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박사의 실험실
정독도서관을 향하는 길,
안국역1번 출구로 나와 걸어가는데 내 앞에 한 중년 사내가 걸어간다.
그곳엔 관광객들이 웅성거리고 회사 건물들과 맛집과 카페가 빼곡히 늘어서 있지만,
나는 그가, 나와 같이 정독도서관을 향한다는 것을 뒷모습을 보고 알아버렸다.
출근용 정장 바지가 아닌 트레이닝복바지, 두툼한 패딩, 그리고 묵직해보이는 배낭.
이 시간에 저런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은-나를 포함-직장인이 아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학인데도 도서관엔 학생들이나 청년들보다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분들의 복장이 앞서 그 남자의 복장과 비슷하다. 회사를 다닐 땐 좀처럼 입지 않던 내복을 매일 챙겨입는다. 난방이 빵빵하게 나오는
사무실이, 이젠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위한 수험 준비부터 여유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독서가, 마땅히 혼자 시간을 보낼 길이 없어 그나마 도서관에서 시간을 떼우는 이들까지...그들의 목적은 다르지만 꽤 진지한 시간을 보내는 것같다.
도서관을 향하는, 도서관에 있는 이들의 배낭 안엔,
책과 노트북 같은 것이야 기본이고, 그 바닥에는 미래의 불안, 생계에 대한 간절함,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환, 다시 설 것이란 기대까지 묵직한 인생이 담겨있다. 그래서인가,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가방은 어딘지 큼지막하고 쓸쓸하다.
문득.
그의 뒷모습, 그리고 내 어깨 위의 보라색 배낭을 떠올리며
지금 우리가 마치 거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직이란 울타리를 나와 이 평일 대낮에 도서관으로 느리게 향하는 우리가.
인생 2막, 혹은 3막을 향해 느리게 아주 느리게 한 걸음을 떼고 있는..
숨가쁘게 바쁜 도시 한가운데 왠지 한템포를 놓친 것 같은.
바다를 떠나온 것인지, 모래사장을 떠나온 것인지..
하지만 믿는다.
꿈틀꿈틀, 대며,
마침내 우리는 도착할 것이라고.
소박해졌어도 여전히 빛나는 꿈과 삶의 주인 된 그 자리에.
우리의 여정은 아직 멈추지 않았기에, 끝나지 않았기애.
I am not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