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륜 구경

'태초에 불륜이 있었나니'인가

by Nima

초등학교4학년이었나, 3학년이었나.

우리 반 남자애 하나가 결석했다. 주변에 앉아 매번 장난치는 무리 중의 하나여서, 빈 자리가 금방 느껴졌던 어느 날,

하교길 한 구석에 응급차가 여러 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대단한 사건 현장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몰려나온 것 마냥,

사람반, 공기반 같은 그런 광경에 약간 겁을 먹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 통에 혹시라도 내가 길을 잃을까봐 뛰어나왔다고 했다. (그때는 키즈폰이 없던 시절이니까. 하하)


나는 엄마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오늘은 친구가 결석했다고.

엄마는 그랬냐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옆집 아줌마와 복도에서 엄마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줌마 목소리였다.


"싸우다가 떨어졌나봐."

"애가 있는데? 애기는 결석했다던데."


우리엄마의 목소리였다. 내가 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내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 누가 떨어진 것인가.


"눈에 보이는게 없었겠지만, 놀랬어."

"애기는 어떻게 해. 걔는 이제 어떻게 해."




불륜이라는 단어는 드라마로 배웠다.

매번 그렇게, 실장님들은 회사의 신입사원을 사랑하고, 실장님의 와이프는 그 신입사원을 못 죽여 안달하는 것 정도가 내가 배운 불륜이었달까.


주입식 교육덕분인지, 오래도록 '간통죄'가 형사처벌 받았던 나라여서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불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관검색어로서 '백여시', '무책임한 놈'이 같이 떠올랐을 뿐, 그 관계가 가져올 파장의 깊이나 넓이 같은 것은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처음 '불륜'을 가까이 보게 된 것은 그 유명한 '변양균-신정아'사건의 기록 일부를 검토하면서였다. 그 방대한 자료의 극히 일부를 살펴 본 것에 불과한 내가 그 관계의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이 두렵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진 적 있다.


'그때는 사랑한 거 아닌가? 사랑한 것 같은데?'


찰나의 순간처럼 짧았겠지만,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이여자를 사랑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불륜에 엮인 여자는 모두가 돌을 던질 '마리아 막달레나'였던가.


나는 동료에게 이 궁금증에 관하여 질문한 적 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봤자, 들키면 조강지처한테 무릎꿇고 빌고, 살려달라고 하고, 저 죽일 년이 나 꼬셔서 잠깐 흔들렸다고 하는거야. 무슨 대단한 사랑."

"그걸,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자기한테 온다고 생각한 여자도 그냥 죄인이야? 이 여자가 그렇게 감수한거라고는 생각안하지만."

"남자 믿지 마. 그 남자 지루한 인생의 일탈일 뿐이야. 그런 남자들은 가정 안 깨. 거기까지 어떻게 갔는데. 가정 버렸다는 말 듣기 싫어해."

"이미 갈라선 것과 마찬가지라도."

"한치의 스크래치도 남기 싫은 거지. 그냥 지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말 듣기 싫은 거야. 그니까 쉬운 방법 쓰는 거지. 저년이 나 꼬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 초등학교 언젠가 결석했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의 가는 목소리로 기억된 그 이유와 함께. 그들은 무엇을 놓고 다투었나. 욕을 먹어도 좋으니 나를 놔 다오? 그러면 남은 우리는 어떻게? 그건 나도 몰라였나?


"애기 때문에?"

"애기도 핑계지. 그럼, 이혼하는 사람 없게? 그냥 남자 나름이야. 지 다치는 거 싫어하는 놈인지, 같이 불구덩이 가자는 의리 스타일인지."


그래, 누구는 왕관을 버리기도 하지. 그것은 하나의 신화 같이 아득한 이야기지만.


"그리고, 신정아도 그 사람 이용했어. 백여시 맞지 뭐."

"맞아. 다만 국민불륜녀가 되고. 사랑했다는 말 한번 못 듣는게 그렇잖아. 남자는 이혼도 안 해."

"신정아 변호인으로 추천해야 되겠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불륜을 드라마로 배워서 그래."


그러나 그 뒤에도 불륜을 드라마로 배운 내게 혼란이 된 소식이 있었다. 존경하는 검찰총장님이 혼외자 문제로 낙마하셨던 때였던가. 그 때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혼외자, 그 엄마, 제가 사랑했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용서해주십시오. 다만, 저 일은 잘합니다. 이렇게 말 못하셨던가.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태초에 백여시가 없어지고 조강지처 혼자 욕할 곳 없이 물먹어서 안된다고.


그렇게 남의 나라 이야기 같던 불륜이 내 인생에 폭탄으로 쓰여진 적 있다.


내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부단히 노력했던 전 직장상사는 급기야 내가 회사의 누구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 말씀을 드린다고 윗분들에게 방송한 것이다. 내가 걱정된다며.


한 분이 내게 그 말을 전해주셨고, 나는 근거를 대라고 했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널 칭찬했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말로."

"하하하. 저 따위는 칭찬을 받을 수 없나보죠? 저는 일을 못해야 되나봐요."


나는 그 부분을 문제삼았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무고죄라고 했다. 본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나는 명예의 의미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은 몰랐다.


누가 봐도 명백한 결론이 나야할 곳에서 내가 져버렸다. 윗분들 중 한 분은 나에게 '둘 다 비긴 것이니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나를 이렇게 달랬다.


"간통죄도 없어졌는데, 불륜이 무슨 스크래치니.니가 무슨 손해야."


아. 저는 손해가 없군요.

여러가지 질문은 남았지만 나는 모든 것에 지쳤다. 나는 그 회사를 그렇게 떠났다. 그리고 내게 불륜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학습되었다. 남을 공격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 뭐 이런 류 정도.


정치인의 성폭력 스캔들로 온 나라가 난리인마당에, 갑자기 생각나서 글을 써봄.



아야꼬 할머니의 에세이 중에 '오해받더라도 상쾌하게'라는 글이 있다.


어디에선가 신이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과소평가받지도, 과대평가받지도 않으니 걱정말라고.


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권선징악은 판타지다. 그러므로 나는 오해받아 입은 상처를 안은 채 죽을 것 같다. 다만, 되도록 상쾌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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