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서준이의 받아쓰기

by 이민수

토요일 아침 7시 20분에 이 대표는 눈을 떴다. 평일보다 한 시간 늦었다. 그것도 5시부터 몇 번씩 깼다가 겨우 다시 잠든 끝이었지만.

서준이가 침대 모서리에 서서 이 대표를 보고 있었다.

"아빠."

"어, 서준아."

"일어났어?"

"지금 막."

"아빠, 오늘 토요일이야."

"알아."

"그럼 자전거 타러 가는 날이야."

이 대표는 잠깐 멈췄다. 지난달이었나 지지난달이었나, 서준이와 자전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봄 되면 같이 타자고. 그게 서준이 머릿속에는 계약처럼 남아 있었다. 8살의 계약은 깨질 수 없는 계약이었다.

"봄이야, 아빠. 오늘 봄이야."

서준이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이 대표는 천장을 봤다. 오늘은 주말이었다. 주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거실로 나왔을 때 지영이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서진이는 식탁에서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서준이는 헬멧을 이미 쓰고 있었다. 실내에서.

"헬멧 벗어, 서준아. 집에선 안 써도 돼."

"응, 근데 까먹지 않으려고."

이 대표는 웃었다. 요즘은 웃음이 연습인지 아닌지 자꾸 구분하려 들었는데, 서준이 앞에서는 그 구분이 사라졌다. 그게 고마웠다. 서준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대표를 구하고 있었다.

"자전거 타러 갈 거야, 오늘?" 지영이 머그잔을 건네며 물었다.

"응, 가야지."

"진짜 가?"

지영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이 대표는 그 표정이 뭔지 알았다. 이전에 미뤘던 게 몇 번인지 지영이 기억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가."

"아빠, 진짜 가?" 서준이가 헬멧을 쓴 채로 소파에서 뛰어올랐다.

"진짜 가. 아빠 밥 먹고 옷 갈아입고 나서."

서진이가 시리얼을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나도 가."

"서진이는 자전거 없어." 서준이가 말했다.

"나도 살 거야."

"오늘은 아니야."

"왜 아니야."

"지금 자전거 가게 안 열었어."

서진이는 입을 삐죽했다. 이 대표가 끼어들었다.

"서진이, 아빠랑 서준이가 자전거 타면 서진이는 엄마랑 같이 따라갈 수 있어. 걸어서. 한강에서 만나자."

"엄마, 우리도 가?" 서진이가 지영을 봤다.

"가자." 지영이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결정됐다.


집에서 한강까지는 자전거로 15분쯤이었다. 이 대표와 서준이는 먼저 출발했고, 지영과 서진이는 30분 뒤에 걸어오기로 했다. 지영이 같이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어깨 때문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어깨가 안 좋았다. "오늘 좀 안 좋아서 못 타겠어." 지영은 그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쉬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같이 탄 적이 언제였는지, 이 대표는 기억이 안 났다.

서준이 자전거는 작년 가을에 사준 거였는데, 이 대표는 그게 8살에게 맞는 크기인지 아직도 긴가민가했다. 자전거 가게 주인이 "내년에도 탈 거니까 조금 큰 걸로 하세요" 해서 그걸 샀는데, 올해 봄이 되자 서준이 키가 자전거를 따라잡은 건지 자전거가 여전히 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대표는 자기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이 대표의 자전거는 5년 전에 산 거였다. 그때 이 대표는 주말마다 한강을 달렸다. 회사가 작을 때였다. 직원이 다섯 명이었고, 현금흐름은 지금보다 더 위험했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가벼웠다. 그때는 작은 회사였으니까. 작은 회사는 작은 걱정을 했다. 큰 회사는 큰 걱정을 했다. 회사 크기와 걱정 크기는 비례했다. 비례한다는 걸 이 대표는 5년에 걸쳐서 배웠다.

5년 만에 꺼낸 자전거는 바람이 조금 빠져 있었다. 이 대표는 아파트 주차장 옆 공기 주입기에 넣고 바람을 채웠다. 서준이는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그걸 구경했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바람 넣는 거야."

"왜 바람이 빠져?"

"그냥 시간 지나면 빠져."

"왜 그냥 시간 지나면 빠져?"

이 대표는 잠깐 생각했다. 왜 빠지냐고 하면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고무의 미세한 기공으로 공기가 천천히 새어 나간다고. 그런데 8살에게 그렇게 말하면 또 다음 질문이 올 거였다. "그럼 고무는 왜 기공이 있어?" 그러면 또 설명해야 하고, 그 끝에는 항상 "왜?"가 남았다. 8살의 세계는 왜의 끝이 없었다.

