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라고 하니,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광고가 쏟아진다.
기업은 '착하게', '남을 돕는'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은 따로 있다. '월드비전'도 있고, 각종 재단도 많다.
기업을 세웠다면, 세울 때 하고 싶었던 그 사업으로 돈을 벌고, 내라는 세금잘 내면 착한 기업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ESG를 공익 캠페인처럼 받아들였는지 유난히 '사회를 위해, 특히 횐경을 위해' 착한일을 하고 있다는 광고가 늘었다. 그러나, ESG를 '공익을 위해 노력하자'는 신종 캠페인으로 오해하면 기업 본연의 사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사업이 안되어 결손을 내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펀드'에 기금을 출연했다고 착한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손으로 세금이나 환급받고, 일자리 유지 못하고 임금 밀리는 기업은 착하지 않다. 그런 기업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ESG 평가지표가 우수하다고 공시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SG라는 테마를 처음 접한 것은 2018년 겨울로 기억하고 있다.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자산운용사에 다니던 당시, 새로운 투자건을 설명하는 자료에서 처음 본 ESG. 그 때만 해도 동의어가 많았다. ESG, 혹은 지속가능한 금융 (Sustainable Finance), 아니면 임팩트 투자 (Impact investment) 등등이 그 동의어. 그 때는 그 수많은 동의어들이 무엇을 정의하는지 와닿지 않았다. 환경을 생각하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투자라니. 그러고도 목표 수익률을 낼 수 있나.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짬뽕된듯했던 첫 느낌이 기억난다. 첫 느낌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생각했던 ESG에 대해서 많은 기업들이 목놓아 외치는 것을 보니, ESG란 단기적인 유행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금융이란 말이 나온 것 연원 중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유명한 '기후 변화' 였으며, '기후 변화'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가 왜 그렇게 절실하냐고?
'기후 변화'라는 주제는 유럽에서는 최우선 해결 과제이다. 2021년 9월에 있었던 독일의 총선은 첫번째 기후변화 아젠다를 가지고 토론을 시작했다. 나라마다 체감 온도가 다른 것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그저 명태가 안 잡히는 정도, 장마가 이상해진 정도, 가을이 짧아진 정도로 느끼고 있다. 단언컨대, 내년 우리나라 대선 주자들의 첫번째 토론 주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이 우리보다 '착해서'인가. 유럽 기업들이 착한 기업이어서인가.
아니다. 돈 때문이다.
일단 금융업을 생각해보자.
질 좋은 '담보'라고 생각했던 부동산 담보가 100년만의 폭우로 온 마을이 떠내려가는 독일에서는 그 부동산 담보를 잡고 돈 빌려준 은행이 재해의 피해자이다. 그 동네 부동산에 담보 잡고 돈 빌려줬다고 상상해보자. 담보는 깡통이 되었다. 그런데 어디 가서 손해배상청구도 못한다. 엄청난 손해를 봤지만 '천재지변'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할 수가 없다. 울고 싶을 일이다.
은행은 홍수만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소위 '인프라 자산'이라 현금 창출 능력은 안전한 줄 알고 돈 빌려줬는데, 그 인프라 자산이 '파산' 직전이라면?
가령, 공공재를 생산하는, 그래서 독점적 지위가 부여되는 전력 발전소를 생각해보자. 전력을 생산하면 무조건 팔리는 안전한 산업이니, 매출 떨어져서 돈 못 갚을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낮은 이자율에 대출해주었더니, 갑자기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몰려 전력을 팔기 어려워졌다니 무슨 날벼락인가. 전력 매출액으로 돈 갚기로 했던 발전소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면, 이것은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닌 곳에 묻지마 대출을 해준 것이나 다름 없어진다. 돈 빌려준 은행에게는 손절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실제 석탄에너지 전력 구매를 줄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면서 발전소마다 운영 비용 마련 자체가 어려워진 경우도 많다. 인프라 자산이라 현금이자 따박따박 나오는 안전 자산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낮은 이자율이지만 안정성 하나 믿고 기관 자금을 투자했는데, 난리가 났다. 그래서 기후 변화를 제일 먼저 온몸으로 맞닥뜨린 것은 비단 인도양의 섬나라 해변 마을 뿐이 아니라, 오랜기간 선진국으로서 세계 경제를 선도하던 유럽이었다.
