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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07. 2023

요즘은 뭘 배우니 - 초보 목공러가 되어가고 있어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수집기 11


'짓는다'는 말이 좋아서, 책을 낼 때에도 ‘책 한 권을 짓고 있다’고 부러 말하곤 했다. 바느질이야말로 짓는 일이니 ‘요즘은 티코스터를 짓고 있어요’라고 뿌듯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심 외곽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있다는 언니 말을 듣고는 나도 무언가를 지어 언니와 형부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나무가 떠올랐다. ‘나무를 짓는다’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배울까 말까 망설이던 ‘한 달 책꽂이 만들기’ 클래스를 신청했다. 네댓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미니 책꽂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동네책방이 주관하는 수업이었는데 수강료가 적지 않아 신청하기를 주저하고 있던 차였다. 저질러 버릴 좋은 구실이 생겼다. (반백수 처지라) 나만을 위해 돈 쓰는 데에는 인색했지만 남을 위해서라면 조금 넉넉해질 수 있었다. 언니의 새 집 입주에 맞춰 정성스러운 선물을 하겠다는 의지, 직접 만든 책꽂이라면 그 어떤 선물보다 집들이 선물로 맞춤할 것임을 확신했다.




산뜻하게 지어진 우드 톤이 어색하지 않은 언니 집에 책꽂이와 도마는 적당히 어울렸다. 언니도, 형부도 생각지도 못한 동생 혹은 처제의 핸드메이드 선물을 드러내고 반색했다.  그런 동기로 첫 목공수업을 들었고, 그날과 다름없이 요즘도 여전히, 일주일에 두어 번쯤은 나무를 짓고 있다. 그날과 다름없이 책꽂이‘만’ 짓고 있기도 하다. 티코스터‘만’ 짓던 그때처럼. 이따금 필요에 의해 도마를 만들기도 하는데, 도마는 왠지 ‘짓는다’는 말과 잘 조화되지 않지만 잘 쓰일 거란 확신이 있어 괜한 일 같지는 않다.




     

자세히 보면 망한 구석이 하나 둘 발견되기도 하지만, ‘한 달 책꽂이’는 일단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 보는 사람마다 좋아한다. 꼭 어울릴 법한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새로 지은 언니 집에도 잘 어울렸고, 같은 빛깔의 도마를 하나 더하니 새 집 이사 선물로 그만이었다. 자주 가는 단골 동네책방에도, 제주 사는 친구의 공방에도, 다른 제주 지인의 구옥을 개조한 집에도 어우러졌다. 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보며 내가 떠올랐다며 선물한 친한 동생은 한 달 책꽂이의 용도에 정확히 일치하는 독서가(한 달에 네댓 권 이상을 읽을 만한 사람)이기에 반가사유상에 대한 답을 할 겸 택배로 책꽂이를 지어 보냈다.


이따금 책을 읽으시는 어머님도 좋아하셨다. 뒤늦게 회사원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친구와 친구의 아버님께도 하나씩 건네 드렸다(친구가 아버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아버님이 나를 워낙 어여뻐하시기에 두 사람의 회사 책상에 내 책꽂이가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든 살이 넘은 낡은 구옥을 구매해 적잖은 난관 후에 아름다운 한옥으로 엮어낸 친한 언니에게도 하나. 나의 목공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신 지인과는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책꽂이와 캠핑용품을 주고받았다. 캠핑용 도마도 필요하다 하여 작고 갸름한 박달나무 도마를 끼워 건넸고, 나 역시 유용한 캠핑용품을 소소하게 얻을 수 있었다.



