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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Jan 28. 2023

멋진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멋진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댄서 카를로스 가비토는 내게 있어 멋진 할아버지들로 이뤄진 세계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몇 년 전에 그를 내게 소개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의 헤어스타일은 탈모가 많이 진행됐지만 그의 탱고는 정열적이고 격동적이며 기품이 있다. 강렬한 눈매에는 힘이 서려있고 아름다운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출 때 몸으로 표현되는 감정의 파도는 탱고를 모르는 사람의 가슴까지 뜨겁게 한다. 춤을 추는  그는 노인이지만 너무나 멋지다.  



 구글이 내게 그의 영상을 추천한 것은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빅데이터가  힌트를 줬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은 우리 삶의 별 걸 다 들여다본다지 않는가? 나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는데 큰 관심이 있다.  



 사르트르는 모든 존재는 이유 없이 태어나 나약함으로 연장되다가 우연히 죽는다고 말했다. 내 청년기는 자다가 이불을 걷어찰만한 어리석음의 연속이었고, 그걸 대충 수습하다가 보니 중년이 되었다. 독신으로 살 계획이었으나 어느 날 귀여운 아가씨를 만났고, 정신 차려 보니 결혼식장이었다. 잠시 방심한 사이 아빠가 됐다. 방심을 몇 번 더했더니 얼떨결에 세 아들이 생겼지만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책무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겨우겨우 꾸역꾸역 노력하는 중이다. 실패도 자주 한다. 



 벌어진 일을 수습하고 사느라 급급해 멋진 청년과 중년 시절을 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리 준비하면 멋진 할아버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희망이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탱고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는 얼마나 멋졌던가?(그러나 지금 냉정히 말하자면 그 영화에서 그가 탱고를 잘 추는 것은 아니다.)



 탱고 레슨을 받은 지 1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배운 대로 동작을 하는 것은 연습만 하면 가능하지만, 알면 알수록 파트너와 함께 걷는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내 중심은 흔들리고 스텝은 불안했다.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 벽면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멋지지 않았다. 단순히 몸매 때문은 아니다. 카를로스 가비토가 멋진 것은 날씬해서가 아니다. 



고민하다가 탱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동작은 따라 할 수 있지만 제 몸이 마음먹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상대와 동시에 움직일 때 묘하게 중심이 흔들려 결국 조금씩 자세를 바꾸며 끼워 맞추게 됩니다. 그게 춤 선이 예쁘지 않은 이유 같네요." 



나보다 젊지만 탱고를 오래 춰온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약간의 연민이 느껴졌다. 



"맞아요. 춤을 잘 추려면 우리는 우리 몸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수련해야 합니다."



 노인도 배울 수 있는 춤이지만, 아름다운 탱고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제야 쉬는 시간에 탱고 선생님들이 발레의 턴을 하거나 놀라운 수준의 유연성을 보이며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탱고 댄서들은 필라테스나 요가도 하고, 특히 발레를 많이 배운다.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은 멋진 춤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물론 젊은이들이 훨씬 잘하는 일이다. 아름다움과 젊음은 애당초 토스트와 잼, 삶은 달걀과 소금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사실, 멋진 노인 댄서들은 청년기에 이미 멋진 댄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는 어려서부터 독수리다. 병아리가 독수리가 되는 꿈을 꿀 수는 있으나 대부분 병아리들의 종착역은 삼계탕이나 후라이드 치킨이다. 멋진 노인은 대개 멋진 청년이 늙어서 되는 것이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피트는 지금도 멋지지만 젊었을 때는 더 멋졌다. 



 아마 비슷한 희망을 갖고 시작했을 내 또래 수강생들이 안 나오기 시작하는 것도 그걸 깨닫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단순히 스텝을 외워서 음악에 맞춰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통해 음악을 표현해야 하기 시작하는 시점, 그리고 관리 안 하고 늙어가는 육체의 한계가 그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 



다행인 것은 내가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크게 잘못 생각한 일이 있고 그래서 후회라는 큰 대가를 아직도 지불하고 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는 않으려 한다.



  30대에 직장을 다니면서 뒤늦게 음악에 열중했다. 주로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아마추어 재즈밴드에서 바이올린을 연주를 시작했고 개인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음악에 쏟았다. 퇴근 후에는 재즈와 바이올린 레슨을 별도로 받았고 시간을 쪼개 재즈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직장에 악기를 가져가 점심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뒷산에서 스케일 연습을 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고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 더 알아 간다는 것은 내가 올라야 할 산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되는 일이었다. 재능도, 조기교육도 없이 성인이 되어 뒤늦게 시작한 내가 저 멀리 보이는 음악이라는 산의 정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 나는 미련 없이 음악을 접었다. 달성해야 할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면 그 길을 벗어나는 게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살려 하지만, 그때 음악을 포기한 것은 지금도 후회스러운 일이다. 분명 나의 한계는 명확했다. 큰 노력을 해서 프로 음악가가 된다고 해도 분명 거장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적어도 훨씬 더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거장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과연 음악의 목표가 음악으로 유명해지거나 그걸로 돈을 버는 일이란 말인가? 음악이 위대한 음악가라는 결승점을 위한 달리기 같은 것인가? 나는 잘못 생각했고, 후회라는 대가를 치렀다.  



 무언가를 향해가는 과정은 이미 그 자체가 보상이다. 결과에 대한 만족과 불만은 한순간이지만 지속되는 만족은 그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결과에 대한 강박으로 우리가 그나마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지레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발레를 같이 배우자는 제안도 해보았으나 거절당했다. 혼자 신청한다고 가르쳐줄지 의문이고 사실 나 자신도 내가 타이즈 입은 모습을 견디는 건 힘들다. 하하.



 확실히 나이 먹으니 젊었을 때보다 스트레칭이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더 나아질 수는 있다. 나는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았다. 춤을 출 수 있는 동안은 계속 춤을 출 생각이다. 그리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찾으려 할 것이다. 딱히 춤으로 일가를 이룰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려서 노년을 생각할 때면 죽음이나 마무리, 은퇴 후 은일하는 삶을 관습적으로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다가올 노년의 삶이 은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일지는 의심스럽다. 청년 때나 지금이나 사실 머릿속은 큰 변화가 없는데 노년이라고 다를까? 실제로는 노년의 나도 머릿속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나 인정 욕구 등에 대한 욕망은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절실하지 않을까?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던가.



 어느 날 우리는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갑자기 인생의 황혼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득한 옛날 별의 먼지에서 왔고,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내가 노력한다 해도, 내가 마음에 두고 미처 하지 못한 일들, 특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최대한 후회 없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멋진 노인댄서가 되지 못하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멋진 댄서가 되는 길을 걷다가 간다면 그것도 충분히 멋질 거라 생각한다. 멋진 남자로 완성되지 못하더라도 멋진 남자가 가는 길을 걷다가 떠날 수 있다면 인생의 황혼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카를로스 가비토는 2005년에 죽었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멋있는 할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다행히 유튜브에 몇개의 영상이 남아있다. 

아래 링크는 그중 하나로, 그의 탱고 파트너였던 마르셀로 듀란과 함께한 공연이다.

(1) Forever Tango - A Evaristo Carriego - Carlos Gavito & Marcela Duran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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