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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Aug 04. 2024

끝을 향해

너무 쉬운 시작, 빨리 타버리는 열정, 끝을 만나지 못한 시작의 흔적들, 제게는 이런 것들이 일상을 무겁게 하는 요소들로 남곤 합니다. 사실 전 올 사월부터 책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옮겨 보기로 했어요. 매일 아홉 문단만 쓰자며 시작한 초고는 아직도 진행 중이죠.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쳐 아홉 문단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책 쓰는 일이 왜 어렵다고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두 달여를 속에 있는 말들, 쓰고 싶은 말들을 다 꺼내 두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가만히 앉아 써 놓은 글을 읽었죠. 형태가 모호한 문장들이 주절거림으로 앉아 있는 것만 같았어요. 어떻하면 좋을까? 하다가 꺼내고 싶은 말이 남지 않을 때까지 다 꺼내보기로 했습니다. 글이 막히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주절거리고 싶은 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잠시 멈췄습니다. 아홉 문단의 매일을 말이죠.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늦 봄을 지나 한 여름을 보내고 있네요. 초고는 잠시 접어두었어요. 저녁 비행기로 홍콩 가는 일정이 있던 7월 30일. 공항으로 출근하는 버스 안, 런던 기온이 30도를 넘는 오후였습니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버스는 죽을 맛이었죠. 두꺼운 천으로 된 의자에 앉아 땀을 삐질 삐질 흘리는 동안 그 더위를 잊을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무작정 핸드폰을 꺼내 들어 초고의 목차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집중하다 보니 버스 안에서 더위 때문에 느껴졌던 불편한 요소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출근길 오후 시간, 그렇게 완성된 목차를 팔 월에는 써보자 했어요. 끝을 만나러 가는 길,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그렇게 선물하기로 한거죠. 뿌리 뽑는다는 말이 있죠. 책 쓰는 일은 제게 어느 순간부터 뿌리 뽑는 일이 되어 버렸어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일들의 뿌리. 주변 사람들이 자주 묻습니다. "책은 다 썼어?"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널리 널리 알렸죠. 혼자 하는 시작은 자취를 감추기 쉬운 일이니까요. 유치하지만 어쩔 수 없죠. 쨘, 하고 어른스럽게 자신이 한 일의 결과만 보여주면 멋있겠지만 제게는 끝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한 걸 어쩌겠어요. 글 쓰는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모르겠습니다. 긴 시간 하나에 매달려 힘을 쏟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요. 열정을 길게 태우며 아주 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반짝이는 여름을 창 밖으로 바라봅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지는 해를 등에 업고 남은 햇살을 부수는 나뭇잎을 감상하죠. 일상이 문장으로 흐르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글을 쓰며 끝과 시작이 함께하는 일들을 더 채우려 해 봅니다. 오늘도 아홉 문단을 써 두고, 책을 읽고, 이렇게 수다를 나눕니다. 이 여름을 기억할 때 창 밖 너머 흔들리는 나뭇잎을 떠올릴 거예요. 그때는 꼭 끝도 함께 거기에 있었으면 해요. 저녁 7시 30분 한낮의 열기가 아직 남은 저녁, 시작의 아름다움은 끝과 함께라는 걸 창 밖 너머 흔들리는 나뭇잎에게도 말해봅니다, 괜히. 


토요일의 수다는 초고가 완성되면 다시 시작할게요.

그 때면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겠죠.

너무 길지 않게 있다 올게요.


그럼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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