여행작가협회의 연말 행사에 한 달 책꽂이와 또 다른 형태의 책꽂이(모양이 삐뚤 해서 삐뚤이 책꽂이)를 경품으로 협찬했는데 다른 경품보다 인기가 좀 있어 뿌듯했다. 한 달 책꽂이, 삐뚤이 책꽂이, 한 권 책꽂이(한 두 권의 책을 꽂을 수 있고, 펜 트레이가 있어 펜을 올려둘 수 있다), 세 종류의 책꽂이를 만들고 있는데 특히나 한 권 책꽂이는 부피가 작아 여행 학교 절친 몫으로 6개를 만들어 큰 배낭에 싣고 가 송년회 자리에서 선물하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취중에 잘 어울린다며 내게 모자를 건넨 이에게도 다음 자리에서 책꽂이를 건넸다. 받은 모자를 되돌려주면 깍쟁이 같지만 책꽂이로 답을 하니 훈훈해 보였다. 최근에는 지인이 운영하는 묵호의 동네책방 '잔잔하게'에 한 달 책꽂이와 삐뚤이 책꽂이를 건넸다. 책방이라면 아무 대가 없이도 내가 지은 책꽂이를 건넬 수 있다. 쓸모에 가장 적합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니 아깝긴커녕 보람이 된다. 3종의 미니 책꽂이는 그런 식으로 큰돈 대신 약간의 정성을 들여 상대도 부담 느끼지 않게 건넬 수 있는 소소한 선물이 된다.




드릴로 구멍을 내고 나사를 박는 것부터가 처음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살아오며 부엌칼 외에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공구 자체를 손에 들 일이 거의 없었다. 클래스에 참여한 사람 모두 처음 목공을 접한 사람들이었으니 다들 몇 번씩 삑사리가 났다. 원데이 클래스 이후엔 목공방에 문의하며 자유롭게 두어 시간씩 머물다 오는 중인데 다른 건 몰라도 드릴 질과 나사못질만큼은 어느덧 능숙하게 하고 있다. 기구에 익숙해지는 당연한 과정일 뿐이지만 나름의 용맹해지는 과정이라고 우기고 싶다.


만드는 중에 몇 번쯤은 실수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실수는 목수님들이 가볍게 손봐주신다. 행여 수정할 수 없는 실수가 남더라도 다 만들고 나면 책꽂이는 여전히 책꽂이다. 실수를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쫄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쫄아도 안 쫄아도 결과는 거기서 거기. 실수하지 않으려면 덤벙대지 말아야 하고, 덤벙이면 실수를 두려워 말아야 할 텐데 타고난 덤벙이면서도 늘 실수가 두려워 미처 시작하지 않은 일이 많다. 덤벙이에다 쫄보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전히 덤벙이지만 덜 쫄보로 진화하며 목공은 나의 취미와 취향이 되어갔다.


‘아이고, 적당히 좀 하세요’라는 말을 이따금 들을 만큼 사포질에 여념이 없을 때가 많다. ‘사포멍’이라 재미 삼아 부르는데 멍을 즐기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라고 목공방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정곡을 콕 찔렀다 할 만큼 정신의 많은 부분이 스트레스로 꽉 차 있었다. 나무를 짓는 일의 시작은 언니의 새 집 선물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후 주 2회 정도 꾸준히 목공을 하는 것은 그 시간이 충분히 마음을 편히 해주기 때문이다. ‘사포멍’이 있어 가능했다. 가공된 원목일지라도 표면은 다소 거칠다. 부아앙 소리를 내는 전기 샌딩기로 먼저 재단된 나무의 결을 만진다. 드릴과 나사로 조각을 연결해 형태를 지은 후 다시 한번 전기 샌딩을 하고 마무리 단계에 날카롭게 각 진 모든 면을 사포로 느긋하게 다듬는다.


사포질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을 못 견디는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다. 지겹다면 지겨운 일이다. 사이즈가 큰 제품이라면 인고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겠으나 미니 책꽂이들은 적당한 멍(때림)이 되어 각진 마음도 함께 다듬어진다. 너무 하염없이 문대다 보면 과하게 둥글어 덜 매력적인 책꽂이가 되기도 하지만, 그동안 마음도 그만큼 둥글어졌을 테니 나쁘지 않다. ‘세상의 모든 각진 것들, 둥글어져라 동그래져라’ 어느 순간 잡생각이 사라지고 주문을 외우고 있으니 이것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가 아닐까. 이따금 각진 사람이 떠올라 마음이 따가울 때가 있다. ‘너 또한 동그래져라’ 조금 더 열심히 문지르다 보면 그 역시 슬며시 사라진다. 나무를 부드럽게 하는 일이 나를 부드럽게 해 조금씩 편안한 사람이 되어간다.