"세상에 그런 게 좀 있어, 서준아. 그냥 시간 지나면 없어지는 거."

"아."

서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는지 그냥 납득한 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강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조금 찼다. 3월 말이었다. 나무들은 아직 회색이었지만, 가지 끝에 아주 작은 초록이 올라와 있었다. 이 대표는 그걸 오랜만에 봤다. 정확히는, 오랜만에 봤다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의식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나무에 초록이 올라왔을 거였다. 이 대표는 그걸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갔다. 회사 일에 빠져서, 혹은 다른 더 큰 걱정에 빠져서.

"아빠, 출발."

서준이가 자전거에 오르려고 했다. 이 대표는 서준이의 헬멧 끈을 다시 조였다.

"너무 꽉 아니야?"

"괜찮아."

"빠르게 가지 마. 아빠 뒤따라가."

"알았어."

이 대표가 먼저 페달을 밟았다. 서준이가 뒤따라왔다. 이 대표는 자주 뒤를 돌아봤다. 서준이는 자전거를 잘 탔다. 작년 가을에 같이 연습할 때는 몇 번 넘어졌었는데, 그 사이에 어디서 혼자 연습했는지 이 대표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꽤 안정적이었다. 아이는 혼자 자라는 구간이 있었다. 그걸 이 대표는 매년 새로 배웠다.

한강 자전거 도로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이 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봄이 되자 자전거를 꺼낸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표는 서준이를 신경 쓰면서 천천히 달렸다. 속도는 내지 않았다. 서준이는 이 대표 뒤에서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이 대표는 가끔 뒤를 돌아봤다가 다시 앞을 봤다. 뒤에 서준이가 있다는 게 이상하게 든든했다.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는 감각은 오랜만이었다.

회사에서도 따라오는 사람은 있었다. 12명의 직원. 그런데 직원들이 따라오는 건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그건 붙어 있는 거였다. 월급을 매개로 붙어 있는 거. 서준이가 지금 자전거 뒤에서 따라오는 건,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 따라오고 싶어서 따라오는 거였다. 이 대표는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페달을 밟으면서 생각했다.


잠수교 근처에서 이 대표는 자전거를 세웠다. 서준이도 옆에 섰다.

"아빠, 힘들어."

"그럼 좀 쉬자."

둘은 자전거를 나무 옆에 세우고 벤치에 앉았다. 이 대표는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서준이에게 주었다. 서준이는 꿀꺽꿀꺽 마셨다.

"아빠."

"응."

"아빠는 왜 회사 다녀?"

이 대표는 물통을 받아들다가 멈췄다.

"회사?"

"응. 회사."

이 대표는 서준이를 봤다. 서준이는 진지한 눈으로 이 대표를 보고 있었다. 8살의 진지함은 독특했다. 어른의 진지함은 무거웠는데, 8살의 진지함은 가벼웠다. 그런데 가벼운데도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왜 물어봐?"

"그냥."

"그냥?"

"아빠가 회사 때문에 힘든 것 같아서."

이 대표는 숨을 한 번 쉬었다. 8살이 알아차렸다. 지영이 지영답게 묻지 않는 동안, 8살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 대표는 8살 앞에서 연기를 잘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 힘들긴 해."

"그럼 왜 다녀?"

"아빠 회사는 말이야." 이 대표가 천천히 말했다. "아빠가 만든 회사야."

"아빠가 만들었어?"

"응."

"왜 만들었어?"

이 대표는 잠깐 멈췄다. 투자자 앞에서 수백 번 한 설명이었다. 탄소 배출량 측정, ESG 데이터, 기업의 환경 책임, 지속가능경영. 그런 단어들은 8살에게 번역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번역해야 했다.

"지구가 지금 많이 아프거든. 열이 나고 있어."

"지구가?"

"응."

"왜?"

"사람들이 공장이랑 자동차에서 나쁜 연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 연기가 하늘에 쌓여서 지구에 열이 나."

"그럼 어떡해?"

"연기를 줄여야 해. 근데 연기 만드는 회사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연기를 만드는지 잘 몰라. 아빠 회사는 그걸 계산해 주는 회사야. 얼마나 만드는지 알아야 줄일 수 있으니까."

서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아빠, 그럼 아빠가 지구 의사야?"

이 대표는 웃었다. 세 번째 웃음이었다. 이번 것은 지영 앞에서 웃은 것보다 더 컸다.

"의사까지는 아니고, 의사 옆에서 체온계 들고 있는 사람 정도?"

"체온계도 중요해, 아빠."

"응?"

