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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숨씀 Sep 07. 2020

진짜 홈런은 무조건 롱런

4화.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으니까

경력이 수십 년 차인 드라마 작가를 만났다. 첫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 "작가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만 헤어질 땐 "언니, 사랑해요"라고 속으로 고래고래 외쳤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품이라는 게 정말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은 미팅 한 시간 동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촌철살인의 조언들을 위트까지 겸비한 언변으로 짧고 굵게 해주셨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Next is never"다. 방송계에서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말이 바로 이것이라는데, 가령 어느 PD가 "다음에 같이 작업해요"라고 한다면 그건 앞으로도 당신과 일할 일은 없으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PD한테 연락이 올 날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희망을 품는 순진한 사람들이 꼭 있다는 것이다. 방송국 사람들 참 잔인하네,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작가님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의도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해. 안 그럼 당한다?" 어리바리하면 눈 뜨고도 코도 베어가고 눈알도 뽑아 간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소름이 돋았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두 번째는 "돈 없는 남자의 정절은 믿지 않는다"였다. 듣자마자 박장대소에 물개박수를 치면서 격하게 동의하던 와중에 이어진 말도 결코 잊지 못한다. 안간힘을 쓰며 이 바닥에서 결국 살아남았지만, 일에 대한 애정과 그에 마땅한 보수가 없었다면 자신도 진작에 때려치웠을 것이라는 이야기. 수십 년 넘게 드라마 대본 작업을 반복해온 사람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영화 <벌새>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조연상을 받은 김새벽 배우가 말했다.


늘 연기를 잘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늘 밉거든요. 근데 저는 연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자리에 제가 좋아하는 연기자 선배님들 다 계신데 이분들과 직접 만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잘 연기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 그런데 너무 어려운 일. 그럼에도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 김새벽, 박미선, 송은이 등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드디어 찾았다. 그들은 모두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어서 온몸으로 생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Next is never. 일하면서 가끔씩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의지가 꺾일 때 이 말을 종종 떠올린다. 오래오래 좋아하고 싶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오래오래 해먹어야겠다고 다시금 의지를 다잡는다. 내 인생의 홈런은 바로 롱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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