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는 처음입니다!
이번 시코쿠 한 달 살기는 아주 굵은 계획, 그러니까 시코쿠에 있는 네 개의 현중 세 개의 현 또는 두 개의 현 정도에 머무른다 라는 생각만으로 떠났다. 어디에서 얼마동안 머물 것인지, 어디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시코쿠를 가는 것은 처음이었고 아는 정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모든 것은 도착과 동시에 자율적으로 그날그날 선택하고 결정해서 진행해 나간다는, 아마 철저한 계획형의 사람들이 본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텐데, 하여튼 그런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내가 이용한 항공은 시코쿠의 네 개의 현중 "우동현"으로 불리는 카가와 현과 직항으로 연결되어 있는 에어서울이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카가와현의 중심도시 다카마쓰시였다. 시코쿠 쪽은 일본의 대도시들에 비해 아직은 한국인들의 관광이 활성화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인지 에어서울에서는 다양한 혜택을 주는 쿠폰북을 제공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한국 사람들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기 위함 같았다.
쿠폰북안에는 공항에서 도시 중심으로 가는 리무진 이용권도 두장이 들어 있었고, 다카마쓰의 유명한 공원인 리츠린 공원 입장권도 들어있었다. 또 타카마쓰 주변에 있는 많은 섬들 중 올리브 섬으로 유명한 쇼도시마 섬으로 가는 페리 이용권도 두장이나 들어 있어서 나처럼 오랫동안 머무는 여행자에겐 제법 요긴하고 재미가 쏠쏠한 쿠폰북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달 동안 여행하고 돌아오는 날보니 올해 4월부터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에어서울의 다카마쓰와 더불어 제주항공의 마쓰야마 재취항 소식을 보니 이제 일본의 소도시들로 이루어진 시코쿠 섬도 한국 여행객들로 북적일 듯하다.
카가와현의 푸른 바다를 상징하는 귀엽고 예쁜 푸른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다카마쓰 시내에 도착했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의 초 강점 중 하나인 것은, 어디를 보나 눈살하나 찌푸릴 일 없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보는 순간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게 만드는 정갈함에 미소가 짓지 않을 수 없다. 깔끔함을 최대한 만끽하며 예약해 둔 호텔로 찾아갔다. 그런 정갈함만큼이나 나에게 일본을 상기시켜 주는 것 중 또 하나는 작음이다. 그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작은 호텔 객실. 뭐 그렇다고 있을 게 없고 하는 건 아니니 딱히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하는 건 아니다. 신기하게도 필요한 건 적재적소에 다 있는, 이만하면 아주 실용적이고 불편할 리 없는 충분한 작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깨에 매달려 있던 악기 가방을 침대옆에 내려놓는 순간, 몸은 저절로 침대를 향한다. 눈부시도록 하얀 호텔 침대에 누워 호흡을 깊게 몇 차례 하니 온몸이 사르르 녹아나는 기분이다. 머릿속으든 마음속으로든 옆 동네 마실 가듯 아무런 긴장감 없이 왔다고 했는데 몸속 어딘가에선 긴장이라는 녀석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꼼지락 거리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렇게 편안한 상태로 심호흡을 몇 차례 더 하니 세상만사 이보다 행복할 순 없을 듯하다.
잘 도착했음에 대한, 세상 모든 자유를 더 크고 충만하게 누릴 수 있음에 대한, 안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입가엔 미소가 지어진다. 안락함, 행복함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설렘이 교차하며 "아, 좋다!"라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세상을 다 품은 듯한 충만한 미소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냈다. 배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까지.
다카마스에 도착한 둘째 날, 오늘 무엇을 할까,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노래가 제일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오전 일정은 가까운 공원에 가서 노래를 하기로 하고 우쿨렐레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우쿨렐레 가방을 메고 길을 걷다 보면 평소보다 더 당당해지는 나를 만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그냥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내 등 뒤의 저 가방이 무슨 마술을 부리는 건가? 아니면 무슨 주문이라도 걸려 있는 건가?
가방을 메고 포부도 당당하게 길을 걷다 보면 어깨도 으쓱해지고 입에선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참으로 기분 좋은 순간이다. 이건 진짜 나의 행복으로 가는 마패 같달까. '이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나는 그 좋은 음악 하는 사람이야. 음악으로 세상의 빛이 되는 사람이고, 생명을 정화시켜 주는 산소 탱크와 같은 사람, 척박하고 거친 이 세상에 생명의 샘, 오아시스 같은 사람!' 늘 이런 마음으로 산다. 그러니 이 악기가 바로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고 그런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지팡이 같다 여기는 것이다.
우쿨렐레 가방이 평소보다 제법 묵직하다. 혹시 버스킹 하는 곳에서 앉을 곳이 마땅찮으면 어떡하나 싶어 집에서 준비해 온 접이식 간이 의자와 커다란 아이패드까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두툼한 악보집에 있는 악보들을 모두 사진 촬영하여 담아왔기 때문에 무거워도 무조건 들고 다녀야 할 필수품이다. 이러니 아무리 무거워도 무게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형편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공원이 나타났다. 이 공원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반가운 마음에 그곳으로 향해서 신나는 다카마쓰에서의 첫 버스킹을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 공원 이름은 다카마쓰 중앙공원이었다. 한산한 토요일 오전 시간, 몇몇의 아이들과 아빠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주말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아빠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한 바퀴를 둘러보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 보인다. 그곳을 정해서 앉기로 하고 신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부터 북새통이었던 인천공항
일출을 보며 출발 준비 완료
나와 함께할 우쿨렐레!
3월 4일인데, 다카마쓰 중앙공원엔 이미 많은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