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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Oct 18. 2021

6. 문제는 통찰력이야, 바보야

ESG 평가지표와 데이터, 뭣이 중헌디

여기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 대한 은행 사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외화 자금이 유입되어 한국의 자산 시장 (가령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 시장)에서 교란을 벌이는 일련의 트렌드를 감지했다. 한국 자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하여 '비거주자'의 '자산 매매'에 관하여 일련의 가중 요건들을 새로이 규정해야된다고 생각했다. 팀장님께 의견을 말하니 귀찮아하시는 것 같다. 책상 너머 팀장과 독대하는 것을 지켜보던 손위 부서장, 과장님이 조용히 부른다. '너 혼자 나 제끼고 잘 나가고 싶냐. 사회생활 어떻게 하는 지 모르냐.' 사원은 굽신거리며 제자리로 온다. 망했다는 생각에 조용히 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느날, 직원이 제출했던 아이디어가 과장님의 이름으로 게시되었다. 과장님과 팀장님이 사원을 둘러싸며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야 하니 사례를 찾아오라고 한다. 사례를 찾을 수 있으면 컨설팅 회사를 다니지 않았겠냐고 농담을 했더니 '라떼는 말이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살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내 보안망을 뚫어가며 구글과 네이버를 모조리 찾아본다. 블로그 등등 알 수 없는 출처의 자료까지 고구마줄기처럼 이어 붙인 보고서를 혼자 만드느라 몇 주를 야근 지옥에 산다. 얼추 보고서의 분량이 과장과 팀장을 만족시키는 10여페이지 수준에 이르자 국장님에게 보고한다고 했다.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듣자 싶어 기다린다. 그런데 국장님이 정치적인 이유로 전보 발령을 받으신 모양이다. 갑작스런 인사발령으로 공석이 난다. 허송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새로운 국장님이 오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트렌드를 보여달라고 하신다. 그동안 준비했던 보고서는 파지처분 되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뉴스에 '외국인들이 쓸어 담는 서울의 아파트'라는 기사나 쏟아진다. 국장님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셨는지 어떻게 이렇게 아이디어가 없냐고 호통을 치셨다. TFT를 만들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TFT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과장님이 TFT 팀장이 된다는 소식에 못 들은 척 하려고 했다. 부서장은 직원이 만들어둔 자료를 가지고 TFT로 발령 받았다. 더 이상 안 봐도 되는 줄 알고 좋아하던 찰나, 밤 마다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든 자료가 아니니 자꾸 물어볼 것이 생기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이었나.

한국은행의 컨설팅 결과, 직원들이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기업으로 꼽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게. 좋은 대학 좋은 스펙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국책은행인데, 안타깝기도 했고, 자기 자리 위태롭게 할까봐 온갖 악행을 일삼던 윗사람도 생각나 남일 같지 않았다. 




굳이 대한은행이라고 했으나, 여기에는 '한국은행', '기재부', '산통부' 등 여하한 이름의 공공기관, 내노라 하는 대기업 이름 무엇을 갖다 넣어도 어디서 들어본 스토리가 된다.  그런데 더 비극은 저런 보고서 지옥 속에서 '뭐라도 매년 새로운 성과'라고 공표해야하할때 생긴다. 가령 새 정부에는 새 슬로건이, 새 국장님에게는 새 프로젝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오랜 고민 없이 정책을 발표하면, 앞서 이야기한 영국처럼 망하게 된다. 존슨 총리는 11월 글래스고에서 UN COP26을 열기로 하고, 부랴부랴 기름 보일러 떼라고 난동(?)을 부렸다. 뭐든 해야 되니까 뭐든 쥐어짜게 되고, 오랜 고민 없이 뭐라도 새로운 것이라며 밀어붙인다면, '에라 모르겠다, 이거 개발하자'며 갑자기 창업지원센터를 짓거나, '에라모르겠다, 친환경 지원금을 주자'는 깊이 없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회장님'이 ESG에 관심을 가지신다는 지령이 떨어진다. 회장님을 모시는 가까운 분들부터 갖가지 아이디어를 조각 조각 쏟아내기 시작한다. ESG, 그거 친환경인거 나도 잘 알아. 나 아는 사람이 ESG 전문가야 (오, 그게 전문가가 있을 수 있나 지금 현재!) 라고 말하며 직원들에게 공지한다.


