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글 쓰면서 살고 싶다.
오늘 ’ 작가의 서랍‘에 저장된 25개의 글 중 10개를 삭제했다.
내 속에서 시작된 여러 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그중 일부는 줄곧 적어내기도 했지만 끝까지 완성하지는 못했고, 일부는 다 쓰고도 발행하지 못한 글도 있었다.
코로나로 바쁘고 버겁던 학교 생활 이야기는 짬짬이 속기처럼 써놨다가 나중에 풀어서 쓰고자 틈 날 때마다 한 단락씩 스케치를 해두었지만 이제와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아들과 함께 성장하며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는 너무 짧고 많은 에피소드가 산발적이라 모아내기가 까다로웠다. 단골 가게를 잃어가면서 느낀 감정과 생각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어디 내놓기 민망했고, 예전 발행글의 시리즈 격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은 적은 지 오래되어 그동안 읽고 또 읽었다 보니 너무 지겹고 지루하여 내 글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살면서 마주친 인상 깊은 장면들과 별 것 아니라고 지나갈만한 소재지만 내 눈에 들어와 잡생각이 싹 틔워낼 때는 아! 이거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반가움과 즐거움이 생기 돋듯 솟아나 한참은 적어 보았지만 어쩐지 ‘발행’ 버튼을 누르기에는 썩 맘에 들지 않아 결국 저장 버튼만 누른 뒤 창을 닫고 ‘서랍’을 나오게 되었다.
왜 그랬나 생각해 보니, 나는 다소 진지했고 꽤 진심이었던 것 같다. 대충 하자는 건 아니지만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엄격하게 대할 것까지는 없었을 텐데 나의 글에 내가 가진 대포 같은 현미경을 들이대며 해부를 하고 있었던 거다.
술술 읽히지 않는 것 같아.
소리 내서 읽어보면 이 문장은 발음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이 부분은 내 개인사인데 다른 사람이 읽어도 글의 맥락이 이해가 될까?
좋아하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같은 표현을 너무 자주 쓰는 것 같아.
이 주제로 글을 쓸 때는 적어도 배경지식이 많아야 쓸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요즘 같은 쇼츠 시대에 내 글이 너무 긴 건 아닐까?
이런 것 같아, 저런 것 같아, 그런 것 같아.
대게 이런 흐름으로 휩쓸려 발행 버튼은 떠나보냈고, 그래도 남은 미련 때문에 가끔씩 서랍을 열고 닫으며 쓰지도 지우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의 여러 작품 목록을 둘러보니 제목들도 다들 어쩜 그렇게 맛깔나게 잘 지었나 싶고, 꽤 다양한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글을 풀어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한번 돌아봤다.
각 잡고 쓰지 않아도 괜찮아.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 이야기‘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자꾸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속에 든 이야기를 꺼내어 글로 적는 거였다. 그렇다면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면 되는 것을 너무 진지하게 굴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정성은 필요하지만 엄격하지는 말자고도 타일렀다. 티끌을 찾아내는 거대한 현미경은 잠시 치워두고 두 손으로 다듬고 쭈물쭈물 주물러 투박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라면 괜찮다는 용기를 불어넣기로.
그래서 작가의 서랍을 다시 한번 열어보고자 한다.
글로 쓰고 싶은 일상 속 장면을 다시 메모하고자 한다.
각 잡지 말고 재미있게 주물러 보고 싶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
브런치는 아니지만 최근에 꾸준히 써온 글이 있다.
그건 지난 1년여간 거의 매일 노트에 손으로 적어온 일기이다.
나의 일상에서 중요한 루틴으로 자리 잡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신체적 요가 수련인데, 수련 후 집에 돌아오면 늘 노트를 펼쳐 일기를 적었다. 그렇게 적기 시작한 지가 이제 일 년이 넘었고, 적어온 노트를 모아놓고 차츰 읽어보니 요가를 매개로 내 속에 든 생각과 이야기가 꽤 많이 녹아있었다.
노트가 쌓여가니 짐스러워 버리고 싶었는데 내 속에 든 진솔한 날것의 이야기와 생각이 흔적도 없이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많이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 겨울 1월~2월 동안 그걸 열심히 나 홀로인 블로그에 옮겨 실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나의 서랍은 브런치에 있었잖아. 하며 각성이 돌아왔다.
우선은 그것부터 옮겨 적어볼까 한다.
지나간 세월의 1년 치 손글씨 일기를 브런치북으로 엮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결심을 할 때도 역시나 현미경을 가져와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질문과 불만과 핑계들을 끄집어낸 것도 사실이다.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잖아.
개인사가 너무 많이 적혀 있잖아.
요가 수련을 하는 사람들만 아는 단어들이 넘쳐나잖아.
요가를 주제로 브런치북을 엮으려면 네가 전문적인 입장에 놓여있거나 뭔가 정보가 많이 담겨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래야 하지 않나, 저래야 하지 않나, 그래도 되나?
이러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생겨서 무거운 현미경은 박스에 잠시 넣어두려고 한다.
이것 봐라. 현미경도 쉽게 못 버린다.
아무튼 진행하련다.
무엇이 되었든 쓰고 부딪치며 맘에 안 드는 구석을 끌어안고 기회만 되면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여러 역할들을 소화하느라 시간이 부족하여 속도는 몹시 더디겠지만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만 하다면야 용기를 내어 나도 이제는 ‘발행’ 버튼을 클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해.
쓰자, 써.
나가자. 서랍 밖으로.
각 잡지 않고 즐겁게.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