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도 짧지도 않은 지난 6년간의 마케터 경험을 돌이켜보며.
이번엔 목이 망가졌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명은 급성 추간판 탈출증. 흔히 목 디스크라고 부른다.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던 중학생 시절 이후 오랜 시간 허리 통증으로 고생해온 나에게 이번엔 '목 디스크'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가 찾아왔다. 하하하. 초월의 웃음. 하긴 허리와 목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지만. 솔직히 충격적이다.
그렇게 '툭' 튀어나온 디스크를 축소시키는 고주파 시술을 받고 재활을 위해 휴직계를 냈다.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자세가 있었으니 바로 장시간 오래 앉아있는 것! 모든 사무직이 그렇지만 끈덕지게 앉아서 업무를 해야 하는 - 특히 업무 강도가 결코 낮지 않은 '마케터'로서의 삶을 이 몸뚱이로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과 자신 없는 생각들이 물 밀려오듯 드는 요즘이다. 한편으론 마케팅을 '업'으로 삶아왔던 지난 무모한(?) 결정과 6년 동안 배운 것에 대한 뿌듯함 또한 밀려온다. 마케팅을 더 배우고 싶다며 대한민국 1%만 다닌다는 소위 대기업을 뛰쳐나와 마케팅 에이전시 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배우고 일했던 시간들이 뇌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를 '마케팅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히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임 푸어(Time Poor) 삶을 살다가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된 일상의 한 찰나, 문득 주말이면 뻗어 있느라 손 놓고 있었던 브런치 페이지가 생각났다. 그렇게 마케팅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며 배운 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해보면 좋겠다 싶어 노트북을 펼쳤다. 물론 내 허리와 목이 허락하는 선에서.
먼저 '마케팅'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대학시절부터 수많은 마케팅 강연과 책을 읽어보았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정의는 이것이 아닌가 한다. 마케팅이란 '마켓(Market)' + '잉(~ing)'이 합쳐진 말로,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시장(Market)에 판매하기 위한 모든 활동(Ing)을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직관적이면서도 마케터로서 가장 와닿는 설명이었다. 마케팅은 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기에 단순히 TV광고나 온라인 광고만을 집행하는 것도, 유통채널을 뚫고 관리하는 것만도 상품기획에만 국한하는 것도 아닌 그 모든 것을 하는 일. 그것이 바로 마케팅이라는 점. 그 모든 일을 해내기에 - 대기업과 같이 업무가 분화되어 있는 경우 해당 일을 하는 유관부서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 마케터는 참으로 바쁠 수 밖엔 없는 직업이라는 점이 나를 위로한다.
이 정의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의미를 뽑아낼 수 있다. 첫 번째는 앞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를 시장 판매하기 위한 모든 활동들이 마케팅 활동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각 회사별로 마케팅 부서/팀이 하는 업무가 다르게 분화되어 있지만 마케팅을 크게 본다면 상품기획부터 홍보, 판매촉진, 유통관리, 고객 서비스(C/S) 심지어 영업관리까지 모두 관여한다고 봐야 한다.
두 번째는 시장을 형성하는 모든 것은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물건에서 나아가 무형의 서비스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개개인 또한 마케팅 대상이다. 우리 개개인 또한 '인력시장'에 속해있지 않은가. 이는 '펄스널 마케팅(Personal Marketing)'이라는 식상한 마케팅 용어로 화두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한 개인이 가진 강점과 특징을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자신이 어떤 강점과 장점, 약점, 특징을 가진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그다음부터는 마케팅 능력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케터만이 마케팅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과감히 던져버려야 하지 않을까? 마케팅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적인 상식이 돼버렸다.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스왓(SWOT)*과 같은 식상 하지만 막상 해보려고 하면 어려운 마케팅 기법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분석도구'인데, 여러 가지 다양한 기법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일반 사람들도 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도구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TPO'를 추천하고 싶다. TPO란 Time(시간)과 Place(장소), Occassion(상황)의 약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타겟 소비자에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마케팅 기법을 일컫는다.
* SWOT : SWOT은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로 경영,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분석 도구이다.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내가 타겟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전달했는가'가 관건이다. 결국 마케팅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직결되는데,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이기 때문이다.
