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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03. 2023

장롱면허여도 좋아 - 관광통역안내사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수집기 9


영어가 가장 쉬웠고 즐거웠으나 배운 것이 배운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종종 아쉽기도 했다. 영어의 연을 영영 놓고 싶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학원이나 과외수업으로 오래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직접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학원 수업에 염증을 느껴 관둔 지 오래. 같은 일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작가학교에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중에 관광통역안내를 업으로 삼은 이가 있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 들으니 도전해 볼 만도 한 일이었다. 당장 업이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나이가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 직종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확신은 없지만 시도는 잘한다. 스스로 쓸모없게 여겨지는 무위의 시간을 견디기 어렵고, 그럴 땐 시도만으로도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     


시험까지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교재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합격권의 점수를 겨우 낼 수 있었다. 대면 면접시험도 그닥였다. 간당간당한 점수로 겨우 합격하지 않았나 싶다. 자격증을 손에 쥐고 나니 취미처럼 수시로 각종 자격시험을 치르며 자격증을 모으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해되기도 했다. 존재의 증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겠으나 차츰 비어 가는 중년의 빈 둥지 같은 마음은 이런 일에서 사는 힘을 얻기도 한다. 관광공사에서 개최하는 교육에 꾸준히 참석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오늘에까지 장롱 면허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다른 일에 집중했던 탓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일하기엔 내 능력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다.   





이후 꽤 여러 해가 흘렀고, 영어를 구사할 기회는 역시나 잘 없었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 중 대만 여행자와 이틀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서울 여행 중인 그녀와 두 번 더 만남을 가졌다. 그 친구와 꽤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짧아진 영어를 명명백백 확인할 수 있었다. 쓰지 않은 언어는 역시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글 쓰는 일도 부진하고 마땅히 벌이 할 일도 없어서 이제라도 관광통역안내 일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던 참이라,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그 많던 내 영어는 어디로 갔을까’ 곰곰이 이어지던 고민은 자극이 되었다. ‘그 많던 내 영어를 찾아오면 어떨까’. 새로운 궁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버킷 리스트라는 것을 꼽아본 적은 없지만 몇 가지를 리스트 업 한다면 첫 줄을 차지할 만한 일. 외국에서 공부해 보기. 유학생이 되어 보기. 대학 졸업 후 독일 유학을 가려 시도했다 포기한 적이 있다. 둘째를 낳고 숙명여대에서 TESOL (Teaching English to Students of Other Language) 과정을 기대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후 나머지 과정을 이수하러 미국 유학을 꿈꿔보기도 했다. 결혼 전 남편은 유학을 보내주마 약속했더랬는데 잊은 모양이다. 나조차 이루려 노력하지 않는 약속을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다.

 




이. 제. 라. 도. 사라진 영어를 찾으러 해외로 떠나 보기로 했다. 길게 떠나도 무방할 만치의 여유가 이제야 비로소 생기기도 했다. 어른이 된 아이들도, 내가 없어도 지내는 데 무리 없는 남편도 적극 밀어주었다. 신용카드를 쓰며 차곡차곡 쌓아둔 항공사 마일리지로 말레이시아행 티켓을 과감하게 예매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혹은 호주 등 영어를 공부하기에 더 좋은 나라야 많이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멀리 떠날 만큼의 비용은 없었다. 걱정 많은 성격이니, 유사시에 가족 곁으로 들락날락할 수도 있는 거리여야 한다. 이따금 가족도 나를 찾아준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일주일을 빼곡히 채울 만큼 수업은 빡빡한데 비해 수업료 역시 감당할 만했다.

     

그렇게 결정한 곳,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다녀온 뒤 어느새 넉 달이 지났다(머물던 한 달간의 자세한 경험은 다른 곳에 풀어보련다). 고작 한 달의 공부로 사라진 영어를 되찾진 못했다. 자격증도 여전히 쿨쿨 자고 있다. 자부심은 다른 데서 온다. 외국에서 공부하며 혼자서 잘 살아낸 한 달의 시간. 낯선 곳에 잘 적응해 그 어떤 날보다 성실하게 생활했고, 20대 초중반의 여느 동급생 못지않게 똘똘하게 수업을 다 소화했다는 자부심은 더 먼 곳의, 더 긴 시간의 여행을 꿈꾸게 한다.

     



끝끝내 나는 실종된 영어를 되찾지 못한 채 관광통역안내사를 업으로 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모든 일은 무용하지 않다. 그런 것에서 생기를 얻는다. 괄목할 만한 결과를 얻으려는 욕심보다 고여 있지 않으려는 마음이 지금은 더 적당하다. 고여 있지 않으려, 아프지 않으려 매일매일 꼬물꼬물 일인 작당모의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내년 봄을 구상 중이다. 구체화되면 마구 소문내야지. 말에는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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