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는 새벽 3시 13분에 눈을 떴다. 알람은 5시 반에 맞춰져 있었다.
요즘 이 시간에 깨는 일이 잦았다. 깨는 게 아니라, 애초에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는 것이었다. 아내 지영은 옆에서 숨소리를 고르게 내고 있었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자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 대표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지영은 결혼 전 14년을 다닌 회사를 둘째를 낳고 1년 뒤에 그만뒀다. 건강이 먼저였고 아이들이 그다음이었다. 직장 다닐 때 지영은 자다가도 꿈에서 보고서를 고치는 사람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1년이 지나서야 저 고른 숨소리가 돌아왔다고 이 대표는 생각해 왔다. 그게 사실인지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대표는 확신하지 못했다. 책임이 많아진다는 건, 핸드폰을 덜 보려고 애쓰는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결국 핸드폰을 들었다. 회사 통장을 봤다. 4억 2천 3백만 원. 어제 오후 기준. 이 대표는 이 숫자를 외우려고 한 적이 없는데도 외우고 있었다. 가계 통장도 함께 외우고 있었다. 1천 8백만 원. 두 통장이 머릿속에 늘 같이 떠올랐다. 다음 달 14일에 회사 인건비 8천 2백만 원이 나간다. 25일에 임대료, 서버비, 4대 보험, 기타 고정비로 1천 3백만 원이 나간다. 그리고 가계 쪽으로는 9일에 주담대 원리금 4백만 원, 15일에 사교육비 자동이체 3백 3십만 원이 빠졌다. 중간에 들어오기로 한 대기업 프로젝트 중도금 3천만 원이 예정대로 들어오면, 회사는 괜찮다. '예정대로'라는 단서가 늘 붙었다.
창업 10년째였다. 흑자는 3년째였다. 3년 연속 흑자인 회사의 대표가 새벽 3시에 통장을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대표는 가끔 자기도 우스웠다. 44살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았다. 불은 켜지 않았다. 베란다 너머 맞은편 동에 불이 네 개 켜져 있었다. 이 대표는 그 불빛을 세어보다가 그만두었다. 저 사람들이 잠들지 못한 건지, 벌써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는 건 자기 하나였다.
오늘 오후 2시에 은행 미팅이 있었다. 운영자금 대출 연장 건. 작년까지는 큰 고민 없이 연장되던 일이었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환경, ESG, 탄소절감. 이런 단어들에 대한 시장의 열기가 식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대기업 지속가능경영 담당자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작년 하반기부터 그쪽에서 미팅을 미루기 시작했다. 미뤄진다는 건 하지 않겠다는 거다. 이 대표도 직장 생활 해봐서 안다. "일정 조율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만큼 공허한 말이 또 없다.
이 대표의 회사는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감축 로드맵을 짜주는 B2B SaaS를 만들었다. 매출의 절반이 대기업에서 나왔다. 그 절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3년 연속 흑자라는 말은 이렇게도 번역이 됐다.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비용을 더 줄였다. 비용을 줄인다는 말은, 사람을 줄였다는 뜻이다. 작년에 두 명이 회사를 떠났다. 한 명은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했고, 한 명은 "다른 기회가 있어서"라고 했다. 이 대표는 둘 다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12명 중에 이 대표가 없어도 일이 굴러갈 만큼 책임감 있는 사람은 두 명, 아마도 세 명이었다. 나머지는 월급 받는 만큼만 일했다. 그게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기 회사가 아닌데 자기 회사처럼 일하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이 대표도 머리로는 알았다. 알면서도 어떤 날 퇴근하고 빈 사무실을 혼자 잠그면서, 이 대표는 생각했다.
'왜 나만 이렇게 하지.'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대표는 자기가 한심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건 어제 저녁이었다.
"아들, 회사는 잘되지?"
"네, 잘되죠."
"아빠가 동창회 가서 아들 자랑을 또 했다고 하더라. 환경 살리는 회사 한다고."
"자랑할 거까지는 없어요, 엄마."
"왜 없어. 나라에서 상도 받고 그랬잖아."
그 상은 3년 전이었다. 그 뒤로 받은 상은 없었다. 이 대표는 수화기 너머로 웃었다. 요즘은 웃음이 진짜 웃음인지 연습된 웃음인지 잘 구분이 안 됐다.
"엄마, 몸은 어떠세요."
"나야 맨날 똑같지."
"병원은 다녀오셨어요?"
"응, 약 잘 먹고 있어."
전화를 끊고 이 대표는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를 끊은 지 6년이 됐는데 이럴 때면 손가락 사이가 허전했다. 아버지는 평생 한 회사에 다녔고, 퇴직하고는 재취업한 회사에서 또 다니고 있었다. 이 대표는 아버지에게 회사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과 회사를 만든 사람은 서로 다른 언어를 썼다. 아버지에게 "요즘 현금흐름이 좀 빡빡해요" 같은 말을 하는 건, 번역이 안 됐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세 가지였다. 환경 관련 회사를 한다는 것, 몇 년 전에 상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잘되고 있다는 것. 이 대표는 그 세 가지를 계속 지키려고 했다.
거실에 앉은 채로 이 대표는 숨이 얕아지는 걸 느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이 대표는 더 무서웠다.
처음은 작년 가을이었다. 강남역 환승 통로에서였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 같았다. 벽에 10분쯤 기대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이 대표는 지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는 혼자 갔다. 공황장애. 처방받은 약은 회사 가방 안쪽 주머니에 늘 넣고 다녔다. 지영은 그 약의 존재를 몰랐다.
이 대표는 의사가 가르쳐준 대로 숨을 쉬었다. 넷까지 들이마시고, 여섯까지 내쉬고. 숨은 돌아왔다. 늘 돌아왔다. 아직까지는.
그 '아직까지'가 언제까지인지는, 의사도 모른다고 했다.
5시 반.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이 대표는 부엌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 창 너머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시작됐다.
곧 지영이 일어날 것이다. 서준이는 초등학교 1학년, 서진이는 유치원. 아침 준비가 끝나면 서준이는 가방을 메고, 서진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이 대표는 씻고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갈 것이다. 출근해서는 팀원들 앞에서 웃을 것이고, 오후엔 은행에서 자신감 있게 말할 것이고, 저녁엔 투자자 앞에서 비전을 말할 것이다.
비전. 이 대표는 이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원래는 속이 쓰린 단어가 아니었다. 회사를 시작할 때 비전은 이 대표에게 숨을 쉬게 하는 단어였다.
기후 문제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이 대표가 대학 때 배운 사실이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마음 하나로 회사를 시작했다. 10년이 지났다. 그 마음은 지금도 있다. 있긴 한데, 매일 새로 닦아야 빛이 났다. 안 닦으면 먼지가 쌓였다.
아이들 방에서 작은 기척이 들렸다. 서진이였다. 이 대표는 물컵을 내려놓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서진이는 이불을 발치까지 차버린 채 다시 잠들어 있었다. 이 대표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려줬다. 6살 서진이의 얼굴은 작았고, 따뜻했고, 이 대표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이 대표는 방문을 조용히 닫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해가 뜨기까지 조금 남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앉아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