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박 팀장

by 이민수

박 팀장의 이름은 박정우였다. 회사에서는 박 팀장이라고 불렸고, 집에서는 '여보', 혹은 '아빠'로 불렸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3학년 딸이 있었다. 아내는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였다. 박 팀장은 올해 45살이었다. 이 대표보다 한 살 위였다.

4월 셋째 주 월요일 아침 7시 반, 박 팀장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자기 차에 올랐다. 12년 된 중형차였다. 출근길이 35분 걸렸다. 강동구에서 선릉까지. 5분만 더 걸리면 박 팀장은 짜증이 났고, 5분 덜 걸리면 박 팀장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월요일 아침은 보통 늦게 걸리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은 30분 만에 도착했다. 박 팀장은 회사 근처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사무실까지 갔다. 주차비는 회사에서 월정액으로 지원했다. 그건 창업 초기부터 이어진 제도였고, 박 팀장은 입사했을 때 그게 생각보다 큰 혜택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박 팀장은 사무실에 8시 10분쯤 도착했다. 사무실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안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대표가 먼저 나와 있었다. 박 팀장은 월요일 아침마다 이 광경을 봤다. 이 대표는 박 팀장이 기억하는 한 4년 동안 늘 먼저 나와 있었다.

"대표님, 일찍 나오셨네요."

"네, 박 팀장님도요."

"저는 오늘 차가 별로 안 막혀서요."

"저도 오늘은 일찍 깼어요."

박 팀장은 이 대표의 '일찍 깼어요'를 들었다. 이 대표는 요즘 그렇게 말했다. '일찍 일어났다'가 아니라 '일찍 깼다'. 박 팀장은 그 차이를 의식했다. 두 표현은 비슷해 보였지만 조금 달랐다. '일찍 일어났다'는 정상적인 기상이었고, '일찍 깼다'는 계획에 없는 기상이었다. 이 대표는 최근 반년 동안 '일찍 깼다' 쪽의 언어를 썼다.

박 팀장은 자기 자리로 가서 노트북을 켰다. 메일함을 열었다. 주말 동안 들어온 메일이 12개였다. 대부분 업무 연장이었다. 박 팀장은 그 중 5개를 월요일 오전 전체 미팅 전에 답해 두기로 했다. 나머지 7개는 오후로 넘길 수 있었다.


9시 30분에 전체 미팅이 시작됐다. 김 이사가 안식월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기술 관련 이슈는 이제 박 팀장이 총괄하고 있었다. 처음엔 버거웠다. 지금은 조금 감이 잡혔다. 김 이사가 인수인계를 정말 꼼꼼히 해 주고 갔다. 김 이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팅은 한 시간쯤 걸렸다. 박 팀장은 기술 쪽 진행 사항을 공유했고, 영업팀은 이번 주 미팅 일정을 공유했고, 디자인 쪽은 새 제품 모듈 UI 초안을 공유했다. 이 대표는 중간중간 질문을 했다. 예전 같으면 이 대표가 결정을 내리던 자리에서, 요즘엔 질문을 더 많이 했다. 박 팀장은 그 변화를 의식했다. 이 대표는 요즘 "어떻게 생각하세요?"를 더 자주 썼다. 한 달 전까지는 거의 쓰지 않던 표현이었다.

미팅이 끝나고 박 팀장은 자리로 돌아왔다. 옆자리 영업팀 윤주임이 말을 걸었다.

"팀장님, 아까 대표님이 저한테 고객사 대응 맡기신다 하셨을 때요."

"응."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윤주임은 입사 2년 차였다. 최 과장이 나간 뒤로 영업팀에서 가장 오래 된 사람이 됐다.

"잘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잘 해왔고요, 그리고 윤주임이 잘 못하면 저랑 대표님이 같이 도울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윤주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 팀장은 모니터를 다시 봤다. 윤주임이 고객사 대응을 맡게 된 건 이 대표와 박 팀장이 지난주에 결정한 것이었다. 최 과장 빈자리를 외부에서 채우지 않기로 했으니, 내부에서 누군가 그 역할을 해줘야 했다. 이 대표는 "윤주임이 어떨까요"라고 박 팀장에게 먼저 의견을 구했다. 박 팀장은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결정에 박 팀장이 개입한 게 10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 대표가 혼자 결정하고 통보했을 일이었다. 요즘은 달랐다. 박 팀장은 그 차이를 알았다. 그 차이를 알면서, 박 팀장은 가끔 생각했다. 이 대표가 왜 갑자기 달라졌을까.

