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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15. 2023

아직도 공부중, 새로이 공부중 - 어쩌다 인도네시아어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 집기 12

인도네시아어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좀 넘었다. 어쩌다 하필 인도네시아어일까. 우연 같지만 필연이라고 우기고 싶다. 내 인생에 인도네시아어가 개입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필연적으로 이 배움을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을 거라고, 배우는 동안만큼은 믿고 싶다. 우기고 싶다. 빠른 학습 속도에 조금 지쳤다. 그 지친 느낌을 즐기고 있는 것도 같다. 아직 뭐든 하고 있다고, 고여 있지 않으려 아프지 않으려 계속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이것도 병인 걸까. ‘아직도 배우냐’고 이따금 묻는 사람들의 심중엔 그런 마음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 저것도 병이지, 병.....’     




쿠알라룸푸르에서 귀국하던 날, 잘 보지 않던 관광통역안내사협회의 문자 한 통을 그날따라 꼼꼼히 읽게 되었다.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회원에게 베트남어 및 마인어(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어) 수강 기회를 준다고 한다. 해당 언어의 통역 가이드를 충원해야 하나보다.

급박하게 돌아오느라 쿠알라룸푸르에 마음을 두고 오던 참이었다. 말레이시아어를 배워볼까. 배워두었다가 언젠가 1년 살기를 해보면 어떨까, 그런 바람으로 지원했고 서류 전형을 무사통과해 수업 시작한 지 석 달을 넘겼다. 전체 내용의 반 이상을 지나왔다.


6개월 간 주 3회 하루 세 시간의 무료 수업이라니. 별다른 동기 없이도 시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을 누가 뽑아줄까’ 생각했으나 예상과 달리 수강생들 중 젊은 축에 속한다. 제법 긴 시간과 잦은 수업 빈도가 젊은 사람들에겐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만학도의 인도네시아어 단어장


만학도의 수업 열기는 엄청나다. 그에 비하면 나의 학습량은 형편없지만 일상의 작은 틈마다 공부를 쪼개 넣고 있긴 하다. 전철역까지 20여 분간 부러 걸어간다. 원어민의 스피치를 줄기차게 듣고 중얼중얼 따라 한다. 통역 영역에선 이를 ‘shaving' 기법이라고 하던데, 밑도 끝도 없이 내 마음대로 해본 방식이지만 아주 막무가내는 아닌가 보다.


여행을 아주 오래 끊을 수는 없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짬짬이 제주행 비행기를 타거나 부산행 혹은 묵호행 기차를 타기도 한다. 탑승 시간 동안은 웬만하면 배운 내용을 노트북에 정리한 후 핸드폰의 메모 앱으로 옮긴다. 제법 긴 내용의 본문도 철자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 핸드폰에 옮겨 두고 짬짬이 음성 녹음을 들으며 읽는다. ’아, 인니어(인도네시아어) 말고 음악 듣고 싶다 ‘는 생각이 요즘 이따금 드는 걸 보면 살짝 지치거나, 질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배우기 시작한 지 고작 6 개월 만인 내년 1월에 영어로 치면 TOEIC에 해당하는 공인 시험에서 반드시 600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알파벳부터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게 가능할까? 그 후 줄기차게 말하기 연습을 해서 내년 겨울 구술 면접을 통과해야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배움 일 년 만에 관광통역안내사가 된다는 것인데, 이 역시 말이 되나, 되나? ??? 말이 돼야 한다. 왜냐면, 이런 말은 너무 즉자적이지만 나도 돈 벌고 싶다. 마인어 관광통역안내사가 되어서.

     

반전은, 이 수업이 말레이시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시아어가 뿌리는 같지만 현재 두 언어가 판이하게 달라져 일부는 소통 가능하나 실은 꽤나 어렵다는 게 스승님의 말씀이다. 말레이시아는 대개는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나라다 보니 굳이 말레이시아어를 배울 필요가 없고, 따라서 지금 내가 배우는 언어는 두 언어를 아우르는 마인어라기보다는 인도네시아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언어다. 일단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니 초심자에겐 그림이나 다름없을 새 문자를 배울 필요가 없고, 읽는 방식이 꽤나 쉬우며 영어와 비슷한 어순, 겹치는 단어가 많은 점 등 영어에 익숙한 학습자라면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스페인어와도 유사하며 스페인어에 금세 폭 빠지듯 나는 인도네시아어에도 쉽게 빠져 들었다.


시제가 없다. 추가되는 시간 부사어를 통해 시제를 파악하면 그만이다. to 부정사나 동명사, 과거 분사와 같은 동사 변화 형태가 없다. 짧게 말할수록 좋다. 복수형은 명사를 두 번 반복하면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은 orang(오랑). ‘사람들’은 orang-orang(오랑오랑). ‘책’은 buku(부꾸), ‘책들’은 buku-buku(부꾸부꾸). 'ladies and gentlemen'이라 하면 ‘ibu-ibu dan bapak-bapak'(이부이부 단 바빡바빡), 이런 식이다.


*여기서 퀴즈. 'lady' 와 'gentleman'은 인도네시아어로 뭘까요? ‘dan'은 영어로 뭘까요? 다 맞추면 언어 천재? 아니, 못 맞추면 언어 바보인 걸로. 정답 원하시면 저자 소개에 기록된 SNS 통해서 연락 주세요.    




우연찮게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있고, 내년엔 필연적으로 인도네시아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가야 한다. 예전엔 계획이 실행되기 전까지 꾹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이제는 빅 마우스가 되어 소문을 낸다. 말에도 힘이 있을 거라 믿으며 ‘나는 곧 인도네시아에 가게 된다, 생생한 현지의 언어를 배우러 반드시 간다, 자카르타, 발리, 족자카르타에 각 한 달씩, 석 달을 묵으러 가게 돼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고여 있지 않으려 인도네시아 갑니다. 노래 가사처럼,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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