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준비의 허점과 감동을 준 두 엄마네 가족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숙련된 솜씨로 좌판을 펼치듯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우쿨렐레 가방을 양옆으로 펼쳤다. 그리고 악기와 의자, 아이패드를 꺼내고 노래의 가사를 띄웠다. 늘 하던 대로 C 코드를 잡고 우쿨렐레의 줄을 스르르 튕겨본다. 음! 오늘도 역시나 아름다운 소리, 그래 바로 이 소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소리.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이 소리! 오늘도 잘 부탁한다. 그렇게 기도하듯 솔도미솔~, 우쿨렐레의 가장 위의 줄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줄까지 몇 번 소리를 내어 본 뒤 노래를 시작한다.
언제나 첫 시작은 나의 최애곡, 그러다 보니 더 많이 부르게 되고 자주 부르다 보니 더 잘 부르게 된 노래, 헤 알로하 노 오 호놀룰루(He Aloha No O Honolulu)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나는 내가 세상에서 노래를 제일 잘하는 사람 같다. 아니 그런 마인드뿐만 아니라 태도나 자세, 자신감등도 거기에 맞게 변신한다. 나의 이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더 행복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가장 자신 있는 노래로 가장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만족감이 뛰어나다. 누가 듣건 듣지 않건 이건 이미 나에겐 어떤 의미도 부여할 필요 없는 다른 차원의 영역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한 곡 두 곡 부르다 보면 주변에 점점 사람들이 모인다. 아름다운 노래의 힘은 은은하면서도 세다는 것을 나는 이번 시코쿠 버스킹 여행을 통해서 경험했다. 그리고 어차피 정해진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즐기면서 행복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편안하게 옆에 머물다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밖에 나와 버스킹을 해보면 당장 알 수 있는 나의 상태가 있다. 입에 가장 잘 붙고 자신 있는 노래들을 우선적으로 부르게 된다. 노래를 알게 된 지 오래되었건 아니건 입에 잘 붙는 노래들이 있다. 그렇게 간추려진 노래들을 보면 정말 연습을 많이 했던 노래들이고, 또 오랫동안 많이 불러온 노래들이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 다 자신 있게 잘 부르는 노래여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자신이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노래들은 왠지 쭈뼛거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뜻 부르기가 주저된다. 특히나 사람들이 많이 듣고 있는 상태라면 그 검열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썩 자신은 없지만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경우라도, 중간에 누군가 다가와 듣고 있으면 얼른 자신 있게 잘하는 노래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렇다고 중간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선을 다해 나의 취약 구간을 들키지 않으려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부르게 된다. 그러니 피곤할 밖엔. 그리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결국은 열심히 연습해서 자신 있게 만드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구나라고.
이번 버스킹에서 또 강력하게 문제로 떠오른 것은 실내에서는 웬만큼 보이던 악보들이 햇볕이 쨍쨍 인 곳으로 나오자 잘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노안과 시력 저하로 인해 악보사용에 많은 애를 먹었다. 가사가 잘 안보이자 모든 가사와 코드를 다 외운 곡 말고는 부를 수가 없었다. 큰 문제였다. 그래서 노래를 하기 전 악보를 훑어보고 즉석에서 최대한 암기하려 애를 쓰며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부른 노래들도 있다. 악보도 순서가 뒤죽 박죽이어서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개선해야 할 점들을 명확히 알게 된 것도 이번 버스킹 경험의 큰 획득이라고 생각한다. 수정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눈앞에 쌓여 있는데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여행 와서 귀한 시간을 호텔에 앉아 컴퓨터 작업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 내내 계속 불편해했다. 집에 돌아가면 노안용 악보작업을 꼭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다카마쓰 첫 버스킹으로 중앙공원에서 두 시간가량을 노래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관객이 두 팀이 있다. 한 그룹은 엄마와 자그마한 초등학교 1, 2 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그리고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의 여자 아이였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내 앞으로 다가오며 엄마와 아들. 엄마는 소리 나지 않는 박수, 아마도 내 노래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소리 없이 손뼉 치는 손 모양을 나에게 보인듯하다. 그리곤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엄지를 들어 올렸다. 엄마와 함께 걷던 남자아이도 신이 나는지 폴짝폴짝 뛰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예쁘고 감사해서 나도 함박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엄마와 아들은 내 곁에서 노래를 오래 듣지는 않고 조금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 딸을 어디선가 만나기로 한 듯하다. 한참뒤 그 엄마는 이번에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그 엄마는 이번에도 나를 보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앞서가던 엄마와 누나를 곧장 따라가지 않고 내 앞에 서더니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아닌가. 나는 귀엽고 재미있어서 더 신나게 노래를 불러 줬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아이, 어쩌면 저런 모습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 예쁘고 좋아 보였다. 그렇게 잠시 자신의 끼를 마구 발산하더니 엄마와 누나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순간 춤을 멈추고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미소 지으며 노래를 부르면서도 시선을 계속 그 남자아이에게 두었다.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기다려 주느라 잠시 멈춰 서 있던 엄마는 남자아이가 다가오자 다시 한번 활짝 웃으며 나를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옆에 있던 딸도 나를 보며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왠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린아이인데 귀품 있어 보인다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그 엄마의 그 아이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엄마의 매너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관객이 떠나고 한참을 노래하는 동안 내 주변의 벤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앉았다 떠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노래를 다 마칠 즈음 나는 내 벤치에서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아 있던 한 엄마와 딸을 보게 되었다. 그 엄마와 딸은 너무나 조용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 노래를 오랫동안 들어주었다. 그리곤 내가 버스킹을 다 마친 뒤 정리할 때 일어나서 자리를 뜨는 걸 보며 또 한 번 감정이 일렁였다. 사랑스럽게 둘이 붙어 앉아 오랫동안 내 노래를 다 들어준 그 엄마와 소녀, 지금도 은은한 감사의 마음이 인다.
이렇게 나의 첫 시코쿠, 다카마쓰에서의 버스킹이 끝났다. 나는 이미 도쿄에서 한 달 살기 중에 에노시마에서 했던 버스킹으로 사람들이 보든 안보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붙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다카마쓰에서도 힘든 점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이날 다카마쓰 중앙 공원에서의 버스킹 경험은 이런 나를 더욱더 용기 있고 멋지게 만들어 줬고 더 큰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것은 뒤에 이어지는 한 달간의 시코쿠 버스킹 여행이 순조롭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 두 엄마와 아이들의 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