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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Oct 08. 2021

3. 지금 유럽에 필요한건 동풍을 몰고 올 제갈공명

탄소중립 (E)드라이브 자체가 흔들리는 2021년의 가을


요즘 유럽에 필요한 것은 제갈공명이다. 동풍이 불라고 제사라도 지내야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상징이 되어버린 풍력 발전은 바람이 불어야 터빈이 돈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바람이 안 분다. 터빈이 돌지 않는다. 2021년 가을, 유럽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야말로 폭주 중인 천연가스 가격도 하필 이 때 수직 상승 중이다. 유럽의 각 정부는 비상에 걸렸다. 더 추워질 겨울에 답이 없는 상태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생 에너지 장려 정책은 유럽에서 한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요 10년간 유럽 그린 딜의 주요한 드라이브로서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 발전 등 다양한 종류의 재생 에너지원들이 투자처로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 유럽이 유난히 자신 있어 한 에너지원이 '풍력'이었다. 파리를 기점으로 그 위로는 그야말로 바람의 나라니까. 그 결과, 재생에너지라는 말, 그러니까 석탄•석유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라는 말을 유럽이 전세계를 상대로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풍력의 지분이 크다. 우리나라 공익 광고마저 삼각형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하는 걸 보면 꽤나 성공적인 드라이브였다. 


풍력은 크게 육상풍력과 해상풍력로 나뉠 수 있다. 육상 터빈은 작은 편이고, 해상의 터빈은 그야말로 집채만한 크기이다.  해상 풍력 터빈의 크기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영화 '테넷'을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주인공이 깨어나 까마득하게 높은 곳을 바라보며 열심히 올라온 뒤 뚜껑을 열고 나오던 장면 기억나는가. 그렇게 공들여 올라온 바다 저 너머 '자유의 여신상 보다 큰' 바람개비들 사이로 콩알만한 크기의 배가 다가오던 장면. 그 배는 크루즈 급이었는데, 그 바람개비들 사이에서는 콩알처럼 보였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크기의 바람개비들이 바다 한 가운데 꽂혀 있는 곳을 해상풍력 발전단지(wind farm)이라고 부른다. 삼각형 바람개비의 크기가 기술의 난이도를 의미하니 해상풍력에 어느 정도 트랙 레코드가 있는지를 보면 기술력을 알 수 있다. 잘 나가는 풍력 기술 기업들은 거의 유럽 기업들이고, 그 유럽에서 바람의 질이 가장 좋은 곳은 북해 근처, 발틱해 근처라고 하는데, 그 곳에는 이미 수천개의 바람개비들이 안정화단계를 지난 유럽의 주요 전력 생산 발전소들이다.  


안정화 단계라니, 그게 뭐냐고.


