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런 때 브렉시트까지 감행한 영국은 지금 생지옥인것 같다. 물류가 마비되어 땅에 박아둔 석유도 부족하고, 그나마 주유소 가면 석유 가격도 가관으로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걱정은 연일 폭등하고 있는 전기료 문제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본 영국의 전기료 인상폭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기가 뭐길래 폭동 이야기가 나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환경 좋아하다가 사태가 악화되었다. 그래서 다들 화가 났다. 오, 그러면 재생에너지는 악의 축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영국 정부는 지나치게 대책없이 탄소중립을 외쳤고, 앞선 글에서 본 것처럼 바람이 안 부는 지금 모두 생지옥을 겪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처럼, 전기는 우리가 사는 데 '꼬옥 필요한' 필수 공공재이다. 다만, 만드는 데 돈이 워낙 많이 들기도 하고, 누가 이걸 가지고 장사의 신이 되겠다고 장난 치면 큰일이 나게 되어 있으므로, 전기의 공급은 나라에서 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런 공공재를 나라에서 준비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세금을 낸다고 배우기도 했다. 어린 시절과 달리 그 이야기 자체에 반박할 거리가 많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수긍하고 있다. 내가 운전하고 싶으면 차만 사면 되지 내 돈으로 길을 뚫어야 하는 부담이 없는 것처럼, 내가 방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으면 히터만 틀면 되지 전기를 생산해야될 필요를 없게 하는 것. 이것이 공공이 필요한 이유이긴 하다.
다만, 정부가 이렇게 공공재를 모두 생산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효율적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에게 독점적 권한을 주기도 하고, 전력 시장을 민간 시장의 논리로 풀기도 한다.
그런 곳이 어디있냐고?
전기료 대란은 사실 얼마 전 미국 텍사스에서도 있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발전소가 멈추고, 가난한 동네의 전기요금이 몇 천만원에 육박하게 되었다던 뉴스가 기억나는가. 그 뉴스를 같이 보던 주변 지인은 '어떻게 전기료가 몇 천만원이 나오는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텍사스 전기 시장은 이른바 '자유시장' 구조를 선택했으니까.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전력거래소와 전력 구매 계약을 맺을 때 발전량 좋을 때는 저렴한 가격에 사올 수 있지만 상황이 변하면 가격은 거침없이 오를 수 있다고 계약한 것이다.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따로 한다고? 그저 코드만 꼽으면 되는게 전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전기 시장의 특성때문이다. 우리는 전기사업 플레이어가 제한적이고 그렇게 생산된 전력을 거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한전(한국전력과 그 자회사들)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별 소비자가 발전소와 거래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텍사스는 가능하다. 미국은 나라의 크기가 워낙 커서 한 나라 안에 7개의 전력 시장이 있다. 7개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전력의 생산 판매에 관하여 중앙에서 컨트롤 하는 곳도 있고, 텍사스처럼 자유롭게 가격 경쟁을 붙인 곳도 있다. 자유시장으로 가자는 주장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는데, 요즘의 전력 시장을 두고 보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릴만큼 아찔하다.
(내가 무슨 한전 직원도 아니고, 발전소 엔지니어도 아니면서 이렇게 '전기 시장'같은 것을 설명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투자를 위해 (마지 못해) 공부한 여러가지를 공유하는 이유는 ESG 선도한다고 계획 없이 나서던 영국 사례에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ESG 평가지표에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만 강조하다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얼마나 탄소중립적인지만 강조하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공부해야 한다. 한국거래소가 제시한 ESG 평가지표도 재생에너지를 강조하고 있다. 친환경 투자가 강조되면서 ESG 펀드들도 넘쳐난다. 그게 좋은 투자인줄 알고 돈이 몰리게 되었다. ESG 강조하던 국민연금은 영국 인프라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일단, 저기서 난리난 것이 내 노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월급 불려보겠다고 투자한 펀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펀드의 기초자산에 친환경 기업이 있다면 꼭 다시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영국 여론은 연일 존슨 총리에게 비판을 퍼붓고 있다. 2021년 11월 글래스고에서 열릴 UN COP26기후 변화 컨퍼런스 (Climate Change Conference)가 열리기 전, ‘뭐라도 자랑하려고’ 치적을 만드는 데 급급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정말 존슨 총리는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어붙였다.