이유를 박 팀장은 대강 짐작했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이 대표의 얼굴을 4년째 보고 있으니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이 대표의 얼굴이 조금 달라졌고, 올해 들어서는 더 뚜렷하게 달라졌다. 눈 밑이 어두워졌고, 가끔 미팅 중에 말이 한 박자 늦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속도도 느려졌다. 박 팀장은 그런 신호들을 본 적이 많았다. 자기 회사가 아니었어도 봤을 신호였다. 사람의 얼굴에서 고단함이 나오는 방식은 몇 가지 있었다. 이 대표의 방식은 조용한 쪽이었다. 소란스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서서히 퍼지는 타입.


점심시간, 박 팀장은 혼자 먹었다. 회사 근처 백반집. 월요일마다 가던 곳이었다. 사장님이 박 팀장을 알아보고 "늘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했다. 박 팀장은 "네"라고 했다. 같은 집을 오래 다니는 사람은 그런 여유를 얻었다. 메뉴를 고르는 10초를 절약해 주는 여유.

백반을 먹으면서 박 팀장은 핸드폰으로 잡플래닛을 열었다. 자기 회사의 리뷰를 스쳐 봤다. 최근에 올라온 리뷰가 있었다. 별 셋 반. "환경 분야 스타트업.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대표님이 선하지만, 급여 수준은 업계 평균 이하. 성장을 원하는 분들은 추천하지 않음." 리뷰를 쓴 사람이 누군지 박 팀장은 짐작이 갔다. 작년에 나간 개발자 중 한 명일 거였다. 리뷰 내용이 심하게 악의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 박 팀장은 그 리뷰를 한 번 더 읽었다.

"대표님이 선하지만." 이 다섯 글자가 박 팀장의 마음에 걸렸다. 박 팀장이 이 대표에 대해 하는 평가와도 일치했다. 이 대표는 선한 사람이었다. 선하다는 건 좋은 말이었다. 좋은 말이었는데, 회사 리뷰에 '선하다'가 나오면 그건 완전한 칭찬이 아니었다. '선한데 그래서 부족하다'의 줄임말에 가까웠다. 선하기만 한 대표가 회사를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 박 팀장도 그 한계를 4년 동안 봐왔다.

박 팀장 자신은 왜 여기 남아 있을까.

박 팀장은 그 질문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이유를 스스로 자꾸 물으면 남아 있기가 어려워졌다. 한 번쯤 물어보는 건 건강한 일이었지만, 매일 묻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박 팀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이 회사는 박 팀장이 기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 대기업에 가면 박 팀장의 포지션에서는 관리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선 박 팀장이 직접 손을 대는 일이 아직 많았다. 둘째, 이 대표가 선했다. 이 대표는 박 팀장의 가족 상황을 알고 있었고, 급한 일이 있을 때 자리를 비워도 뭐라 하지 않았다. 셋째는 좀 복잡했다. 박 팀장은 이 회사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기후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고, 박 팀장은 그 문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 이 세 번째 이유를 박 팀장은 자주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낯간지러웠다. 그런데 그게 박 팀장이 회사에 남아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였다.

박 팀장도 이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작년에 두 번, 올해 한 번. 마지막 제안은 연봉이 지금보다 1,800만 원 높았고, 스톡옵션도 꽤 있었다. 박 팀장은 그 제안을 이 대표에게 말하지 않았다. 박 팀장이 이 대표를 떠올릴 때마다, 이 대표를 떠나는 일이 이 대표에게 어떤 충격으로 갈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게 박 팀장에게 브레이크가 됐다. 충격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가 1,800만 원을 막았다.

이 얘기를 이 대표는 몰랐다. 박 팀장은 앞으로도 말할 계획이 없었다. 말하면 이 대표가 또 부담을 가질 거였다. 이 대표는 부담을 쌓아두는 사람이었다. 박 팀장은 이 대표 머리에 한 짐을 더 얹고 싶지 않았다.

