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아. 대한민국 사회가 연애를 강요한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나요? 회사에서 왜 연애 안 하냐고 물어보거든요."
"그건 너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란다. 선영이에 대한 선배들의 [관심]이지."
마케팅 수업을 듣는 선영이가 마케팅하고 싶은 예시 콘텐츠로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를 가져왔다. 선영이는 왜 이 콘텐츠를 마케팅하고 싶어 할까. 콘텐츠의 제목이나 내용이 선영이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투영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특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를 담아낸다. 콘텐츠와 함께 울기도, 웃기도 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다.
'콘텐츠(Content)'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한 편의 정갈한 시(Poet)도 콘텐츠에 해당하지만 2~3시간짜리 영화(Movie)도 하나의 콘텐츠다. 종이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는 책도 콘텐츠이지만 핸드폰으로 시청하는 웹툰도, 전시회에 설치된 작품도 하나의 콘텐츠다. 또한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특정 주제의 내용을 콘텐츠라고도 표현하기도 하고, 최종 산출물 그 자체를 콘텐츠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번 글에서 필자가 이야기하는 콘텐츠(Content)란, 마케터가 비즈니스 영역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수단과 활동으로 정의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마케터에게 콘텐츠는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힘이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상에 범람하는 영상 콘텐츠가 정보를 습득하는 주요 수단이 돼버린 21세기 대한민국 마케터에게 디지털 영상 콘텐츠를 빼놓고 마케팅을 논하긴 어렵다. 그만큼 디지털 영상 콘텐츠는 마케터에게 중요한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 콘텐츠 - 특히 영상 콘텐츠가 어떻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있을까? 그 힘의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
콘텐츠는 더 이상 소비(Consumption)하는 대상이 아니다. 소비의 개념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21세기 소비자는 콘텐츠와 동행(Company)하는 중이다. 콘텐츠와 저녁 여가시간을 보내며 출퇴근 시간마저 함께 한다. 콘텐츠의 위상은 소비 대상에서 나아가, 이제는 동반자(Company) 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콘텐츠가 사물 영역에서 사람의 역할까지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케팅 업계에서 흔히 짧은 형태(Short-formed)의 콘텐츠를 '스낵 콘텐츠(Snack Content)'라고 이야기한다. 과자처럼 즐겁게, 손쉽게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반자 위치의 콘텐츠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볼 수 있을까? 필자는 '버디 콘텐츠(Buddy Content)'라고 정의해보고자 한다. 버디(Buddy)는 '가까운 친구'를 의미하는 단어로, 인간의 관계대상이 사물 영역인 콘텐츠까지 확장되었음을 잘 표현해준다. 일례로 방 안에서 허공에 혼자 허우적거리며 증강현실(VR, Virtual Reality)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불금인데 집에 가서 혼자 넷플릭스나 보다가 자야겠다.'라는 말이 크게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21세기 우상은 디지털 미디어, 바로 콘텐츠가 아닐지.
이처럼 콘텐츠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마케터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생겼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메시지가 [콘텐츠] 형태 - 디지털 채널에 존재하고 한 편의 스토리라인을 가졌으며, 시청각 소스를 가져야 하는 조건들이 생긴 것이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콘텐츠 포맷이 아니면 올드한 마케팅 방식이 돼버린 마케팅의 현실 - 사실 이것은 마케터에게 실존적인 도전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메시지를 영상과 같은 형태로 제작하기 위해 적어도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큰 제작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동일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현저히 높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것은 마케팅 자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콘텐츠 마케팅'이, 현재 다양한 마케팅 방식 중 하나의 세부항목으로만 여겨지고 있어 아쉽다. 콘텐츠 마케팅 - 이것은 마케팅 구조 자체의 총제적 변화를 의미하며, 비용이 크기 때문에 콘텐츠 자체가 구매를 일으킬 파워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마케팅 패러다임은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
마케터로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는 예시로 유튜브 플랫폼을 하나의 검색엔진으로 사용하는 소비자 현상이 있다. 더 이상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이 21세기 소비자에게 정보를 습득하는 핵심 미디어가 아니다. 21세기 마케터에게 영상 콘텐츠란, 브랜드와 제품의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기본적인 매체라는 인식의 변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영상 콘텐츠는 높은 콘텐츠 기획력과 제작능력,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필요하다. 좋은 영상 콘텐츠는 소비자들이 찾아와서 끝까지 시청하며, 공유하는 등 소비자의 적극적인 반응과 참여를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콘텐츠는 더 나아가 구매를 일으킬 만큼 강력한 동력을 발생시킬 수 있을까?
