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콧 지음/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옮김,(주)책읽는곰,2021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내가 어렸을 때 일이에요. 가끔씩 학교에서 발표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러 왔어요.
그러고는 발표를 망치고 속상해하는 나를 강가로 데려갔어요.
그런 날에는 내 입이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고통스럽기만 했어요.
같은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저 조용히 있고만 싶었어요.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을 따라 돌 위를 건너뛰고,
연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벌레를 잡고,
블랙베리를 땄어요.
어느 날, 강물이 밀려오는 걸 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요.
단순히 말을 더듬는다고 말해 버리기 힘든 면이 있어요.
단어와 소리와 몸을 가지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노동을 하는 셈이거든요.
내가 말을 더듬는 것은 나만의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날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 여러 입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기도 해요.
식당에서 주문을 하거나,
날씨 이야기를 가볍게 주고받거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흐름 말이에요.
말을 더듬으면서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기도 해요.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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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던 스콧
그림이 무척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그림이 아름다운 대신에 말더듬이로 힘들어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강물처럼 말하다니..
아주 짧고 얇은 그림책이지만 독자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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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막내가 말더듬이로 고생할 때,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막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작은 아이는 우리의 관심 밖이었고,
특히 말이 많은 밥상에서의 모든 이를 불편하게 했다.
대화를 하는 중에 막내가 끼어들어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나에게도 강물처럼 말하는 동생이 있었고,
이렇게 거창하게 멋진 말은 아니었어도
잘 들어주는 따뜻한 누나가 되어주지 못해 그저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