어가 신입사원부터 조직에 뿌리 내린 사람은 아니고, 장돌뱅이처럼 포지션이 오픈되면 몸을 던지는 용병이다. 이렇게 사는게 꿈은 아니었지만, 인생 모른다더니 본의 아니게 독특한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는데, 대략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뭐도 모르던 시절에 회계법인에서 국제 조세업무를 하던 중, 법을 몰라 업무의 한계를 느껴 인생 무서운 줄 모르 법 공부, 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요약하니 마치 성공적인 인생처럼 보이나, 돌이킬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런 선택 안 할 만큼 후회한다. 암튼 외국계 부동산 회사를 다니던 나는 회계법인에서 사내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변호사는 로펌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매일 되뇌일 정도로 한계를 느꼈다. 프로젝트 그 이름이 무엇이든 사내변호사는 빙산의 일각만 보게 되어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큰 마음 먹고 이직을 결심, ‘자산운용사’에서 대체투자업무를 맡았다. 내 인생 통틀어 제일 좋은 일이었던 그 이직은 행운이었고 나는 지난 5-6년간 가장 핫한 투자로 각광받은 ‘대체투자’ 최강의 하우스에서 좋은 분들 모시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덕분에, 이후 나는 투자 포지션의 기회도 얻었고, 사모펀드, 증권사 IB 팀등을 돌아다니다 지금은 금융기관의 전략 일을 하고 있다.
굳이 내 소개를 하는 이유는 내가 겪은 경험이 ESG라는 테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배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ESG를 글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유럽의 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검토하면서 느꼈던 무엇들이 현재 ESG 논의에 녹아들길 바라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내 일상의 90%를 차지하는 내 회사원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이 싫어 ‘투자’, 혹은 ‘금융’에 관한 그 어떤 글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용기를 낸 것은 ‘ESG’라는 중요한 아젠다가 마치 환경보호 캠페인처럼 따분한 것이라고 과소평가되는 것도 안타깝고, 무작정 '컨설팅 해주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버는 것도 안타깝고, 밤을 새서 만든 'ESG' 평가지표가 누구에게도 도움 안되는 것도 안타깝고, 일단 국민연금이 ESG 투자한다는 게 무서워서이다.
ESG가 무엇인지 정답이 없는 상황이지만, 해외 투자 하던 변호사로 겪은 경험을 바탕을 ESG에 대한 나만의 의견을 혼자 떠들어 놓을 것이다. 분명히 반드시, 누군가는 이 고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용역을 발주한 사람이든, 용역 입찰에 제안서를 낸 사람이든, 그것을 감독하는 주무관청이든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내 글을 읽으면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생각이 달라지길 바란다.
'투자은행'입문자들이 무엇인가 배우고 싶어 막상 책을 보면, 철 지난 옛 사례만 나열된 것을 발견하고 좌절하는 것들을 보았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내 경험과 의견이, 그저 뉴스 큐레이션 업데이트본과 달리 생각의 방향에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러 그 어떤 그래프도, 그 어떤 그림표도 넣지 않았다. 분량을 채우기 보다 밀도 있는 이야기로 채울 것이다. 대화하듯 읽다보면 스스로 찾아보고 싶은 부분이 생길 것이다. 그 부분은 구글이 찾아줄 것이다.
이 글의 주요 타겟층은 보도자료 준비를 위해 골머리를 썩는 입법기관, 행정기관의 실무자들이기도 하고, 그들을 대응해야하는 기업의 (죄없는) 전략팀이기도 하다. 기업의 크고 작음을 떠나 기업가 정신으로 도전하는 모두에게 시간낭비를 줄이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변화의 시대, 석유회사가 신재생에너지를 팔고, 모텔업 광고 플랫폼이 AI driven cloud 서비스 회사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조바심 없이 변화를 맞이하는데 영감이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