먼저 시간은 '언제(When)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친구가 이성친구와 헤어져 슬퍼하고 있을 때 연말 인센티브를 받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약간의 '눈치'가 있다면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려하기 용이하다. 좀 더 나아가 이 시간 개념을 시즌이나 계절로 확장시키면 더욱 좋겠다. 만약 어떤 사람이 스노우보드를 잘 탄다면 그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시점은 여름이 아닌 겨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 장소를 이야기할 때 흔히 오프라인 공간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개념을 좀 더 넓혀서 '어떤 수단'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즉 채널(Channel)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한 여성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할 때 이쁜 카페에서 할 수도 있지만 늦은 밤 전화 상으로 할 수도 있다. 또한 아날로그 감수성을 더해 이쁜 편지를 쓸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그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찾는 것. 그것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기본적인 소양이다.
마지막으로 Occassion, 상황인데 마케팅 용어로 '모먼트(Moment)'라고 표현한다. 이는 구체적인 상황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하고 들어오셔서 기분이 좋을 때 평소 사고 싶은 노트북을 얘기하면 그 노트북을 얻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원리다. 사소한 예이지만 '내가 어떤 순간을 활용해서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를 고려한다면 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이라고 하면 쉽게 무엇을 포장하거나 계속적으로 이야기하고 보완하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케팅이 정수는 바로 '내려놓음'이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이처럼 잘 버리는 것 또한 마케팅 관점에서는 중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이 가진 크고 작은 장점과 특징들 속에서 '이것만큼은 반드시 확실하다'라고 생각되는 딱 한 가지. 혹은 두세 개의 핵심을 뽑아내는 능력은 어떤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다만 이 핵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하자.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강점이 변하기도 하고 좀 더 심화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혹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피력해야 할 핵심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회사 면접관들에게 게임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문제 해결 능력이 좋다고 피력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핵심을 뽑아내고 버릴 것들은 과감히 포기하는 능력 또한 오늘날 누구에게나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지금까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마케팅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되는 접근방식으로 '가치 전달' 기법이 있다. 가치 전달(Value-proposition) 방식은 최근 마케팅 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개념 중 하나이다. 5C* 마케팅 전략에서 언급되는 가치 전달방법은 특정 대상이나 브랜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 5C :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5가지 핵심 요소로, 콘텐츠(Contents), 가치(Cost of Value), 고객(Consumer), 소통(Community) 그리고 채널(Channel)을 일컫는다.
'진정 용기 있는 자는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힘든 사회생활을 이겨낼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문구인데 결국 '가치 전달의 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경쟁자를 공격하거나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를 용기 있게 말하는 것 - 그 용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가치를 따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A라는 제품보다 B라는 제품이 더 저렴해서 혹은 양이 더 많아서 구매하는 것이 아닌, B가 추구하는 가치가 좋아서 그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경쟁의 논리를 철저히 붕괴시킨다.
'나'라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마케터로서 6년. 그다음은?
6년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배운 건 세상에 수많은 마케팅 기법과 방법들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탄생하기 때문에 '마케팅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마케팅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변화무쌍한 마케팅 덕분에 내 가슴이 뛰고 끊임없이 배우는 태도가 나온 것은 아닐는지.
디스크 덕분에 쉬어가는 이 시간 - 6년이란 시간처럼 내 인생에서 어찌 보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 마케터로서 일을 계속 이어나갈지 혹은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마케팅을 토대로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이야기]라는 주제로 브런치북을 발행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케팅이기에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마케팅 개념을 알아가는 접근방식이다. 물론 마케팅은 아니지만 뜨문뜨문 드는 잡생각도 이 곳에서 적어 내려 갈 예정이다.
마케터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마케팅의 개념들을 하나씩 익혀보고 그것들을 자신의 일상 속에서 이해해보는 울림이 있다면 글 쓰는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다음 주부터 매주 금요일 1회 총 20회 분량으로 준비 중이다. 10편의 주제가 별 탈 없이 나와야 할 텐데. 일단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걸로. 원래 시작이 반이니까.
물론 모든 글은 내 허리와 목이 허락하는 선에서. 여러분들도 건강관리 잘하세요 특히 마케터분들. 토닥토닥.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브런치북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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