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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Apr 15. 2017

킬리만자로의 야옹이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캄캄한 골목을 걷다가 아스라이 켜져 있는 조명 아래 생각에 빠진 너를 발견했다. 나도 네 옆에 서서 함께 골똘해진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한 번도 키워본 적은 없다. 같이 산다면 그들의 의식주를 '챙겨준다'는 행위를 해야 하는데 그 자체에 자신이 없고, 이젠 정돈되고 쾌적함에서 오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이 시점에서 털 달린 짐승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내 공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그들과 함께 산다는 건 정말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동물 애호가도 집사도 아니지만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걸음 세워 놓으니 말이다. 보송보송한 털과 요염하고 우아한 걸음걸이, 날렵한 움직임,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그들의 무심함, 걸음걸음 즈려밟는 동글 몰랑한 찹쌀떡 발까지. 정말이지 매력이 철철 넘친다고 해야 하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보니 생각보다 우리 동네엔 고양이가 참 많았다.




온몸으로 말해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길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콧방귀를 뀌며 저 멀리 달아나 버리거나 벗어날 타이밍을 노리며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척추를 말아서 하늘 높이 치켜올리고 털을 바짝 세워 경계심을 표현한다. 지나가던 골목에서 1층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한 남자가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내보내는 자신도 난처하다는 듯 통사정을 하며 고양이에게 저리 가라고 옆구리를 떠민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녀석이 무단침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가 참 멋지게 생긴 녀석에게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다가가자 등이 사납게 뾰족해졌다. 그 등을 보고도 하염없이 이기적인 나는 아랑곳 않고 녀석에게 다가간다. 거기서 멈춰, 쟤네 화나면 할퀴어 버리니까. 등 뒤에서 지켜보던 신랑이 일침을 놓는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기분 나쁘게 할 권리가 나에게 있는가. 미안하지만 사진 찍는 것까지만은 허락해다오. 빠르게 사진 한 장 찍고 손을 흔들었다. 그나저나 낯선 사무실엔 염치없이 들어가면서 저를 예쁘게 봐주는 나는 왜 그렇게 홀대한단 말인가. 멋진 이마는 누구에게 물려받은걸까. 다음엔 기분 좋을 때 만나자꾸나.




뚱뚱한 고양이


오동통하고 귀여운 녀석을 본 적이 있다. 등에는 해변가의 모래 같은 망토를 걸친 놈이었는데 행색을 보아하니 집에서 잠깐 마실 나온 녀석은 아닌 것 같고 어슬렁거리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참이었나 보다. 어느 낯선 집의 대문을 어찌나 핥아대던지. 그 포동포동하던 몸짓이 귀여워 나도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스텔스(stealth) 모드로 숨을 죽이고 휴대폰을 꺼내 조심히 요놈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문짝에 먹을만한 게 붙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러고 있나 싶어서 참치캔이라도 한 개 사서 먹여주고팠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길에서 저렇게 먹이를 찾아다니는, 말하자면 '홈리스'고양이인 것인데 그렇게 못 얻어먹고 다니는 것 치고는 몸집이 어찌나 오동통하던지 마치 임신을 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 보니 녀석의 모습이 어쩐지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목도 굵고 걸음걸이도 시원찮은 것이 분명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궁금하여 인터넷을 이리저리 찾다 보니 몸집이 비대해진 것은 버려진 음식을 먹다 보니 염분 함량이 높은 것을 자주 먹게 되고, 닥치는 대로 핥아대다 보니 유해물질도 많이 삼키게 되어 몸에 부종이 심해진 것이라고 한다. 결국 못 먹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까 참치캔이라도 하나 사서 적선하지 못한 나를 얼마나 탓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딱하지만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나는 참치캔을 선뜻 사

 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바로 옆이 편의점이었지만 저런 길고양이들마다 동정심을 표현하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싶은 것이 첫 번째 드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결국 이러한 현상도 생태계의 한 모습인데 내가 참치캔을 사서 먹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갈등에서 갈피를 찾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막 드는 생각은 이 지구 상에 이웃 사람도 굶어 죽어가는 걸 외면하는 주제에 어디다가 동정심을 표현하냐고, 그럴 돈이 있으면 불우이웃 좀 도우라고 힐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급하게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오만가지 핑계를 찾고 있다.






