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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경미 Oct 24. 2024

오월 산책

  동그래지는 계절이다. 입술이 한껏 동그래져야만 입 안에 고여 있던 오월이 비로소 노래가 된다.

  이른 아침 새소리, 토도도독 빗방울 소리, 개골개굴 개구리 소리, 별빛 속살거리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밥 짓는 소리, 아이들끼리 자그락거리는 소리마저 동그랗게 다가온다.

  계집아이 젓 망울 같이 봉긋하기만 하더니 어느새 잎사귀가 되어 동그랗게 펼쳐진다. 메말랐던 가지는 한껏 물을 머금는다. 키가 훤칠한 나무들도 땅딸한 풀들도 제법 동글동글 숲이 되어 어우러진다.  

  오월 숲은 사방 문을 활짝 연다. 흩어져 있던 연두와 초록이 몰려들고 새들도 날아든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빛깔과 소리는 투명하고 맑다. 마주할 때마다 순하고 풋풋하며 순수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된다. 나이 지긋한 굴참나무도 갓 깨어난 풀꽃도 그곳에서만큼은 어른이라고 내세우지도 어리다고 주눅 들지도 않는다. 함께 숲을 이룰 뿐이다.

  다른 것을 다르게 봐줄 수 있는 여유 때문일까. 옛것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나이테에 담겼건만 지나온 한때를 들추려 들지는 않는다. 여린 듯 여리지 않은 숲의 힘. 숲은 순간순간 푸르러진다. 

  오월의 소리는 처음 내가 접한 노래이기도 하다. 갓 태어난 아기가 그 순간을 기억할 순 없었을 테다. 그렇다할지라도 나는 오월 속으로 오월은 내 안으로, 서로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월과 오월의 소리들이 나는 좋다. 내 첫울음 소리를 그해 오월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머잖은 날, 숲은 점점 둥글어질 것이다. 유월을 지나고 시월을 지나서 다시 또 오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치지 않고 새로움만 더해져갈 오월 숲을 떠올려본다.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 것들이 있다. 기억 속에서 노래가 된 추억들이 그럴 테다. 오늘 산책이 가져다 준 오월의 향기들, 이 또한 노래가 되고 추억이 될 것을 안다. 해마다 오월은 젊다. 오월 속을 거닐 때마다 우리는 다시 동그래진다. 푸릇푸릇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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