"열 재야 약 주잖아."

이 대표는 잠시 말이 없었다. 8살이 한 말이었다. 체온계도 중요하다는 말. 투자자 앞에서, 은행 앞에서, 언론 앞에서, 이 대표가 지난 10년 동안 들어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이 정확했다. 열 재야 약 주잖아.

이 대표는 서준이의 헬멧을 한 번 톡톡 건드렸다.

"서준이 말 잘하네."

"아빠, 내 말이 맞아?"

"응. 서준이 말이 맞아."


돌아오는 길에 이 대표는 천천히 달렸다. 서준이도 천천히 따라왔다. 바람은 여전히 찼지만, 햇볕이 등에 닿는 건 따뜻했다. 이 대표는 가끔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달렸다. 눈을 감고 달리는 건 위험했지만, 잠깐은 괜찮았다. 1초 정도는.

잠수교를 지날 때 이 대표는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았다. 샤워하기 전에도, 아침 먹을 때도, 서준이와 출발하기 전에도. 오후 2시쯤엔 한 번 보게 되겠지. 일요일에는 또 몇 번 볼 거고. 월요일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또 볼 거고.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숫자가 머릿속에 없었다. 없는 게 아니라, 없는 척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척하는 거라도 없는 게 낫다.

한강 다리 위로 지하철이 지나갔다. 토요일 오전의 지하철은 평일보다 덜 붐볐다. 이 대표는 그 지하철을 보면서, 안에 탄 사람들 중에 혹시 새벽 3시에 깨어 있던 사람이 있을지 생각했다. 있을 거였다. 한 명도 없으면 이상할 만큼 많은 사람이 지금 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자전거를 정리하고 이 대표가 현관에 들어섰을 때 지영과 서진이는 아직 안 와 있었다. 이 대표는 거실 소파에 잠깐 앉았다. 안방 쪽에서 어떤 소리도 안 났다. 지영이 누워 있을 거였다. 토요일 오후엔 지영이 누워 있는 시간이 잦았다. 평일에는 누워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토요일에 몰아서 누웠다. 이 대표는 그게 휴식인지 회복인지 그냥 무너짐인지 잘 몰랐다. 잘 모르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 그 광경을 봤다. 보고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지영을 위한 거라고 이 대표는 생각했다. 사실 묻지 않는 게 자기를 위한 거였는지도 몰랐다. 묻기 시작하면 답이 무서웠다.

서준이가 헬멧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이 대표는 안방 문을 살짝 열어봤다. 지영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자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대표는 문을 다시 닫았다.

"아빠."

서준이가 거실로 다시 나왔다.

"응."

"다음 주에도 탈 수 있어?"

이 대표는 잠깐 멈췄다. 다음 주에는 화요일에 중부발전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고, 수요일엔 그린스텝 김 대표와 약속이 있었고, 목요일엔 투자자 미팅이 하나 잡혀 있었고, 금요일엔 월말 정산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 한 주를 어떻게 끌고 왔느냐에 달려 있었다. 약속을 하면 안 됐다.

그런데 서준이가 이 대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헬멧을 벗은 서준이의 머리는 땀으로 조금 눌려 있었다. 8살의 얼굴이 이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탈 수 있어."

"진짜?"

"진짜."

약속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다음 주의 이 대표가 감당할 일이었다. 오늘의 이 대표는 약속을 해야 했다. 오늘의 이 대표에게는 그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준이는 헬멧을 자기 손에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 대표는 자전거 두 대를 주차장 구석에 세웠다. 세우면서 이 대표는 자기 자전거 안장에 손을 올렸다. 오래 두었던 자전거는 오랜만에 밖에 나왔고, 오늘 밤에는 다시 주차장에 세워질 거였다. 다음 주에 한 번 더 나올 수 있을지, 그건 이 대표가 지킬 약속에 달려 있었다.

멀리서 지영과 서진이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서진이는 지영의 손을 잡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이 대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민들레였다. 서진이가 길에서 꺾어 온 모양이었다. 작은 노란색 꽃 한 송이. 서진이는 그걸 아빠에게 보여주겠다고 꽉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꽉 쥐고 있으면 꽃이 망가질 텐데, 6살은 그걸 아직 몰랐다.

이 대표는 현관 앞에 서서 기다렸다. 서진이가 가까워질수록 꽃이 조금씩 구겨진 게 보였다. 그래도 꽃이었다. 이 대표는 마중 나가지 않고 거기 서 있었다. 서진이가 뛰어와서 꽃을 내밀 때까지. 그 몇 걸음이 이 대표에게는 오늘 가장 길고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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