해상 풍력이 에너지원으로서 경제성을 가지려면, 기술적으로 시간이 좀 걸린다. 연안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곳 바다 밑에 해저 케이블을 깔고 각 터빈을 연결해가며 발전기를 꽂아 넣는 고난이도 공사에 수천억 원을 때려 넣는 일을 하고도 터빈이 예상대로 안 돌아갈 수도 있고, 어렵게 돌린 터빈에서 만든 전기가 제대로 저장되지 않기도 하고, 케이블에 문제가 생겨 육상으로 전달 되지 않기도 한다. 이 모든 단계가 설계대로 잘 작동하기까지의 시간이 안정화단계인데, 고난이도의 건설단계를 지나, 노심초사하는 안정화단계를 다 지나고 나서, 드디어 돈이 벌릴만큼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어렵게 생산한 '깨끗한 전기'를 전기 시장에 잘 내다 팔 수 있으면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안정적으로 발전이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도 있고, 그 모든 단계를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도 있는데, 풍력발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전제, 탄소 중립을 가능하게 해줄 이 깨끗한 에너지를 얻으려면, 그러니까 ESG에 딱 맞는 전력이 공급되려면 바람이 잘 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풍력 발전이 잘 되는 바람, 그러니까 풍질이 좋은 바람이란, 방향이 일정하고, 바람의 세기가 일정수준 이상 유지되는 것이라고 한다. 유럽의 북쪽, 북해, 발틱해 등의 북유럽의 바닷바람은 늘 일정한 방향이라고 하며, 바람의 세기도 좋다. 여름에도 쌩쌩 부는 수준이 유지된다고 하니. 그래서, 그 결과, 유럽은 경쟁력을 바람에서 찾았다. 유럽의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용감하게 바다에 터빈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정부와 EC에서 막강한 지원을 제공했다. 발전소가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파산 걱정하지 않도록 성공적으로 건설이 마무리 되면, 비록 안정화 단계 이전이라하더라도 전기를 먼저 사주기로 했다. 일정 수순 가격을 보장해주는 제도들이 개발되었다. 영국의 RO, 독일의 FiT등이 그 제도이다. 그런 제도는 실패의 부담을 감수하며 고난이도 투자를 집행한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 방향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세금을 퍼준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었기에 기술을 집약시킨 그 건설을 감행한 것이고, 풍력 단지 운영에 도전하고 성공하게 된 것이다. First Mover에 가까웠던 Osted 등은 실제 큰 돈을 벌었다. 이 과정은 성공의 이야기로 전래동화처럼 전해졌고, 인프라투자를 통하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기관자금들은 용기있게 재생에너지 투자건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수익이 나니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탄소중립은 곧 재생에너지, 재생에너지는 곧 풍력. 같은 요상한 캠페인 광고물도 제작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번 가을에는 통하지 않는 것같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지 않아서, 북해의 바람이, 발틱해의 바람이 시시하게 불기 시작했으니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온난화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 온난화를 완화시키려고 탄소 중립을 위해 시작한 노력의 상징이었던 풍력에너지는 전기료 상승의 주범처럼 욕을 먹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둔 정부 정책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가 모자란 발전량을 메우기 위해 천연가스를 몰아 사기 시작하니 가스 가격이 폭등하게 되고 결국 또 전기료는 인상되고 있다. 여름에도 긴 팔을 입어야 하는 유럽은 이미 난방을 시작해야하고, 9월 초부터 겨울을 걱정하고 있다. 미친 전기가격과 미친 석유가격으로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연일 폭발중이다. 다시금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재생에너지라는 뉴스로 번진다.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생에너지는 2018년 이후 유럽의 그린 딜 드라이브의 중심에 있었다. 기후변화를 완화시켜줄 단 하나의 대안처럼 강조되었고, 그린 딜의 상징으로 전면 배치되었던 재생에너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풍력' 발전은 고전 중이다. 각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들이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하여 전력구매계획을 재생에너지 장려 방향으로 수정했고, 화력 발전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생산된 전력은 더 좋은 가격으로 구매해주겠다고 단단하게 약속했었다. 명분도 좋았다. 풍력 발전에 의한 전력 공급량을 공격적으로 배치할수록 탄소가스배출량이 줄어드는 양과의 수치적으로 상관관계가 쉽게 도출되었다. 얼마간의 전력을 생산할 수록, 원래대로였다면 이만큼 발생했을 메탄가스가 아예 발생을 안 하게 되니, 자신 만만해졌다. 2030까지는 70프로, 2040까지는 80프로 2050까지는 100프로 재생에너지만 쓰겠다는 넷제로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솔직히 유럽 이외의 나라에서도 재생에너지 정책 따라가느라 바빴다.유럽은 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가 이렇게 지구를 위해 (우리가 잘 하는 기술로 이 산업의 헤게모니도 가질 수 있으니까) 재생에너지를 선도하여 투자했더니, 전력 수급에도 문제가 없는데 탄소배출도 이만큼 줄었다. 어때, 그러니까 이거 해야겠지! Osted, Iberdrola 등의 유럽계 국영 에너지 기업들은 (갑자기)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각광받으며 전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건설 발전의 성공적 트랙레코드는 전세계를 유럽의 깃발로 뒤덮을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그게 바람이 안 불어주다니. 바람의 나라, 북해와 발틱에서 바람이 안 불어주다니.


그 결과 유럽은 지금 완전히 혼돈의 카오스다.