그 결과, 그러한 이유로, 유럽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지속가능한 금융, ESG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착하게 살려고, 북극곰 구하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유럽 경제의 혈관을 담당하는 금융기관들이 제일 먼저 자본 조달의 흐름을 다시 검토해야하는 문제에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은, 유럽의 집행위원회(EC)는 2011-2014년 무렵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특히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목된 '탄소중립 (Net Zero)'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소 배출을 드라마틱하게 줄여줄 것만 같은 재생에너지에 집중했고, 덕분에 2021년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 Global Top-tier 회사는 전부 유럽 회사들이다. Osted, Iberdrola, Violia, Enel 등 내노라 하는 재생에너지 회사들이 거의 대부분 유럽 소재 국영회사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업적으로 자신감이 붙자 그들은 신난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혁명 이후 석탄경제를 리드하던 유럽은 세계대전 전쟁통에 미국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IT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다음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밀렸다. 제조업은 물론 IT 기술까지 선두 그룹을 모두 내주며 쪼그라들더니 그야말로 '명품'브랜드와 금융회사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유럽이 '재생에너지'라는 산업을 포함하여 '기후변화'에 관한 제반 산업군에서 독보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죽을맛이었던 기후 변화, 그로 인한 금융의 위기가 그 기후 변화를 완화시킬만한 재생에너지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2015년 전후하여 EC의 주도하에 EU Green Deal 과 같은 Flagship agenda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유럽의 입을 미국보다 먼저 쳐다보게되는 오래간만의 상황이 이 분야에서 벌어졌다. EC는 UN RPI, FSB, TCFD, EBA, 파리기후협약 등등 아직까지는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은 각종 초국가 단체 및 산하 기관들을 거느리며 연일 ESG 관련 방향성을 제시했다. 급기야 2021.4. 미국 SEC는 Risk Alert Paper를 통해 ESG 관련 방향을 논하면서 EU의 방향을 참고하고 있음을 밝혔다. 유럽은 어깨에 힘이 실리는 중이다. ESG 와 관련된 현재의 규제 적용대상은 EU 소재 기업들이지만, 그 대상이 확장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공표했다. 그러니까 ESG라는 테마는 '지구를 살리자'는 공익 캠페인이 아니었다.
속 사정이야 무엇이든 ESG,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자는 얘기는 좋은 얘기다. 좋은 얘기라는 말은 그것이 '착하게 살자'는 말처럼 그 말을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란 뜻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착하게 삽시다!'라는데 '싫어, 안 할거야.'라고 반박하기 망설여 지지 않는가. '그래, 착하게 살아야지 뭐.'정도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얘기, 딱히 반대하기 참 어렵다. 얼핏보면 ESG가 그런 이야기로 들린다. 환경을 생각하자는데,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떠내려간다는데, 그래서 탄소 중립이 필요하다는데, '그래야겠네' 말고 다른 말 하기가 좀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어떠한가.
'지금부터 너희가 얼마나 착하게 사는지 검사하고, 착하게 안 살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것이다'
이건 다른 이야기다.
니가 뭔데 그러냐.
착하게 사는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검사할 거냐.
착하게 사는지 검사하는 기관은 무슨 자격이냐.
착하게 안 살았다고 벌금이니 징역이니 이게 무슨 소리냐. 내가 사람을 죽였냐, 남한테 사기를 쳤냐.
이제부터는 '컨센서스' 없이, 어느 정도의 일반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이상 '착하게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 주기'는 어렵다. 체감하는 이해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ESG 논의가 캠페인으로 발전하든 그저 마케팅에 남용되든 어찌보면 피부에 와닿지 않았던 사람들도 문제가 달라진다. 지금 EU에서 제시했던 Green Deal은 그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구를 지키자는 이야기에서 더 나아갔다. 지속가능한 금융에 대한 어떤 의무가 부과되고, 그 의무를 위배하는 경우에는 (갈 길은 멀지만) 패널티가 있을 수 있다는 메세지가 나왔고, 그래서 난리가 시작된 것이긴 하다. 후술하겠지만, 현재 EU는 특히 EC의 입을 통하여 발표된 ESG 규제의 큰 줄기는 투자의 검토 단계에서 여하한 고려를 마쳤는지에 대한 평가지표이고, 해당 내용을 규제의 수범자들이 일정부분 공시까지 하라는 것이다. 특히, 공시의 문제는 2014년부터 제시되었고 (NFRD) 발전을 거쳐 7년이 지난 지금 이미 효력이 발생한 바 있다. 물론, EU 소재 기업에 대해서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세계가 SNS로 연결된 이 세상에서 G20 의 한 구성원이기도 한 우리나라 주무관청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가령,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를 담은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한국거래소 역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개 가이던스(Guidance)'를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정보공개 필요성, 보고서 작성과 공개 절차, 준수해야 할 원칙 등인데 EC에서 발표된 UN SDG 등의 주요 내용과 맥을 같이 한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 공시해야하는지에 관하여 EC가 제시하는 6가지 원칙 역시 동일하게 제시되었다. 정확성, 명확성, 비교 가능성, 균형, 검증가능성, 적시성으로 이루어진 6가지 원칙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할 때 참고하라고 제시되었다. 이 개념 속에는 TCFD, SASB 및 GRI 원칙 등이 제시한 중요성(Materiality) 개념이 녹아있다.
