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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경미 Oct 24. 2024

등의 방정식

  꿈결인가. 등이 따뜻하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자 내 등에 맞닿은 그의 등이 느껴진다. 침대 위아래에서 잠이 들었건만 등과 등 사이 바람 한 톨 비집고 들 틈 없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사인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도, 등을 돌리고도 편안하게 각자의 잠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등을 돌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러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우리만의 세상이 끝장나기라도 하는 듯 애틋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는 듯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던 신혼의 단꿈을 꾸던 때였다. 서로의 앞만 바라보느라 등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등이 있어도 등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조금씩 거리가 느껴졌다고 할까. 등과 등 사이 거리가 마치 그와 나, 마음과 마음의 거리라도 되는 양 서운함이 밀려들고 불안이 끼어들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꿔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의 근원이었을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능한 빨리 해답을 도출해야한다는 성급함이 우리를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무모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해내려고 덤볐으니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진리는 굳이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져만 갔다. 이걸 해도 저걸 해도 딱 맞아떨어지기보다는 번번이 우리는 어긋나기 일쑤였다. 

  키 높이가 달라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저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주기만을 고집하는 나날이었다.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주기는커녕 서로에게서 등을 떠밀어내는 날이 더 많아져 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등을 돌렸다. 더러는 서로 보이지 않는 곳을 탐하기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등이 보일세라 아예 문을 잠그고 마음을 꺼버린 채 잠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해지는가 하면 행동 하나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로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렇게 그와 나의 등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좀 더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와 나는 등을 굽힐 생각은 하지 않고 언제나 뻣뻣하게 서서 먼저 다가와 굽신 거려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좀 더 부드러운 내가 되어주기를, 나는 한없이 너그러운 그가 되어주기를 서로 바라고 바랐다.

  우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애꿎은 등만 못살게 굴었다. 등을 돌렸다, 뻣뻣해졌다, 밀치기를 반복했다.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것도 접점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한 치 양보도 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등이 휘었다. 툭, 하고 언제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팽팽한 고무줄 같았다. 끊어지는 순간, 되돌아 돌진해온 줄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마저도 잊은 채 각자의 자존심만을 위해 버티고 버텼다. 

  달라도 너무 다른 그와 나. 시간이 더해져 갈수록,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도 생각의 방식도 다 달랐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달라서 부딪칠 때마다 서로 맞다, 틀리다 우길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등과 나의 등 사이에는 정비례도 반비례도 아닌 그래프가 생겼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양이 아닐 수 없었다. 급기야 내리꽂혀 버둥거릴 때면 어처구니없다가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며칠 전 둘레 길에서였다. 다리도 등도 둥글게 휘어진 노부부를 만났다. 손과 손을 꼭 잡은 채 서로 나란히 서서 걷고 있었다. 더뎌 보였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등과 등이 나란히 서서, 서로 의지하며, 한 곳을 향해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저 힘은 무엇일까. 저들에겐 있는데 우리에게 없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등도 다리도 둥글어지는 동안 각자에게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기에 가능했을까. 꼿꼿하던 것들이 둥글어지자면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어떤 해답이 있을 것만 같았기에 물음에 물음을 더하며 노부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등이 둥글어질 만큼도 아니고, 펄펄 뛰어오를 만큼 힘찬 나이는 더더욱 아닌 우리다. 그렇다 할지라도 간혹 등이 뻐근하고 통증이 일기도 한다. 이만큼이라도 욱신욱신 살아내고 보니 누구의 등이라도 안쓰럽다. 공치기에서 힘을 빼는 것에만 걸리는 시간이 십 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어지간히 힘이 빠졌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팽팽하기만 하던 것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는 것 같다. 절반쯤은 포기요. 나머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걸 터득한 것일 테다.

  어느 사이엔가 달라진 풍경이다. 예전과는 달리 등의 높낮이가 달라도, 등을 돌려도, 아예 등이 보이지 않아도 불안할 것도 서운할 일도 아닌 요즘이다. 오랜 시간 쌓이고 쌓인 온갖 것들이 녹아내려 등과 등 사이를 메우는 듯 어떤 얄궂은 믿음이 다져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둘 사이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증명하기엔 난해하기만 한 방정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만 같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그와 나 사이 등의 방정식. 모든 부부 사이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천수만의 부부에게는 수천수만의 등의 방정식이 존재하겠기에 딱 꼬집어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 해답이 있을 터. 누구라도 명쾌한 해법 하나쯤 도출해주었으면 좋겠다.

  함수 그래프를 떠올려 본다. 도저히 마주할 수 없다는 듯 각자 앞만 보고 내달리는 엑스축과 와이축, 등을 돌려 서로를 향해 다시 왔던 길을 조율해 가다보면 그들이 만들어낸 사면체에 원점이라는 접점이 있다. 이 순간만큼은 엑스축 와이축 어느 한 쪽도 자기만을 고집하지 않기에 한 치 기울어짐도 없이 화평해 보인다.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 듯, 고난이도 문제처럼 다가온다. 

  누운 채 등을 돌린다. 곯아떨어져 있는 그가, 그의 등이 낯설고도 애처롭다. 잠결인 척 등을 쓰다듬는다. 그를 안는다. 잠 속에서나마 힘을 뺀 우리는 비로소 접점에 다다르게 되려나. 그를 향해 등을 돌려 마주하는 일이 마치 지구를 돌아오기라도 한 듯 아득하게 느껴지는 이 새벽, 우리는 접점 어느 언저리쯤 와 있는 것일까. 순해진 남편의 등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서로에게 스며든 온기가 방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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