후쿠오카 원전 사고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원자력발전 리딩 국가들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선언했건만, 그래서 석탄 석유 이외의 발전자원으로 비중이 작지 않았던 원자력에 대해서도 손절할 것 같았건만, 그랬던 유럽은 지금 고민 중이다. 2021년 10월 현재 재생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포함해야한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어차피 탄소가스를 배출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깨끗한 에너지임에는 틀림 없으니 Green Deal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넣으라며 요동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ESG에서 그나마 개념 정의 진도가 상당히 진행되었던 친환경에너지의 정의부터 다시 설정해야 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2021. 4. 발표된 EU taxonomy에 관한 각종 directives 등에서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taxonomy가 정말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결국 그 부분은 판단이 유보된 바 있었으나, 이제 원자력 에너지를 taxonomy라고 주장하던 그룹은 타이밍을 만난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드라이브 자체가 좌충우돌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벌써 효력이 발생한 EC의 SFDR (Sustainable Finance Disclosue Regulation) 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경이다. 그나마 완성된 것 같던 환경 (E)에 다시 원자력이 들어가는가. 그러면, 원자력발전소에 투자한 것도 esg 지침에 합당한 것이되고, 그 투자의사결정이 esg에 적합했다고 공시하면 되나? 작년까지만 해도 탈 원전하자더니 이게 뭔가.


ESG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 정립 자체가 지연될 수 밖에 없고, EC가 의도한 방향으로 안정되게 진행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투자의 흐름을 친환경적인 산업으로 유도하겠다던 드라이브 덕분에 Total(프랑스 최대 석유회사)이 이라크에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건설하겠다는 세상이 되었건만 그린 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방향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은 그 투자 대상이 탄소배출을 줄여 기후 변화를 완화시킬수 있는 타겟이라면 즉, Green Bond 를 통한 투자로 인정된다면, 그동안의 채권 발행과 비교하여 2~3bp정도 비용 절감이 인정되는바람에 안그래도 야박한 이자율때문에 투자에 고역을 겪었던 기관자금들은 그래서 더더욱 이른바 '친환경'테마의 타겟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었고, 그래서 재생에너지 투자건은 물건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제 원자력에너지까지 포함하겠다니, 나 정말 원자력발전소에 대출해도 문제 없는가?  탈원전으로도 충분히 전력을 얻을 수 있다던 EC의 꿈은 좌충우돌 중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다 잊어도 된다. 이 글에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재생에너지가 좋은 투자처가 아니라는 점이다. ESG 평가 지표 중에 재생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보겠다던 것, 그 지표가 흔들릴 수 있다. 그 이유는 재생에너지 투자 후 수익률이 안 날 수 있으니까. 바람이 안 부니 전력 생산도 목표치를 하회하고, 내 돈은 공중에 뜰 수 있다. 그걸 뻔히 아는 EC는 재생에너지의 범주에 원자력을 넣을까 고민 중이다. 이건 다시 제로 베이스로 돌리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ESG 투자한다고 누가 재생에너지에 돈 들인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애저녁에 4계절 바람의 방향이 다르고 그나마 부는 바람의 풍질도 들쭉날쭉한 우리나라는 풍력 발전이 어려운 지역이라고 한다. 서해안에 갑자기 꽂히던 바람개비들은 사실 해상풍력의 터빈 크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그냥 세운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G20이기도 하고, 파리 기후 협약이 '착하게 살자'인 것은 맞고, 따르지 않는다고 하기엔 너무 확실한 트렌드처럼 보였던 Green Deal,  ESG에 실시간으로 따라가겠다는 의지라면 나쁜 일은 아닌데, 우리는 풍력이 그렇게 먹히는 지형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면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다. 결국은 독일 FIT 처럼, 발전소에게 재무적 부담 없이 깨끗한 에너지를 생산할 것을 유도하려면 바람이 들쭉날쭉한 우리나라로서는 무지막지한 정부의 지원금이 수반될수밖에 없을 것인데, 실제 얼마나 대단한 지원금이 수반되는지, 앞서 이야기한 Osted, Iberdrola, Enel 같은 재생에너지 회사들은 2-3년전부터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제발 이들의 한국 진출이 내 월급에서 뭉텅 떼이는 세금으로 바람도 엉망인 이곳에 바람개비를 꽂아넣고 벌어들이는 돈과는 무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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