박 팀장은 점심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잠깐 자기에게 짐이 여러 개 있다는 걸 의식했다. 어머니의 위, 아내의 갑상선, 그리고 이 대표의 얼굴. 세 가지가 박 팀장의 어깨에 동시에 있었다. 어느 것 하나도 박 팀장이 직접 풀 수 있는 짐이 아니었다. 그냥 옆에서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짐이었다. 같이 있어주는 일이 풀어주는 일보다 어렵다는 걸, 박 팀장은 4년 동안 배웠다. 그리고 이 대표가 이걸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도, 박 팀장은 봤다.


오후 3시쯤, 박 팀장은 개발자 한 명과 회의실에서 미팅을 하고 있었다. 서버 구조 리팩토링 관련 논의였다. 미팅 중에 박 팀장의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왔다. 아내였다.

여보, 어머님 병원 갔다 왔는데 또 위가 안 좋대. 약 처방받아서 먹는 중.


박 팀장의 어머니는 위가 안 좋으신 지 오래됐다. 작년에 한 번 큰 검사를 하셨고,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한 달에 두세 번씩 약을 드시고 계셨다. 박 팀장은 어머니의 안부를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로 듣고 있었는데, 최근엔 바빠서 2주 연속 빼먹었다. 박 팀장은 회의 중이었지만 잠깐 답을 보냈다.

응 고생하셨겠다. 내가 저녁에 다시 전화드릴게.


아내는 답을 안 했다. 박 팀장은 핸드폰을 엎어 놓고 다시 미팅에 집중했다. 개발자가 리팩토링 관련 의견을 말했다. 박 팀장은 그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미팅이 끝난 건 4시였다. 박 팀장은 회의실을 나오면서 자기 자리로 가다가, 이 대표 자리를 지나쳐 갔다. 이 대표는 자기 자리에서 통화 중이었다. 박 팀장은 통화 내용을 못 들었지만, 이 대표의 얼굴 표정으로 대강 감을 잡았다. 좋은 전화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박 팀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잠깐 일을 하지 않고 이 대표 쪽을 봤다. 5분쯤 뒤에 이 대표가 전화를 끊었다. 박 팀장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 대표 쪽으로 걸어갔다.

"대표님, 커피 한 잔 드실래요?"

박 팀장이 그렇게 물었다. 이 대표는 잠깐 박 팀장을 올려다봤다.

"커피요?"

"네, 저 지금 사러 나가는데 같이 가시거나, 제가 사다 드릴까요."

"아, 고마워요. 저 같이 갈게요."

이 대표는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서 일어났다. 둘은 사무실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층에 내려서 근처 커피 스탠드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말이 없었다. 박 팀장은 이 대표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이 대표를 편하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커피 스탠드에서 이 대표는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박 팀장은 라떼를 시켰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대표가 먼저 말했다.

"박 팀장님."

"네."

"중부발전이 이번 프로젝트 규모를 30% 줄이겠다고 통보 왔어요. 방금 전화로요."

박 팀장은 커피를 받아 들면서 잠깐 멈췄다.

"…언제 반영된대요?"

"이번 분기 안에. 다음 달 결제분부터요."

박 팀장은 숫자를 빠르게 머릿속에서 돌렸다. 중부발전은 이 회사의 매출 비중에서 두 번째로 큰 고객이었다. 그쪽이 30% 줄면 연간으로 환산해서 얼마가 줄어드는지 박 팀장은 대충 계산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이유는요?"

"예산 재편이래요. ESG 쪽 예산이 줄었다고."

"…전면 종료는 아니고요?"

"종료는 아니에요. 일단 30% 축소만. 더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고 했어요."

"어휴."

박 팀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종료라면 거기서 끊고 다음을 찾을 수 있었다. 축소는 모호한 형태였다. 끊지도 잡지도 못한 채로 회사가 그 관계를 매월 갖고 가야 했다. 박 팀장은 그 모호함이 종료보다 더 무거운 종류라는 걸 알았다. 이 대표도 알 거였다.

이 대표도 더 말하지 않았다. 둘은 커피를 들고 사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박 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라떼가 따뜻했다. 월요일 오후에 라떼가 따뜻한 건 다행이었다.

