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내 삶의 뿌리를 찾아서
누구나 삶에서 고난의 시즌들을 통과한다. 그때마다 떠올리는 생각습관이 있는데 [나]라는 존재를 시계열 상으로 또 공간상으로 놓고 조감(Birdview) 해 보는 것이다. 2025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멀리 - 인류가 처음 존재한 때까지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인간의 일상이 [생존]에만 맞춰져 있는 그 먹먹한 때 만약 내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공간으로 생각을 이어가 본다.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끝까지 빛이 도달하려면 465억 년이 걸린다고 한다.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한계를 너머 [코스모스] 우주 속에 나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 [태양계]에 살고 있으며 태양계 중에서도 [지구] 행성 속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서울]이라는 도시, 바로 지금 내가 있다. 우주 속 먼지처럼 작은 존재의 내가, 바로 지금 여기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두 차원의 생각 끝에 어느덧 마법이 펼쳐진다. 문제 속에 갇혀버렸던 답답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내면 깊은 속에서부터 평온한 날숨이 흘러나온다.
한 해의 계획을 다양하게 적어 보는 여느 연초와 달리 올해는 그 어떤 계획도 쉽게 세울 수가 없었다. 대신 각 영역별 다양한 전망과 예상 시나리오를 최대로 수집하려고 애썼다. 어떤 것도 쉽게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동성 높은 한 해가 될 것은 자명했다.
지구촌 국제 정세가 이렇게까지 개인의 삶에 체감되는 시절이 있었던가! 양상추와 사과 등 몇 개 제대로 넣지 않은 장바구니 물가 속에 전 세계 전쟁 소식들이 체감된다. 높은 금리와 환율, 저조한 소비심리는 거리마다 자영업자들의 걱정으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미룬 채 올해를 인내하며 버틸 예정이라고 한다.
트럼프 2기가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한 관세정책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중 패권전쟁 속 동아시아 대한민국은 평화공존의 [린치핀]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2025년 비바람을 잘 이겨내고 선진국 대열에서 지금의 위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각 영역에서 어떤 전략들이 준비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저출산•고령화 인구 소멸의 위기와 잃어버린 경제발전 모멘텀의 늪에서 장기침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닐지. 2025년 대한민국은 분명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답답하고 막막한 생각의 끝엔 또다시 지금 여기 내가 서있다.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맥락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다면 자연의 섭리 속에 숨겨진 다양한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수경 재배법을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식물을 볼 때 화려한 꽃이나 달콤한 열매에 주목한다. 그러나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시선은 바로 [뿌리]에 있다. 뿌리가 흙에 잘 내려져야만 계속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도나 습도, 일조량 같은 [환경] 도 중요하다. 오히려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는 더 중요하다. 수경재배 방식은 흙으로 덮여 잘 보이지 않던 뿌리 - 그 생명력의 원천을 매일매일 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이 있다.
가뭄이 들거나 비바람을 이겨낼 때 뿌리는 더 깊이 뻗어 내려간다. 산에서 마주하는 나무들의 뿌리를 본 적이 있는가. 실내에서 키우는 작은 식물들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나무 기둥만큼이나 두껍고 단단해서 흙 밖으로까지 뻗은 뿌리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식물의 뿌리를 보면서 우리는 [고난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삶이 안정적이고 견고하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의 뿌리를 보라. 그곳에 그 사람의 생명력이 담겨있다.
2025년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를, 오히려 삶의 뿌리를 점검하는 시즌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2026년 이맘때쯤이면 소나무의 뿌리처럼 더욱 단단해진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와 삶에 있어서 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뿌리는 식물의 부분을 넘어 철학적, 사회적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기초를 의미하는 [근본, 기원]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집안이나 민족의 [혈통,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핵심이 되는 [기초, 기본]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인생의 뿌리라고 정해야 할까? 물론 사람마다 다양하게 삶의 뿌리를 정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크게 3가지 개념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먼저 부모님이나 가족, 혈통이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삶의 근원, 뿌리가 될 수 있다. 언제나 자녀 걱정에 열성인 한국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현재 부모님과 화목한 관계가 아닐 수 있다. 혹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이 안 계신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은 관계가 끊어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가정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관계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삶을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한 명의 남성 그리고 여성으로 이해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로 인해 우리 가정과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해 보는 것이다. 때로는 용서가 필요할 수도 있다. 힘들지만 반드시 소화해야 하는 이 과정을 통해, 독립된 자아로서 자신을 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생명을 유지하는 기초 움직임 [호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인 근육이 바로 호흡근이다. 무의식적인 긴장과 불안이 높은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호흡은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에 묶여있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 인간에게, 호흡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해주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호흡은 살아있는 나를 내가 만나는 존재적 행위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지금 여기 살아서 생명을 이어가는 호흡으로부터 출발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근원 [두번째 이야기 :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사소한 일상]이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