언밸런스 컷

 한쪽 귀가 짧은 아이를 보게 되었다. 너는 참 붙임성이 좋구나. 맥주집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의 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통과해 다니며 애교를 부리던 중 카메라를 들고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지랖 넓은 이 녀석이 나에게도 조르르 걸어온다. 그러더니 몇 발자국 앞에 멈춰 서서 '야옹-'하고 뭐라 말을 건다. 반갑다는 건지, 니가 뭔데 날 함부로 찍고 난리냐는 건지는 몰라도 음성도 참 귀엽네 싶어 나도 거기에 화답해줬다. 야옹.


한쪽 귀가 잘린 고양이는 구청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킨 고양이라고 한다.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의 기하급수적 개체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 시키는 중성화 수술을 두고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더라. 동물학대라는 쪽의 의견도 듣다 보면 조목조목 공감이 된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지만 인간이 함부로 생식능력을 없앤다는 것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의 주거지역 보호와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전략이라는 의견도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다. 고양이들은 번식력이 커서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많이 낳아버리니 온 동네가 고양이 세상이 되어 버리는 건 인간에게 참 불편한 일이다. 먹을 것을 찾아다니느라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찢어버려 악취와 위생이 말로 다할 수 없게 망가지고, 구석구석에 안식처를 마련하느라 주택가 창고 등에 무단침입도 많고, 밤이면 달빛 아래에서 혈투를 벌이거나 짝을 불러내느라 동네를 시끄럽게 하니 개체수 증가는 사실 감당이 안된다. 그 어느 쪽의 의견이 딱 맞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노력들이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노력이 될 수 있다는 정도는 건질만하다. 싫어하고 혐오하고 쫓아내고 외면하기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선 밖으로 나갈래요


짜식이, 쬐그만한게 아주 용감하구나!

선 밖으로 나온 아기 고양이는 얼굴이 참 심술긏게도 생겼다. 모든 생명체에 유아시절은 무조건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노곤하게 일광욕을 즐기며 꾸벅꾸벅 졸던 어미가 선 밖으로 나가는 새끼의 움직임에 시선을 따라 붙인다. 내 손에 먹을 것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싶어서 잠시, 진짜 잠시 기분이 나쁠 뻔했는데 그래도 다가온다는 것은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고양이는 흔히 인간을 자기보다 아래'급'이라 여긴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저 조그마한 것에게 내가 그렇게 하찮아 보였나 보다. 흠.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동물은 참 소박하고 선하다. 어찌 보면 본능과 직감에 따라 산다는 것이 오히려 훨씬 선할 때가 있다. 필요만 충족되면 더 이상의 바람은 없지 않은가. 전방에 쪼그려 앉은 저 여자 사람이 자신을 헤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도망도 가지 않는다. 내게 와서 쓰레기 봉투를 물어뜯듯 먹을 것을 탐하지도 않는다. 그저 호기심에 다가와 무얼 하느냐고 질문하는 너는 결국 귀엽다는 결론을 내리게 해준다. 아가야, 자나 깨나 차조심하렴.




친구야, 나가 놀자

지독스럽게도 무더웠던 여름날,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 아래에 조용히 쉬고 있는 얼룩이에게 덜룩이가 찾아와 참견을 한다. 뭐라고 뭐라고 종알종알 말을 걸지만 그늘 밑에 앉은 얼룩이는 꼼짝도 않는다. 나는 얼룩이 편을 들어주었다. 올여름은 끔찍하게도 더웠지 않은가. 집 나가면 고생이니 꼼짝 않고 그늘 아래 있는 편을 택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그래도 서로 안부를 물으러 오는 걸 보니 저들 얼룩덜룩은 사이가 좋은가 보다.