"박 팀장님." 이 대표가 말했다.

"네."

"이 소식은 저랑 박 팀장님만 아는 걸로 해 두죠. 회사에 공유는 제가 정리해서 다음 주 미팅 때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박 팀장님한테 먼저 말씀드리게 돼서 미안해요."

박 팀장은 잠깐 이 대표를 봤다.

"미안할 일이 아니에요, 대표님."

"그래요?"

"네. 팀장이 이런 거 먼저 아는 게 맞죠. 모르면 제가 일을 못 해요."

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가 바뀌었다. 둘은 건너갔다. 건너가면서 박 팀장은 이 대표의 옆모습을 잠깐 봤다. 이 대표는 평소보다 눈 밑이 더 어두웠다. 박 팀장은 그걸 봤고, 그걸 보고 있다는 걸 이 대표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시선을 빨리 다른 데로 돌렸다.


저녁 7시, 박 팀장은 퇴근했다. 이 대표는 아직 사무실에 있었다. 박 팀장은 "대표님, 저 먼저 들어갑니다"라고 했고, 이 대표는 "네, 조심히 가세요"라고 했다. 박 팀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집에 가는 길에 박 팀장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저녁 드셨어요?"

"응, 먹었지. 너는?"

"저는 조금 있다 집에서 먹으려고요."

"아유, 또 늦게 먹는구나."

"네, 뭐. 회사 바빠서요."

"몸 상해, 정우야."

박 팀장은 웃었다. 어머니는 항상 박 팀장에게 몸 상한다고 하셨다. 박 팀장은 그 말을 듣는 게 좋았다. 듣는 게 좋은 잔소리도 있었다.

"엄마, 약은 잘 드세요?"

"응, 잘 먹고 있어."

"아프시면 꼭 얘기하세요. 제가 병원 같이 갈게요."

"아들 바쁜데 됐어. 혼자 갈 수 있어."

"바빠도 같이 가요, 엄마."

박 팀장은 차에서 그 말을 하면서 잠깐 자기 목소리가 낯설었다. '바빠도 같이 가요.' 박 팀장이 이 말을 하면서 서준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준이는 박 팀장의 아이가 아니라 이 대표의 아이였다. 박 팀장은 서준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회식 자리에서 이 대표가 서준이 얘기를 했었다. "서준이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바빠도 만나야 해, 아빠. 지금부터 안 만나면 나중엔 더 못 만나.'" 이 대표는 그 얘기를 하면서 웃었다. 박 팀장은 그 얘기를 잊고 있었는데, 지금 자기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8살이 한 말이 박 팀장의 40대 입을 통해 박 팀장의 어머니에게 가고 있었다. 이 대표의 아이가 박 팀장에게 말을 빌려준 거였다. 박 팀장은 그게 어떤 고리로 연결된 건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그래, 담에 같이 가자."

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박 팀장은 핸드폰을 조수석에 내려놓고 운전을 계속했다. 운전하면서 박 팀장은 오늘 낮에 이 대표에게서 들은 중부발전 얘기를 다시 생각했다. 숫자로 계산하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박 팀장의 마음에 더 오래 남은 건 숫자가 아니었다. '박 팀장님한테 먼저 말씀드리게 돼서 미안해요.' 이 대표가 한 그 말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 대표는 이런 소식을 박 팀장에게 늦게 공유했을 거였다. 혼자 며칠 껴안고 있다가, 이미 결정이 다 끝난 뒤에 통보했을 거였다. 오늘은 달랐다. 이 대표는 소식을 듣자마자 박 팀장과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커피 한 잔 사이에 소식을 공유했다. 그게 회사의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는 걸 이 대표가 뒤늦게 배우고 있었다. 박 팀장은 그걸 느꼈다.

이 대표가 배우고 있다는 게 박 팀장에게는 안도였다. 4년 만의 안도였다.


집에 도착한 건 8시였다. 박 팀장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왔어요"라고 했다. 아내가 부엌에서 "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먼저 아이들 옆에 앉아서 숙제를 잠깐 봐주고, 그 다음에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앞에 앉았다.

"엄마랑 통화했어?" 아내가 물었다.

"응, 차에서. 별일 없으시대."

