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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y 06. 2023

올리브 섬, 올리브 파크에 가다

올리브 나무아래에서 하와이 노래를 부르다

쇼도시마에 도착해서 이 큰 섬을 어떻게 여행할까 잠깐 고민했다. 하루 만에 이 큰 섬을 다 돌 수는 없으니 꼭 가고 싶은 곳을 선별해서 여행해야 한다. 쇼도시마에는 일일권이 천 앤인 버스 투어가 세 종류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 올리브 파크와 영화 마을을 가는 노선을 선택했다. 배가 쇼도시마의 도노쇼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바로 연결되는 버스가 없었다. 조금은 기다려야 했지만 항구 주변을 천천히 돌며 구경한 터라 이내 버스가 나타났고 기사에게 올리브 파크 가는 버스가 맞는지 두 번이나 확인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길가의 가로수마저 올리브 나무인 쇼도시마의 풍경을 감탄하듯 감상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올리브 파크가 나타났다.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올리브 공원으로 행했다. 잠시 오르막 길을 오르다 보니 왠지 낯설고 신비롭다 느껴지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올리브 나무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을 먼저 떠 올리던 내게 우리나라의 지척에 있는 일본에서 이런 올리브 나무들의 장관을 만나다니! 입이 쩍 벌어졌다. 산등성이 전체가 올리브 나무로 뒤덮여 있고 저 멀리 산 밑으로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풍경. 비현실적 이리만큼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데, 정말 절경이었다. 더군다나 올리브 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쉬이 가늠하게 할 만큼 고풍스럽고 멋들어진 형태를 갖추고 있어 나의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올리브 나무의 은빛 잎들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린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에서 살랑거리니 마치 바다 위 은빛 물결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과 흡사하다. 쉬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생각되어서인지 멈춰 선 내 발걸음이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다. 급할 것 없는 느린 여행자, 더군다나 악기 가방을 메고 있으니 체력 또한 지치지 않게 잘 안배해서 나는 재촉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 군락을 지나가자 언덕 위에 커다란 풍차가 하나 나타났다. 하얀 몸통의 거대한 풍차, 열두 개의 하얀 깃발이 빙글빙글 돌며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주변에 있는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만끽하고 있는데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낯선 풍경들이 보인다. 여기가 마녀 배달부 키키의 모티브일까, 촬영지일까? 다들 기다란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리곤 풍차 앞에 오면 빗자루를 들고 서던지 또는 다리 사이에 끼우던지 하고서 사진들을 찍는다. 많은 친구들이 빗자루에 타서 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들이 재미있어 보였다. 밝은 미소가 친절해 보이는 일본 아가씨 한 명에게 빗자루를 빌리며 나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역시도 친절함은 기본인 것일까, 나중에 휴대폰을 건네받고 확인하니 이런저런 모습을 많이도 찍어줬다.


풍차와 푸른 바다, 올리브 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곳에서 한참을 앉아 놀았다. 그러다 악기 가방을 멘 채 더 이상 공원을 돌며 놀기에는 태양이 너무나 뜨겁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노래하며 영상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올라오면서 봐뒀던, 특히나 아름답던 올리브 나무들이 있던 그곳으로 다시 내려갔다. 다시 봐도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느껴지는 풍경에 또 한 번 감동한다. 가슴이 찌릿거린다. 영상 촬영하기에 아주 예쁜 곳을 찾았다. 그러나 촬영의 적당한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를 아무리 잘 놓아도 촬영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리저리 이 방법 저 방법을 쓰며 애를 써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버스킹 여행을 한다는 사람이 삼각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 이때만 해도 나는 그저 악기 들고 언제 어디서든 노래하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할 것이었기 때문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문제에 있어서는 별다른 의식이나 계획 관심을 크게 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막상 가서 버스킹을 할 때 나는 영상으로 이 순간들을 모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었다. 그런데 더욱 나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은 이때의 불편하고 아쉬운 점을 바로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타카마쓰로 돌아갔을 때 곧장 삼각대를 하나 구입했으면 될 일인데 나의 고질적인 병패, '나는 전자기기나 여타 장비 기기등에 문외한이다. 그래서 좀처럼 나 스스로 구입하는 일은 없다. 이러한 사항을 잘 아는 남편이나 아이들이 구매담당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켜놓았음을 이번에 나는 발견했다. 그런 사고의  일상화, 고질화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존재 자체를 가로막았다 싶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대충 안경케이스나 물병 위에 올려놓거나 바위나 기타 기물들 위에 놀려 놓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등의 어설픈 짓을 이어나갔다. 여행 내내.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앞서가는 듯하면서도 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어리숙한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행동들이 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어떻게든 노래를 불렀고 영상을 찍었다. 지나가는 어떤 중년의 여성은 나의 노래를 들으며 환한 미소로 박수를 치며 엄지 척을 보내주고 지나간다. 그 작은 미소 한 줌, 손뼉 치는 소리 한 자락. 들어 올린 엄지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모른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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