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없는 무덤이 되자

내 행복을 위한 너의 불행이 없도록

by Nima

막연하게나마 이번 생에 '아들 엄마'가 되는 것은 물 건너 간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나, 불쑥 '입양'도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지인이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검은 머리 키우는 거 아니랬어. 너 지금까지 맘 고생하며 산 것은 일도 아니야. 애저녁에 그런 생각 집어 치워."

"그냥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가 진짜 엄마 아들은 아니라고 알고 시작하면 말이야."

"걔가 어릴때는 돈 대주고 하니 고분고분하다가 양에 차게 안 주면 행패 부리고, 돈 더 내 놓으라고 하고, 진상 치면 어떻게 할래? 너 배 아파서 낳으면 참기라도 하지, 싸울래?"


막장 드라마의 영향인지 어둡고 불행한 가정부터 쏟아내는 지인 덕분에 나는 그냥 농담이었다며 말 끝을 흐려버럈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입양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음을 반성했다. 그 아이는 쿨할 필요 없는데, 나란 사람이 아이에게 엄마라고 나타나자마자 처음부터 쿨할 것을 강제하면, 그 애는 어디에 마음을 두며 자라나. 같은 반에 묶였다는 이유로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친구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지내야 하는 것처럼, 입양되었다는 이유로,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계속 '가족'이라는 허울 때문에 관계에 관하여 노력해야 하는 아이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왜 갑자기 입양은 생각해내가지고, 안 해도 될 걱정을 시작하는가. 아니다, 아니야. 나는 이래저래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에는 여즉 많이 모자란다.



맥주맛도 모르던 스물 셋부터,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아들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좋아하던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정때문이기도 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우리 엄마처럼, 혹은 우리 이모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한테 애교 섞인 구박을 하며, 아들, 딸한테는 조물주 이상의 존재로 사랑을 퍼주며 사는, 지극히 평범한데 은근히 복 받은, 아줌마가 되고 싶었던가.


세월이 가며, 어느 덧, 농담 같던 내 꿈인 '아들 엄마'는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고, 농담처럼 '늦지 않았어'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느 덧,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혼자 사는 게 더 좋아, 무자식 상팔자라는데'라고 힘들게 위로한다. 아주 용기있는 동생들은 가끔 이렇게 지르기도 한다.


"누나, 인생 뭐 있어. 아들부터 만들고 결혼해버려. 신랑이랑은 차차 친해지는 거지 뭐."



실제, 인생에서 두 번, 내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남자를 만난 적 있다. 그와 결혼이 어려워도, 아이만 갖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입밖에 꺼낸 적은 없지만.


앞 뒤 안가리고, 불나방처럼 사랑해버리는 내 스타일에, 진즉에 아들 둘은 낳아버렸음직 하기도 하지만, 나를 진정시킨 것은 한 가지 걱정 때문이었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이렇게 물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하다보니, 도저히 나 좋으라고, 나만 좋으라고, 아이를 가질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엄마가 아빠한테 사랑을 받는데 실패했거든.

내 실패를 너에게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엄마가 더 사랑해줄게.


이런 변명을 골똘히 준비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극히 이기적인 변명이 부끄러워서. 아들은 순전히 나의 이기심때문에, 남들은 다 있는 아빠가 없고,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내가 두 배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들에게 못할 짓이었다. 아들은 같이 공놀이를 해줄 아빠를, 본 적도 없을 아빠를 그리워할 것이고, 혼자 속 깊어진 어린이가 되어 티도 못내고 속으로 삭일 것이다. 남들은 칭얼대며 땡깡을 피울 때, 아들은 엄마 속을 헤아리며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굴 것이다. 생각만해도 마음이 찢어졌다. 나는 그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행복을 위한 너의 불행, 이렇게 잔인한 반비례라니,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어릴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가지들이 요즘은 문득 문득 마음을 뜨겁게 한다.


가령,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던 그 아주머니가 왜 그 부자 할아버지랑 재혼하셨는지, 남 부러울 것 없이 잘 살던 그 멋진 언니가 갑자기 그 중국 사업가랑 결혼식부터 올리고 바로 아들을 낳았는지. 잘 나가던 그 여배우는 왜 조용히 은퇴했는지. 왜 그와 똑 닮은 아들은 미국에 유학 중인지. 앞 뒤가 맞지 않던 모든 이야기들은 다 그럴만했던 것이다. 인생사 그럴 수 있고, 이럴 수 있다. 그 모든 이야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가끔 딸을 낳아달라고 했다. 나는 아들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 닮은 딸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서 아이를 원하지는 않았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주 마지막 순간이 되기 전, 두 어번 고민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심했다. 그는 내 아들의 아빠가 될 수 없다. 내 아들은 반드시 같이 공놀이 해주고, 같이 자전거 타주고, 가끔은 수학 성적도 확인해주고, 가끔은 엄마 몰래 용돈도 쥐어주는, 진짜 아빠가 필요하다. 그는 아니었다. 내 이야기에는 남이 봐도 이해가 가는 이유가 없다. 나는 그저 이기적일뻔 했다. 나는 그냥 사연 없는 무덤으로 갈란다. 아무런 사연 없이 이렇게 혼자 살다 가야겠다.



우리 엄마는 26살에 나를 낳았다. 불어를 전공하며 프랑스로 그림 공부하러 가는 것이 꿈이었던 엄마는 스물 여섯부터는 나를 키우느라 혼비백산 정신이 없었다. 나는 농담처럼 이런 얘기를 한적 있다.


"뭘 몰랐으니까 결혼하자마자 낳았지. 뭘 알았어봐, 애부터 놓고 그럼 안돼, 엄마. 선녀와 나무꾼 몰라?"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나는 아들 엄마가 되긴 글렀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주문해 놓고, 엄마 생각을 하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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