'ESG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환경을 보호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각자 SNS에 봉사활동한 걸 올려라'


기업이 돈을 벌어야지 봉사활동을 왜하는지 궁금해하는 직원들을 다독이며 그들의 봉사활동 현황을 보고서로 만드는 부서가 생겨난다. 부서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얼마나 참여했는지, 경쟁사들은 어떻게 봉사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했는지 (무, 물론  고객들은 기업이 봉사한다고 좋아하지 않지만)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런 스토리가 익숙하면 당신은 공공기관 혹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데이터의 시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알아야 면장질 한다'는 말이 새삼 위력을 갖는 시대. 데이터를 모을 줄 아는 게 돈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던 발빠른 IT기업들이 좋은 퍼포먼스를 내며 치고 나가자 뒤늦게 뛰어든 대기업들이 뒷 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마이데이터 사업'은 연내 닻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이 된다. 후발주자들은 앞선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IT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통찰력과 실행력을 뒷받침하는 생각회로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데이터 시대랍시고 데이터를 긁어모으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무릎팍도사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시각각 쌓이는 데이터 그 자체는 택배 포장지처럼 무용지물 쓰레기다. 데이터 때문에 서버를 증설해도, 클라우드를 맥스로 계약해도 미친듯이 쌓이는 그 양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쌓이기만 하는 데이터 많이 보유했다고 데이터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없다. 어떤 필요로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네야 하는지 통찰력을 가지고 타겟팅하지 못하면 사실 이 모든 것은 돈 주고 비싼 쓰레기 모으는 일이다. 돈 주고 쓰레기 창고를 증설하는 것이고 데이터 센터 관리하는 데 드는 돈 생각하면 돈 먹는 하마를 키우는 일이 될 것이다.


생각회로를 따라갈 수 없어서 돈 먹는 하마 키우는 일이라고?

우리를(대기업) 뭘로 보고.

우리가 사람 뽑으면 되지 (주로 데이터 전문가, IT 인력)


데이터 전문가들은 많은데, 왜 내 사업 잘 되는 데에는 유효타가 되지 못할까.  

내 사업이 잘 되기 위한 통찰력은 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강연하는 사람들, 그리고 데이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며 교보문고 부터 들리는 사람들은 사실 내 사업을 나처럼 접근하지 못한다.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겠다는 핀테크 업체 사장은 Nice 신용평가, KCB 신용평가에서 주는 신용도 이외의 신용을 체크하고 싶어진다. 같은 600점대인데 어떤 사람은 대출을 일으켜 갚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잠깐 대출을 일으키고 바로 갚는 등 패턴이 다르기때문이다. 이 사장은 이것 저것 데이터를 보고 싶어진다. 이 사람의 쇼핑 습관, 이 사람이 월급을 어디다 질러버리는지 그 패턴을 보고, 이 사람의 연봉 상승율을 보고, 이 사람의 자산 상태를 들여다보니, 이 사람은 학창시절 무슨 사연인지 사채빚을 지고 시작했으나, 그 다음 차근차근 갚아 나가며 소박한 연봉이지만 그거 쪼개가며 적금도 들며 살고 있다. 사채빚때문에 KCB 신용점수는 낮지만 이 사람한테 빌려주면 정말 잘 갚을 것 같다. 데이터를 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과감하게 중금리 신용대출을 늘려주기로 했다. 대출주선이 잘된다. 수수료가 쏠쏠하고 이자가 따박따박 들어온다. 데이터를 자기 사업에 제대로 사용한 예이다.


이런 방식은 대기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업은 이렇게 할 것이다.


빅데이터 전문 TFT가 조직된다. 그들은 핀테크 업체같은 앱을 개발하자며 사람도 뽑고 내부 인력도 차출되어 회의를 시작한다. 일단 중금리 신용대출을 많이 일으켜보자고 한다. KCB, NICE, 한신평 등의 신용점수를 스크래핑해서 가져오는 조회 페이지를 코딩한다. 그리고 다른 데이터들을 사오기 위해 데이터 제공업체들과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앱을 오픈한다. 오프라인 창구에서도 신용점수가 낮아서 대출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대기업 앱에서도 안된다. 오프라인에서와 같은 신용평가사 점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대출은 생각보다 원래 대출해줄 수 있던 곳에서만 터진다. 그러면 데이터는 왜 사왔는지 궁금하다. 아마 빅데이터 시대니까 데이터는 필요해서 샀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데이터 뭔가를 했으니 시대를 잘 따라잡고 있다고 자축한다. 사례를 더 알아보자고 한다. 잘 된 핀테크 업체 사례를 연구하거나, 연구된 보고서를 만든다. 아이디어는 타이밍인데 또 한발 늦는다.핀테크업체와 대기업의 밸류 차이는 PER 에서부터 게임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SG 얘기 하다말고 갑자기 데이터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하나다. 