영국의 2800만 주택은 대부분 40년이 넘은 구옥이라고 한다. 기름 보일러를 떼는 것이다. 존슨 총리가 공약한 것처럼 2050년까지 Net Zero에 도달하려면, 그 과정에서 2035년까지 78%까지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겠다는 목표를 채우려면 얼른 기름 보일러를 치워야 한다. 갈길이 바쁜 상황이었다. 난방을 바꾸라고 정부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인 난방으로 바꾸는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그 바꾸는 장비•시설을 어떤 기술적 우위를 가진자들에게 맡길것인지, 즉, 누가 공급할 것인지 계획 세우기 전에 일단 기름 보일러를 떼는데 목표를 세웠다.
영국의 국토교통부 (the Department for Levelling uo, Homes and Communities) 에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40년 넘은 구옥들만 기준으로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40년까지 525bn 파운드 (약 900조)의 예산이 필요하고, 각 1 주택마다 18,75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예상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 산업에너지부 (the 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and Industrial Strategy)에서는 주택 개선에 관한 비용은 250bn파운드, 그러니까 400조 정도만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대규모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는 예상만 있었지 조달계획은 대비가 없다고 한다. 대신 일단, '행정명령' 같은 것으로 보일러를 정비하라고 몰아붙였다. 개별 가구들은, 특히 말 잘듣는 가구들은 보일러를 뗐다. 그리고 전기 히터로 교체한 모양이다. 그런데 전기료가 상승중이다. 그래서 히터를 못 켤까봐 가을 초입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여론은 급기야 탄소중립 강조하더니 이 꼴이 났다며, 탄소중립에 재생에너지 좋아하더니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퍼붓고 있다. ESG가 십자포화에 노출되고 있다.
영국이며 유럽이며 연일 난리인 이유가 공교롭게도 ESG라니 큰일은 큰일이다. 그린딜 하자더니, 탄소 중립 좋아하더니, 재생에너지 좋아하다 이꼴 났다며 전기료 상승의 주범은 친환경 아젠다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EC에서 10년 넘게 공들여 끌고 온 그린 딜은 그 존재만으로 전기료 상승의 원흉인것처럼 비판 받고, 지질이 복도 없는 EC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이고, 잘 나가던 재생에너지회사 CEO들은 직접 TV에 출연하여, 에너지 대란은 일시적인 것이며 재생에너지의 근간은 문제가 없다고 피력하기도 한다. 인터뷰를 즐겨하지 않던 스페인 최대 재생에너지 회사 Iberdrola의 대표이사가 직접 TV에 출연해 지금까지 모두의 노력으로 탄소가스 배출을 줄여왔으며,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임에는 틀림없다고 주장하며, 천연가스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른 것은 곧 안정화될것이니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줄여서는 안된다며 읍소했다.그런가 하면, 원자력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재생에너지만 깨끗하냐는 그들은 원자력에너지야 말로 바람이 안 불어도, 태양빛이 좀 덜 비추어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원처럼 이야기했다. 오, 세상에. 친환경 에너지 담론에 원자력이 다시 들어오는가. 이건 정말 ESG 논의가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인가.
이런 뉴스를 보자, 일단, 이런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벌인 해외 투자건에 국민연금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부펀드들이 얼마를 투자헸을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내가 가입한 금융상품들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 높은 것들을 다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다. 원자력에너지까지 ESG 로 편입한다고 하면, 사실 ESG 평가지표는 새로 구성해야 할텐데. 그 변경의 스피드를 우리나라 주무관청들이 잘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저 말 잘듣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포트폴리오에서 이미 재생에너지를 엄청나게 늘렸을텐데, 이러면 우리는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까.
원자재 (commodity) 가격이 들쭉날쭉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20년 2월, 정말 잘 될거라던 어떤 투자건은 WTI(석유) 가격을 40불로 전제했다. 작년 봄, 그러니까 그 투자건을 소개받은 뒤 한달 후인 2020년 3월, WTI 가격은 23불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투자 자체를 접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2021년 9월 현재 WTI 가격은 80불이다.
원자재 가격은 원래 출렁거린다. 이번 전기료 대란도 혹시 그런 본질적 특성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천연가스 대란의 경우에는 '러시아'라는 특수 상황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원래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EC가 이미 ESG 투자에 관한 규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중 안 높이면, 그래서 우리가 달성해야할 '탄소중립목'에 도움이 안되는 지 볼 거라면서 공시의무 규정들을 연이어 공표했다. 모두에게 소리쳤다. 탄소배출 없는 세상이 2050년부터 시작될 거라고.