어김없이 그늘 밑엔 꼭 한 마리씩은 눈에 보인다. 여름엔 그늘을 찾아서 겨울엔 온기를 찾아서 기어들어가는 곳이 바로 자동차 밑이다. 저런 노하우는 대대손손 전수라고 해주는 걸까. 어쩜 저리도 방법이 일관되는지. 고양이들은 자동차를 참 살뜰하게 잘도 활용한다. 언젠가 라디오 캠페인에서 겨울철 자동차 시동을 켜기 전엔 본내트를 한번 똑똑 노크하라고 하더라. 온기를 찾아다니던 고양이들이 데워진 엔진근처에 기어 들어가 자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혹시라도 깊은 잠에 들어 사람의 인기척에도 미쳐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고양이가 있다면 인간이 모르고 시동을 걸었을 때 고양이도 사람도 모두 쌍방에게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내 차를 보호하고 고양이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노크를 했다. 노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 열심히 실천해볼게. 나의 노고를 감사하게 여기며 부디 살아있는 동안에 따뜻하게 지내렴. 하하.




여심 절도묘의 행방불명

꽤나 장사가 잘되던 카페였다. 가끔은 시즌마다 플리마켓을 열기도 했고,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서 촬영을 하러 오기도 하는 분위기 좋은 가게였다. 녀석은 그 집 담벼락에서 지냈다. 주로 이곳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뭇여성들의 참견을 즐기곤 했다. 가게 주인에게 이름을 물어보자 모른다고 한다. 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지만 늘 카페 앞뜰에서 식빵을 굽고 담벼락에서는 여성 팬심을 훔치며 마치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도 녀석에게 마음을 도둑맞은 그 수많은 팬심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날은 별안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카페에 어느 날 갑자기 '소유권 행사중'이라며 큰 대자보를 덕지덕지 붙이고선 낯선 장정들이 안에 있는 가구와 집기류를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계약 관련 분쟁이 있나 본데 하루아침에 카페가 엉망진창 공사판처럼 허물어지고 있으니 친한 친구가 말없이 전학을 가버린 것처럼 무척 섭섭했다. 하지만 더 큰 슬픔은 녀석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에 있었다. 안식처이자 생활터였던 곳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있으니 불안함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는지 살 곳을 찾아간 듯 자취를 감추었다. 저를 예뻐하던 사람들과의 즐겁고 따뜻했던 추억들을 간직한 채 어딘가로 떠나갔다.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카페라 출퇴근 길에 늘 녀석의 자태를 흘깃 쳐다보며 지나가곤 했는데 같이 찍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니 야옹아.



검정모자의 아지트

밤이 되면 놀이터는 전쟁터로 변하곤 했다. 오른편 화단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즉시 왼편 화단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 소리가 들려온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인지 늘 담벼락 한가운데에서 마주 보고 선다. 이기는 편 우리 편. 놀이터는 저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장소인가 보다. 늘 이렇게 논란을 일으키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검정 모자가 이겼다. 영역싸움에서 한 번도 밀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저 검정 양머리 모자에서 어마 무시한 힘이 솟아나는 건 아닐까. 내가 동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른 고양이들을 관찰했을 때와 비교하면 검은 모자 녀석의 털을 보면 새파랗게 젊은 고양이는 아닌 것 같다. 탄력을 잃은 것인지 언제나 털과 가죽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워 보인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투혼을 발휘하여 지켜낸 아지트에서 녀석은 종종 산책을 즐긴다. 나는 녀석이 수풀 사이를 지나다니며 내는 낙엽 밟는 소리와 풀잎 꺾이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지난겨울 이후로 도통 볼 수가 없다. 결투에서 패배한 걸까 아니면 어디선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 걸까. 녀석처럼 맵시 나는 검정 모자 고양이는 어디에도 또 없을 것 같다. 항상 저를 지켜보던 나를 기억은 할까. 내 고양이도 아니고 독립 고양이지만 정이 들어버려 가끔은 이 녀석이 보고 싶다. 검정 모자야, 너는 참 멋진 고양이였어. 씩씩하고 용맹하던 네 모습을 나만큼은 꼭 기억하고 있으마.