ESG에 휘말리지 말라고. 

ESG 라는 논의를 내가 (내 회사가) 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내 회사의 사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라니 나도 ESG 하겠다고 말을 뱉었고, 그래서 ESG 평가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뭘 하는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누누히 말했지만, 유럽도 난리다. 지금 이걸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각종 해외 사례 보고서로 만들어 가져오는 컨설팅 업체에 끌려가지 마라. 그돈 들여 받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보고서는 영문 자료의 번역일 뿐, 내 사업을 위한 통찰력은 들어있지 않다. 'ESG 평가 보고서'를 만들어 주신 그 전문가 집단에게 휘둘리지 마라. 그들이 가져온 보고서를 가지고 결국 뭘 할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ESG는 투자에 대한 방향을 고민하며 시작되었다. 지속가능한 투자가 되도록 망해가는 산업의 막차를 타지 않도록 잘 좀 보고 투자하자는 각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내 기업도) 그 시작을 잊으면 안된다. 신규 사업을 투자하거나, 금융기관으로서 투자 대상을 물색할 때, ESG라고 도맷금쳐진 방대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내가 중심을 잡을 방향이 어디인지 나는 어떤 목표로 ESG 를 이용할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 방향은 내가 (기업이) 결정해야 한다. LG의 회장님이 맥킨지 믿고 2G 폰에 천착하지 않았더라면, LG가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LG의 양반 문화를 존경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스토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ESG는 모두를 혼란하게만 하고 있는 것같다. 그 기업이 금융기관이든 일반기업이든, 소재회사든, IT 회사든 ESG 를 추진한다는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EC가 제시한 6가지 원칙을 소리치고 있다. EC가 제시한 원칙들을 추진하겠다며 보고서를 쓴다. 그 보고서는 같은 내용을 담으면 안된다. 내 기업과 저 기업은 다른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 내용과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보고서를 왜 쓰는지 ESG 보고서를 만들어가며 도달하고 싶은 방향은 무엇이었는지 생각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소집된 ESG추진위원회 회의 장소에 자문업체가 초대된다. 그들은 해외 사례를 예시로 든 자료를 돌린다. 위원회의 막내는 그 자료를 회사 양식으로 변경한다. 수치적,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 정성적인 것을 보겠다니 요약하기도 어렵다. 비재무정보들을 가지고 뭐가 낫다고 결론 내리기도 애매하다. 그냥 모호하게 결론 맺기로 한다. 애초에 그 자료를 왜 달라고 했는지도 모호해진다. 어느순간 평가는 통과의례처럼 시시해진다. 이렇게 되면 안된다. 


컨설팅을 받는 것은, 자문을 받는 것은, 그들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목적은 뚜렷한 결과를 지향해야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투자 의사결정과정이었는지 공시하는 내용에 관한 자료를 요청한다면 그 자료를 통하여 내가 도달하고 싶은 방향이 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그렇게 되면 ESG가 태초에 제기된 목적이 흐려진다. 결국엔 모두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지겹고 짜증나는 불필요한 일이 되진 말아야한다. 


그 옛날, 운동장 조회가 있던 시절 교장 선생님 말씀이 기억 나는가. 


그날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나온 최신의 화두를 짬뽕해서 던지셨지만 기억에 남지는 못했던 그 지루한 연설들, 이유는 딱히 번뜩이는 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결론으로 용두사미 되어버린 그 긴긴 이야기들은 그렇게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요즘은 지천에 널린 것이 교장선생님들이다. 어찌나 ‘트렌드 전문가’가 많은지 전문가가 갑자기, 다량으로 증식된 느낌이다. 하긴, 블랙아이드피스가 노래했듯, ‘Google is my professor’ 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 정도 현상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에서 검색되는 뉴스 트렌드를 예쁘게 포장한 다양한 보고서들은 내 기업의 방향을 결정해주지 않는다. 검색해서 나오는 파편적 지식의 나열은 솔루션이 될 수 없으며, 후렴구만 생각나는 스트리밍 한철 장사 노래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을 낚시하는데 성공한 번듯한 제목과 표지만으로는 라면 받침대가 되는것처럼 솔루션이 될 수 없는 정책은 생명력 없는 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내 기업이 ESG 라는 고민거리를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룰 것인지 방향이다. 그 방향은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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