그런데, 장밋빛 계획만 있었던 것 같다. 바람이 안 불 거라는 예상도 못했지만, 기름 보일러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보일러가 무엇인지 생각한 적 없는 것 같다. 9월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하는 스코틀랜드의 저녁 거리를 떠올리면 당장 기름 보일러를 없애라며 집 주인들을 윽박지를 거였으면, Second Plan은 있었어야 되는데, 친환경 보일러라고 전기 히터로 바꾸라고 해놓고 지원금 플랜도 오리무중인데, 전기는 모자란다. 겨울에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친환경 좋아하더니 저꼴 났구나, 재생에너지 하자던 ESG는 헛소리였어. ESG 이런거 필요없다고! 라고 외치는 영국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럽(영국 포함)은 지금 바람이 안 불어 문제다. 전력 생산 비중 잔뜩 높여둔 풍력에서 '빵꾸'가 났다. 그럼 가스를 태워야 하는데 천연가스가 280% 올랐다. 발전단가가 높으니 발전소는 전력가격을 높여 팔 수 밖에 없고, 부담은 End User들, 소비자인 개인들에게 부담이 전가되어 전기로는 폭등했다. 특히, 영국은 나름 재생에너지의 선두국가 가운데 하나였고 영국의 RO 제도 덕분에 풍력 발전단지들은 2017년무렵까지 호황기였다. 그런데, 그 바람이 안 불면, 팔 수 있는 물건이 없어 돈을 못 벌고, 발전소들도 자금이 딸리는데, 가정집들은 추위가 걱정이다. 영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며 준비할 여러가지들을 준비 단계에서 미처 다 고려하진 않은 채, 그린 딜을 외쳤다. 영국 그린딜의 두 가지 화두는 첫째 화력 난방 줄이기였고, 둘째는 전기차였다. 화력 난방이 이 꼴인 걸보면, 전기차도 걱정이다. 배터리가 재활용되는 소재인지 아닌지 논할 때가 아니었다. 전기차의 결함이 발견되어 교통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재고해야하는 순간이 왔을 때, 대책은 없을 것같다. 지금 영국의 뉴스를 보면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것 같다.
탄소중립을 외치던 유럽은 2030년, 2050년까지 멀리 내다보고 무엇인가를 설계한 것으로 믿었다. 역산해서 시간을 배분한 줄 알았다. 2050까지는 이래야 하니 2040까지는 여기까지 확보하고, 2030까지는 이렇게 하자. 2021년 현재 9년 남은 2030까지는 탄소배출을 70%까지 줄인다고 했었고, 어느정도 가능해보였다. 그래서 나 역시 재생에너지 투자건을 많이 검토했었다. ESG 평가지표가 완성되면,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이 높아야 하고, 그런 재생에너지 투자건이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면, 석탄 발전소를 쳐다볼 이유는 없었다. 석탄발전소에 대출해주면 빌려준 돈 받기도 어려워 보였다. 발전량을 최대치로 뽑아도 팔리지가 않을 거고, 그러면 연료 사올 돈도 부족해질텐데 대출하면 떼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력판매량이 받쳐줘야 이자를 내는데, 저거 잘 못 파는거 아니야, 이런 것이다.
E, S, G 가운데 E는 투자자로서도 선택지가 다양했다. 기후 변화를 완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증명된 재생에너지원과 관련되 곳에 돈을 대거나, 에너지 효율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에 돈을 대거나, 그들이 변화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개편을 위해 돈을 대면 ESG 투자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산업 구조개편, Transition Fund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령 Total 이라는 석유회사가 풍력발전단지와 태양광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하려면 돈이 들테니 거기 돈을 빌려줘라, 그러면 E pillar는 충족이다. 이렇게 유도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자본은 EC가 가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물줄기를 이루어 놓았는데, 물이 샐 것 같다. 난방을 교체해서 기름 보일러 안 떼면, 만사 형통일 줄 알았는데, 이런 변을 겪게 되었고, 뚜껑을 열어보니, 이 물길만 흐르게 했을 뿐, 영국 정부는 계획이 없었다. 보일러 교체 지원금의 조달 방법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불만을 표출한다. 당장 석유에너지를 더 쓰라고 하나, 그럼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매출은 어떻게 되나. 잠깐, 석유 석탄에너지에 투자하지 말래서 투자금을 재생에너지로 옮겨둔 국민연금은 어떻게 되나.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해외 인프라 투자의 비중을 늘려두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영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나는 내 노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