무료급식소

동네에서 마음씨 좋은 어느 분이 이 골목 고양이들 먹으라고 자기 집 뒷마당에 사료를 부어놓은 밥그릇도 놔두고, 눈과 비를 피하라고 지붕도 만들어 놓으셨다. 이곳에 이들의 휴식처가 있다는 것은 우연히 골목을 지나다 이집 뒷마당 난간 사이로 고양이가 드나드는 걸 보고 조용히 따라갔다가 알게 되었다. 동네 고양이를 구경하고 싶다면 늦은 밤 놀이터로 찾아가거나 맘씨 좋은 이분의 뒷마당으로 찾아가면 된다. 뒷마당에서 대충 자라고 있는 화분들과 그 사이로 무심하게 던져놓은 가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완벽하고 유별나진 않지만 나름은 정을 가지고 무심한 듯 세심하게 살펴주는 화분들처럼 고양이들에게도 나름의 정성으로 잠시 쉬어갈 곳을 만들어주셨나 보다. 대충 기울여 놓은 판자로 지붕을 제공하고 흰색 바가지엔 사료를, 파란색 바가지엔 물을 담아놓는다. 뒷마당 안쪽 깊숙이 들여다보니 꽃나무 아래로 동굴도 만들어 놨다. 저곳은 수면실인가 보다.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분명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일 것 같다. 아직도 이곳의 정보를 모르는 고양이가 있다면 배고프고 외롭고 쓸쓸할 때쯤 이 곳으로 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심속 야생의 생활고를 극복하기가 아주 벅찰테지만 가끔은 이렇게 쉬어갈 곳을 마련해주는 분들도 계시니 힘내서 살아가라고 응원해본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육교를 건너다가 밟게 되었다. 흔한 광고 전단지를 바닥에 붙여 놓은 줄 알았다. 또는 '급하게 팝니다.'하며 약간은 사기꾼의 냄새가 흐르는 건물 매매 내용이거나. 여느 종이들처럼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이 종이를 바닥에 붙이던 사람의 마음이 길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든다. 코 주변이 갈색이라고 한다. 꼬리가 길다고 한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다른 고양이와 코 주변 색깔이 다르다는 말도 남겨 놓는다. 이건 주인만 알 수 있는 내용이겠지. 저 노랑 고양이와 우리 노랑 고양이는 엄연히 다른 고양이입니다. 내 고양이가 보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듯하다. 주인이 남겨놓은 마지막 말이 마음을 울린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칠 염려가 있으니 발견 즉시 저에게 연락 주세요. 마치 이럴 때 써먹으라고 한 듯 이런 시가 떠오른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낯 짐승일지도 모르는 세상 많은 고양이들 중에

서로가 만나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를 잃어버렸고 그 고양이를 찾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모습이 저 종이 한 장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혹시라도 친절한 누군가가 고양이를 잡아주려다 도망이라도 칠까 봐 자세히도 적어놓는 저런 간절함 말이다. 육교 난간에 붙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칠까 봐 발걸음 끝에 한 번이라도 바라봐 달라고 바닥에 붙여놓은 주인의 마음이 지나다니는 흔한 길고양이도 한번 더 쳐다보게 만든다. 하마터면 궁금해서 전화를 걸 뻔했다. 댁의 고양이는 찾으셨나요?









나는 사실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을 가지고 관찰은 할 줄 알지만 저 고양이가 어떤 종인지, 습성이 어떠한지 정확히 구분도 할 줄 모르고, 털 달린 짐승을 만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길에 사는 수많은 고양이들 중 우리 동네 고양이 몇몇은 나와 '아는' 고양이가 되었다. 보면 반갑고 메아리 없는 인사도 건네보고 기억하고 싶은 모습은 사진으로도 남긴다.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사람들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또 누군가는 마뜩잖은 마음에 열변을 토할 테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만큼 우리 일상에 너무나도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 주택가에서 놀이터 화단을 숲 속처럼 수색하고 다니고, 골목 사이사이를 손바닥에 쥐고 신체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에 따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기도 하며, 때로는 피 끓는 청춘인 양 영역을 두고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는 우리 동네 고양이들의 골목 야생 생활을 응원한다.


가끔은 이렇게 버려진 상자에 자리 잡고 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길 기원하며 오늘도 열심히 굶지 말고 살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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