얼핏 보면 좋은 말이지만, 이 지침이 실무적으로 적용되려면 난관이 예상된다.
‘검증가능성’ 원칙을 예로 들어보자.
검증은 누가하나.
마치 기업들이 회계법인들로부터 감사를 받듯이 공신력 있는 그 어떤 기준이 확립된 것인가.
회계감사처럼 틀이 짜여지기엔 시행된지 얼마 안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면 검증 기관으로 소개되는 기관들은 ESG에 대해서 얼마나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의 검증은 과거 KS 마크처럼 해당 마크를 획득해낸 것 자체만으로 기업에게 어떤 성취가 인정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사실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이 된다. 실제 이미 공시의무규정이 효력을 가지고 있는 유럽 역시, 그게 무엇이든 공시되고, 공시되었다고 하고, 공시되지 않았다 한들 어떤 불이익이 가시적으로 예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내가 검증 전문가라고 나서서 검증 비즈니스를 신사업으로 론칭할 수 있는 기관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자문 수수료, 검증 수수료, 이름이 무엇이 되든 돈벌이가 새로 마련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장이 한 번 형성되면, 그 자문 시장의 힘을 빼기는 어렵다. 일단 벌이가 생긴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돈 벌지 말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검증기관이 넘쳐 흐르고, 검증기관 숫자 나열하는 데에도 한참 걸린다면, 보고서 작성의 의무 주체인 기업은 또다른 장애를 만나게 된다. 난립 중인 검증기관들 가운데 어떤 기관을 선택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겁이 나니 법무법인, 회계법인 일단 전문가라는 각종 자문사 다 모셔놓고 컨설팅을 받을 것이다. 그랬더니 그들은 다른 보고서도 다 준비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준비할 보고서는 점점 늘어난다. 안타깝게도 현재 공공기관은 물론 일부 대기업들도, 각 회사의 사업 보고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ESG통합보고서 등 한 회사의 같은 정보를 수 개의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고, 각 보고서에는 검증기관이 두 어개 붙는다. 실제 인천공항공사는 DNV, S&P로부터 ESG 검증을 받았다고 보고서에 공시했다. 그 가운데 DNV는 애초에 ESG 관련 전문 검증기관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국내 기관들이 자주 찾는 아주 핫한 ESG 검증기관이라고 한다. 자문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잘 개척하고 있다. 기업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국내기업에서 월급을 받고 사는 내 입장에서는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크게 와닿는다. 당장 주무관청에서 한 마디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금융위원회가 한 마디하거나, 그래서 거래소가 따라하는 한 마디는 비즈니스에서 아주 중요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손인 국민연금에서 제시한 ESG 평가 지표는 나의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환경(E)에서는 3가지, 즉, 기후변화, 청정생산, 친환경 제품 개발을, 사회(S)에서는 5가지, 즉, 인적자원관리, 산업안전, 하도급 거래, 제품 안전, 공정경쟁, 그리고 지배구조(G)에서는 주주 권리, 이사회 구성 및 활동, 감사제도, 관계사 위험,배당을 기준으로 기업의 ESG를 평가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뭘 어떻게 평가할지 감이 안온다. 이 기준들은 세상에 없던 기준이 아니며, 재무제표처럼 공시되던 데이터가 아니다. 그런데 이 지표를 가지고 성적을 매긴다고 하며 이 지표의 공시가 미흡하면 불리한 그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두렵다. ESG를 준비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 긴 글의 내용을 다 잊어도 된다. 그리고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지금 당장 효력이 발생했다는 ESG 공시의무는 그 공시대상 자체가 변경될 위험에 처해있다. 10여년동안 비재무정보를 공개하라는 명분으로 ‘기후변화와 책임투자’를 들었다. 45개 국가 (주로 EU 회원국) 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보 공개 규제가 도입되었으니 우리도 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ESG 평가 기준으로 그나마 확정적인 내용이라고 평가되었던 환경(E)에서 난리가 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세부적인 기술기준을 곧 오픈한다던 EC가 금방 무엇인가를 공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음 글에서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