앞서 콘텐츠를 동반자(Company) 위상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콘텐츠에 반응하고 참여함으로써 선호도를 표현하며 콘텐츠에 참여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함께하고 싶은 것과 같다. 특히 인플로언서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감도를 보이는데, 콘텐츠 속에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좋아요]를 누르거나 [채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콘텐츠 속 사람과 소통한다. 시청자는 궁극적으로 [후원]이라는 기능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강력한 지지자가 된다.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흥미롭게도 유튜브, 트위치 등 콘텐츠 플랫폼이 가져가는 중간 수수료가 아까워서 계좌번호를 통해 직접 후원을 하기도 한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돈을 콘텐츠와 크리에이터에게 투자하는 행위 - 이는 콘텐츠가 소비자의 자발적 소비, 구매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플로언서가 견인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이다. 소비자는 인플로언서에 대한 선호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하는데 적극적이다. 이 과정에서 제품에 대한 정보와 퀄리티를 인플로언서에게 의존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크리에이터는 자신이 홍보하는 제품에 대해 더욱 철저한 검열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이다. 만약 특정 브랜드나 제품과 제휴를 했다면, 제휴 사실을 소비자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제품에 대한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마케팅 효과가 좋다. 마케터 역시 자신이 의도하는 효과를 조금은 내려놓고, 오히려 제품이 자연스럽게 콘텐츠 안에 녹아드는 관점을 취해야 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좋은 제품을 직접 엄선하거나, 제휴하는 것 - 이를 통해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발견하고 구매하는 프로세스는 기존 마케팅 구매 프로세스와는 전혀 메커니즘으로 21세기 마케팅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케터로서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한 회사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마케팅을 '열심히' 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사고 전환이었다. 하지만 내가 마케팅을 과연 즐겨낼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내린 결론은 즐기는 수준까진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력하는 마케터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몇 년 후 마케팅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회사 대표님께서 '너는 마케팅 천재야'라며 인정해주셨고, 스스로 마케터라는 정체성을 가질 만큼 충분한 수준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즐기진 못한다.
이 명언이 보다 강력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콘텐츠 생태계를 구성하는 원동력은, 바로 '내가 전심으로 좋아하는 것'에 있다. 그 속에는 순수함과 열정이 있다. 이로써 자연스럽고 지속적인 꾸준함이 생긴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로 담겨 콘텐츠가 된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유투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순수하고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겠다.
덕후, 덕질 문화가 콘텐츠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순수한 덕후의 모습이 결국 자신만의 콘텐츠로 표현되고, 그것이 결국 돈과 결합하여 나오는 덕질이 된다. 그렇게 덕후와 덕질이 콘텐츠 시장이 형성하며 선순환하며 확장하게 된다. 일례로 콘텐츠가 제품과 결합하는 것이 굿즈 마케팅(Goods Marketing)인데, 콘텐츠의 힘이 강력하면 굿즈를 통한 수익도 함께 커지게 된다.
마케터에게는 자신의 브랜드와 결이 잘 맞는 콘텐츠와 제휴함으로써 브랜드의 신선도를 높이고 소비자의 참여를 단시간에 높일 수 있다. 다만 브랜드 레거시와 결이 잘 맞고 어울리는 콘텐츠와 제휴하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이벤트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특히 마케터가 제휴 콘텐츠를 기획할 경우,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콘텐츠 채널과 제휴하는 방법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단체나 기관의 행사와 같은 오프라인 경험 콘텐츠와도 제휴할 수 있으며, 그 행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구매를 유도하고 마케팅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까지 개념을 넓혀서 제휴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팅 수업 마지막 날이자, 그간 준비해왔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주입식 수업방식이 아니기에 직접 프로젝트 주제를 선정하고 수행하는 5 주간 내내 고통스러웠다고 소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니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발표 내용은 너무 훌륭했고 기대 이상이었다. 5주간 작지만 또 하나의 도약을 해낸 선영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피드백과 질문 뒤에 흐뭇한 미소를 숨길 순 없었다.
발표가 끝난 후. 수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콘텐츠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는 사실 - 제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사고방식이 결정될 수 있기에 시청사의 사고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위험 또한 존재한다고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즐기지는 못하겠지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하게 될 물음 - 나는 어떤 콘텐츠 마케터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기에.
나는 마케팅이라는 광활한 대지에서 비상하는 선영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한 명의 콘텐츠 마케터를 보고 싶다.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이야기> 브런치 매거진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 정기칼럼으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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