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만 안아줘

당신에게 내 하루가 원하는 단 한 가지

by Nima

야망있는(?) 친구 몇은 각자의 빅 픽처를 이유로 일년에 두 세번 만나는 남자친구를 (굳이) '롱디(장거리 연애)'라는 명목으로 잡아두곤 했다. 나는 그 부분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안정이 좀 돼?"

"뭐, 채팅하고, 얘기 나누고."

"그건 그냥 친구도 하는 거잖아."

"그럼, 넌 뭘 해야되?"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되묻는 그녀에게 나는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안아줘야되."

"하하하하, 그건 만나면 질리도록 안아주니까 난 괜찮은데."

"난 가까이 있어야 되. 보고싶잖아."

"솔직히 남자가 서울에 있다고 너 매일 봐? 아니잖아. 주말에 한 번, 주말도 어쩌다 못 만나고, 지 바쁘면 미루고 이러고 저러고 하면 일년에 50번 못 보는거 아냐? 난 한번에 1-2주 해외 나가서 실컷 보거든. 그러면 비슷해."

"아...하긴 넌 너가 뭐 하는 일도 많고 바쁘니까."


나는 약간 풀이 죽었다. 나랑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도 바쁜데, 시간 없는데, 그래도 나는 남자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친구가 되물었다.


"매일 봐야되?"

"그건 아닌데..."

"그럼, 왜 가까이 있어야 되?어딜 놀러 가고 싶어?그냥 친구끼리 가도 되잖아."

"난, 꼭 데이트한다고 좋은데 가고 그런거 필요없거든. 그냥 맛집 사진 찍고 그런거 필요 없어."

"그럼?"


똑부러지는 친구의 취조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던 나는 코너에 몰린 도둑처럼 급하게 외쳤다.


"난 그냥 안아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냥 30분 안아주면 좋겠어. 퇴근이 늦어도 가까이 있으면 얼굴을 볼 수 있고, 아무말 안해도 되니까 30분 꼭 안아주면 좋겠어."

"하하하하하하."


친구는 농담으로 내가 애정결핍이냐고 물었다. 난 순간 궁금했다. 그 많은 자존감 서적, 심리학 서적마다 한 번씩은 언급된 말이 '애정결핍'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무지하게 받고 자랐다. 사연있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난 그냥 내 남자친구가 내 고단한 하루의 끝에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가 내 등을 꼭 눌러줄 때, 나는 그 하루를 잘 마무리할것만 같았다. 난 그냥 웃고 말았다.


내가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아래의 그림, '포옹'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가 가진 그 모든 이슈는 나와 상관 없다. 나는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가 느끼고 있는 그 풍부한 안정감, 만족감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연인'이 필요한 이유는 내 인생의 빅 픽처때문이 아니다. 나는 안정되고 싶고, 만족하고 싶다. 당신이 안아주면, 외발로 서 있는 듯한 이 묘한 불안감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는 느낌이다.

그는 최초에 나에게 소개팅을 해 주겠다고 했다. 남자 어디를 보냐고 물었다. 나는 쭈볏거렸다. 아직 '30분 안아줘야된다'는 말을 할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가 범위를 좁혔다.


"조건 보세요?"

"아뇨."

"조건 보는게 나쁜건가요. 그래도 마지노선이 있을거 아니에요."


그가 웃으며 물었으나, 나는 조금 망설였다. 나를 변태로 알 것 같아서. 그러나, 조건을 읊기 시작하면, 내가 원하는 남자를, 내가 원하는 연애를, 내 외로움을 달래줄 그런 '삘'의 남자를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는 직업이나 돈 이런 거 아니라 이상한 걸 보는데, 그냥 '삘'을 본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

"얼굴 보네요."

"음, 얼굴이 아니라..."


나는 굳게 다짐했다. 그래, 주변에 새로운 사람이 많은 그에게 정말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그럼, 그도 나의 취향을 알아보겠지.


"저는 남자가 저를 꼭 안아줄 때의 느낌이 중요해요. 안아주면서 엉덩이를 빼면 안되요. 꼭 등을 눌러줘야해요."

"네?"

"엉덩이 빼고 성의없이 안아주면 안된다고요, 아무말 안하고 30분은 그렇게 꼭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 넓은 사람요. 변태 같죠?"

"하하하하하하하."



그와 만나는 동안, 그는 꽤나 온 마음을 다해 안아줬다.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우리가 부둥켜 안고 있으면, 정말 곰 두마리였는데, 그 순간은 내 하루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내 기억에 잔재한 그 감각들은 그가 내게 남긴 기억 중에 제일 소중한 것들이었다.


한번은 한참 가만히 안고 서 있던 그가 내게 귓속말 했다.


"나 어릴적에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한 적 많거든."

"근데?"

"아버지가 질색하셨지, 남자가 엄마 찾는다고."

"저런."

"더 꼭 안아줄게."


우리가 한동안 '사랑해'를 남발하던 시절, 이 세레모니는 내게 온 지구와 맞서 싸워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을 주었다. 내 하루는 그렇게 축복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산산조각 날 무렵, 그나마도 내가 구걸해서 안아준 그의 포옹은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그것, '엉덩이를 쭉 뺀' 그것이었다. 나는 항의했다.


"그렇게 엉덩이를 쭉 빼고 안아줄 거면 안아주지마."

"야, 너는 애정결핍이야."


애정결핍.

내가 안아달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이유.

나는 애정결핍이 아니다. 나는 그냥 당신이 안아줄 때, 당신에게 더 깊이 소속되는 느낌이란 말이다.


나는 1년이 넘게, 내 등을 꼭 눌러준다는 다른 남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에세이 집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떨어져 있으면 그에게 품었던 나쁜 감정들이 소멸되고 내가 오히려 그를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른다고.


이 말은 맞고, 이 말은 틀리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맞고, 나에게는 틀리다.


난 그와 떨어져있을수록 상처받고 있다.

나는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나의 상실감은 소멸되지 않고 있다.

keyword
이전 05화강 건너 불륜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