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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Jul 14. 2024

하루 늦은 약속

하지 않는 것보다 늦어도 하는 게 낫다. 지난주부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앞에 두고 기분이 무척 처졌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이 철렁하고,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기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여느 날처럼 달리기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신이 나지 않았습니다. 축 쳐진 몸으로 침대에서 늘어지는 시간이 길어졌지요. 이런 기분에 사로잡혀 영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들었구요. 이건 다 그 하고 싶지 않은 일 때문이라며 탓을 해보지만, 결국 지난 반 년동안 목표한 일을 향해 달리던 날들 속 나도 모르게 쌓였던 피로감과 압박감이 축적되어 나타난 감정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조금만 쉬어가자 하고는 손을 털썩 놓아두고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있자니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세상이 나를 두고 혼자만 흘러가는구나. 야속한 것!" 유치하죠?


이런 무기력한 마음이 들면 해 오던 일들이 빛을 잃기 시작해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렇게 시작된 말들 속 걸어온 발걸음은 타버린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립니다. "아, 허무해라." 텅 빈 말들이 제 머릿속을 점녕하기 시작하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패잔병이 되어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죠. 지난 열 흘, 이게 딱 제 모습입니다. 되려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일들이 있잖아요. 전 이런 약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걸 싫어해요. 친구들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죠. 이런 건 혼자만 아는 말들로 남겨둬도 충분하다며 말입니다. 하지만 때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배워요. 컴퓨터 한편에 매일 켜져 있는 워드 문서 하나, 거기에는 하루 지난 오늘이 빼곡하게 담겼습니다. 그 일기 속 담긴 일상에는 흐물어지고, 일어나고, 휩쓸리고, 다시 일어난 폭풍 같은 시간들로 가득합니다. 


토요일 수다를 한 주 더 미루자 했어요. 어제는 세상이 온통 깜깜했거든요. 토요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까지 담겨 약하게 남아 흔들리던 불빛마저 꺼져버렸습니다. 허리가 아플 만큼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시간을 박차고 일어났어요. "하루 늦은 약속도 괜찮을까?" 양치를 하는데 갑자기 포옥하고 글이 쓰고 싶어 집니다. 아, 모든 게 핑계고 변명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셨나요? 하루 늦은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다 타이밍이라고 하잖아요. 이 또한 빛을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 남을지 모를 일이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다 잠시 쓰러져 무력해진 순간을 넘어서려는 한 사람의 모습에 담긴 그 고군분투 이야기만은 하루 늦은 약속이더라도 꽤 괜찮겠다 싶어집니다. 하고 싶은 일들에 더 집중하며 다시 대차게 달려보려구요. 넘어져도 괜찮다는 걸, 하루 늦은 약속이라도 지키는 게 낫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여기까지예요,

오늘은.

일요일 수다였습니다.

잘 지내다 만나요.

저도 잘 있다 올게요.


그럼 by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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