손에 닿는 나무의 물성은 단단하고 견고해 만지는 내내 좋다. 한 때 왕성하게 살아있던 생명체였음을 문득 떠올리면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사포질이 끝나면 치이익 바람으로 가루를 털어낸 후 오일을 바르고 마른 천으로 닦아내면 드디어 완성. 갈 때마다 하나씩 두 개씩 들고 나올 수 있는 미니 책꽂이는 내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을 매 번 느끼게 해 목공방에서 나올 때의 인사는 들어갈 때보다 목청이 훨씬 커진다. 매번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만큼 인심이 후한 공방에 언제고 제대로 인사해야 할 것 같다.

      

언제까지 책꽂이만 만들 거냐고 목수님이 묻기도 한다. 처음부터 책꽂이만 만들 작정이었다. 책꽂이를 선물하면 좋아들 하냐고도 물으신다. 선물하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려고 선물하는 것도 같다. 새로운 걸 욕망하지 않는 것은 바느질 때나 똑같다. 생각을 덧대지 않고 같은 것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좋다.



photh by photographer 정태균


이따금 선물하려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도마를 만들기도 하는데, 드릴이나 못, 본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재단된 평면을 샌딩 하는 것과 테두리를 사포로 보드랍게 하는 일이 과정의 전부이니 책꽂이보다 훨씬 간단하다. 면적이 크니 사포질 하는 시간이 길다. 도마를 쓰는 이의 손마디가 날카로운 모서리에 닿지 않게 하고자 책꽂이보다 더 공들여 문지른다. 잘 쓰고 있다며 사진을 보내오는 것을 보면 칼질용보다는 플레이팅용으로 더 잘 쓰이는 모양이다. 소중히 다뤄주는 마음도 읽힌다. 박달나무 도마를 선물 받은 지인은 업무상의 사진 촬영에 도마가 잘 쓰였다며 작품 수준의 사진을 보내주어 의미 깊었다. (‘단군(檀君)’의 ‘단’ 자가 ‘박달나무 단(檀)’라고, 인문학자이신 목수님이 깨알 지식을 알려주셨다)


책을 읽는 이가 많지 않으니 책꽂이보다는 도마가 환영받을 거라는 조언을 이따금 듣는다. 선물하려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다 보니 선물하는 것이기에 나 좋은 것을 만들 뿐이다. 나의 본질과 닿아 있는 것은 백 번을 만들어도 백 번 다 도마보다는 책꽂이다. 그래도 최근엔 선물용으로 만든 도마에 없던 물욕이 돋아 내 것으로 삼았다. 물보라 번지듯 둥글고 순한 무늬의 느티나무 도마와 치즈 플레이팅용으로 딱 좋을 지리코테 미니 도마. 도마가 예쁠 줄은 몰랐다. 박달나무 도마도 하나 더 가져볼까. 점점 물욕이 돋는구나.

    




생각지도 않았던 좋은 취미가 생겨 일상이 충만해졌다. 마음에 평온을 주는 취미, 할 때마다 씩씩해지는 것만 같은 취미.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것만 만들어 그런지 다른 일보다 돈이 더 드는 것 같지는 않다. 만들고 만들다 쌓이고 쌓이면 미니 책꽂이를 책과 함께 파는 동네책방 주인이 되어야지. 한 달 책꽂이에는 책 네댓 권을, 한 권 책꽂이엔 한두 권을 큐레이션해 선물 패키지로 만들어볼까. ‘미니 책꽂이 디자인 아이디어 구합니다’ 고객 대상 공모전이라도 해볼까. 언제나 기획은 넘친다. 넘치다 보면 되는 일도 있겠지. 용감해지고 있으니 실수를 두려워 않고 나의 공간을 여는 날도 있겠지. 초보 목공러가 책꽂이 파는 초보 책방 주인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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