"다행이다."

"당신은 오늘 어땠어?"

"나 오늘 클라이언트 하나 새로 잡았어."

"정말?"

"응, 소개로 들어왔어. 작은 건이긴 한데 단가는 괜찮아."

박 팀장은 웃었다. 아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게 2년 전이었다. 처음엔 일감이 별로 없었다. 최근에 조금씩 늘고 있었다. 아내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면 박 팀장도 집안일을 더 많이 하게 될 거였다. 박 팀장은 그게 괜찮았다. 아내가 일을 하는 걸 박 팀장은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박 팀장은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과 30분 정도 레고를 맞췄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한 권 읽어줬다. 10시쯤 아이들이 잠들었다. 박 팀장은 거실에 나와서 아내 옆에 앉아 TV를 봤다. 별 생각 없이 틀어놓은 예능이었다. 아내가 박 팀장 쪽으로 기댔다. 박 팀장은 아내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었다.

"정우야, 요즘 회사 어때?"

"그냥, 뭐. 어려운 건 많은데 할 만해."

"당신 대표님은 어떠셔?"

"…많이 힘드신 것 같아."

"그래?"

"응. 근데 요즘 조금 달라지시긴 했어. 예전보다는 사람한테 기대시는 게 늘어서. 그게 나한텐 다행이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거기 있어서 대표님이 버티시는 것 같아."

박 팀장은 그 말에 대답을 곧바로 못 했다. 이런 말을 집에서 듣는 건 가끔 있는 일이었다. 박 팀장의 아내는 박 팀장을 좋게 평가해 주는 사람이었다. 박 팀장은 그 평가를 받을 때마다 어색했다. 자기가 그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박 팀장은 잘 몰랐다.

"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표님이 원래 버티는 사람이야."

"근데 버티는 사람도 옆에 사람이 있어야 버티지."

박 팀장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아내는 더 말하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박 팀장은 TV 화면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오늘 이 대표가 받은 소식, 박 팀장 자신이 받은 이직 제안들, 어머니의 위, 아이들의 숙제, 아내의 새 클라이언트, 그리고 '옆에 사람이 있어야 버티지'라는 아내의 말. 이 모든 것들이 박 팀장의 머릿속에서 느슨하게 섞이고 있었다. 딱히 결론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월요일 밤이었고, 내일 또 출근해야 했다. 결론을 안 내려도 내일은 왔다.

박 팀장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카톡을 한 번 열어봤다. 회사 메신저도 한 번 열었다. 이 대표는 아직 회사에 있는 것 같았다. 박 팀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이 대표 이름을 보다가, 자기가 45살이라는 것과 이 대표가 44살이라는 것을 잠깐 떠올렸다. 한 살 차이의 두 남자였다. 한국 사회에서 44살은 회사를 잃고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45살이 더 어려웠다. 박 팀장이 4년 전에 이 회사로 옮겨 올 때 박 팀장 자신도 그 사실을 잠깐 의식했었다. 그땐 막 41살이었고, 더 늦으면 옮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만약 박 팀장이 이 회사를 떠난다 해도, 옮길 곳은 줄어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회사에 묶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갈 곳이 많지 않은 나이였다. 박 팀장은 이 사실을 이 대표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말하면 이 대표가 또 무거워질 거였다.

박 팀장은 메시지를 보냈다.

대표님,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내일 뵙겠습니다.


이 대표는 5분쯤 뒤에 답장을 보냈다.

네, 박 팀장님.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셨죠?
네, 잘 들어왔습니다. 대표님도 일찍 들어가세요.


이 대표는 더 답하지 않았다. 박 팀장은 핸드폰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고 누웠다. 천장이 어두웠다. 아내의 숨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박 팀장은 그 숨소리 옆에서 눈을 감았다.

이 대표도 오늘 밤 어딘가의 천장을 보고 있을 거였다. 박 팀장은 그 생각을 잠깐 하다가, 자기가 이 대표의 밤까지 짊어지면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그 생각을 놓았다. 박 팀장의 하루는 여기서 끝났다. 이 대표의 하루는 이 대표의 것이었다. 각자의 하루가 각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박 팀장에게는 하루를 마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박 팀장은 잠들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14장. 지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