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라희 Jun 01. 2024

별 것 없는 것의 별 것

공감 에세이

서울에서도 여전히 스타벅스에 와 앉았네요. 본가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 일터는 집에서 가까운 게 제일이라는 생각에 길게 앉아 끼적일 수 있는 만만한 장소로 향했습니다. 노트북 사용자들을 위한 긴 테이블 중앙으로 세워진 스탠드가 맘에 드네요. 무엇보다 테이블 모서리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팔을 걸쳐두고 쓰기 적당한 각도로 둥글려진 세심함에 감동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듯싶어요. 관심의 눈길로 바라보면 불편한 지점이 보이고 그 지점을 읽어 그 불편을 해소해 주면 되는 거니까요. 아, 잠시만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섣불렀네요. 그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정정해야겠어요. 관심을 가지려면 그곳에는 사랑의 마음과 눈길 그리고 진심이 머물러야 하는 거든요. 이건 보통 이상의 열정이 필요한 일이니 쉬운 건 아니네요.  


서울에서 쓰는 <오늘은 토요일이니까>는 색다릅니다. 런던에서 한글로 글을 쓸 때만큼 자유로운 순간이 없거든요. 어떤 글을 읽고 쓰는지 알 수 없는 다른 언어의 세계, 런던. 그곳에서는 한글이라면 저 멀리 서라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글자라도 상관없지요. 아주 사적인 일기가 가득한 다이어리도 떡 하니 펼쳐둘 만큼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사방에 두고 글을 쓰고 읽는 일이 서울에서는 조심스럽습니다. 전 글을 쓸 때 제목을 먼저 걸어두는 습관 같은 게 있어요. 이 글은 아직 제목을 적어두지 않았어요. 지나는 사람들이 크게 보이는 제목을 언뜻 보고 잠시라도 내리는 판단이 부담스럽거든요. 누구에게도 관심 없는 바쁜 도시, 서울에서 참 혼자 유난스럽네요.


런던과 서울에서의 제 모습은 사실 조금 달라요. 언어 탓도 있겠지만 문화가 달라지니 당연히 모든 면의 매무새 또한 그곳의 분위기를 따릅니다. 서울에서는 조심스럽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해요. 목소리가 올라가려 하면 '아차'하고 데시벨을 낮추고, 옷매무새 또한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죠. 런던에서는 그런 면에서 자유로워요. 화장, 옷 등 외적인 면의 데시벨은 낮추지만 표현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의 데시벨은 올라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죠. 긴장도는 반대로 흘러요. 서울에서 제 눈은 반쯤 풀린 상태 그러니까 편안함과 안정이 극대화된 상태로 움직입니다. 그야말로 모국어의 이점, 처음 하는 무엇이라도 긴장이 없는 상태죠. 런던살이 18년 차가 넘어가지만 어디를 가든 단도리하는 습관은 어쩔 수 없이 남아 흐릅니다. 그러니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안고 사는 게 익숙한 곳, 그게 런던이에요. 아, 어쩌다 보니 서울과 런던에서의 제 모습을 비교하는 글이 되어가네요. 이런 글도 읽을 재미가 있을까요? 


요즘 글 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은 시인, 영화감독, 수필가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신 한국분이세요. 이제 두 번 수업이 끝났는데, 한 시간 고농도의 수업이 끝내고 나면 멍하게 앉아 있습니다. 수업시간 동안 나누었던 말을 떠올리는 시간을 꼭 갖게 되죠. 글쓰기 수업은 처음이에요. 등록하기 전 굉장한 망설임이 있었어요. 일대일 글쓰기 과외 수업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일까? 수업이 과연 도움은 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쓴 글을 작가라 불리는 분에게 처음 내어 보이는 자리기도 해서 용기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첫 수업, 작가분의 눈빛과 말빛에 귀 기울이다 보니 잘했다 싶은 확신이 들었어요.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았지만 먼저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에는 커다란 힘이 있다는 걸 다시 느끼는 중입니다. 덕분에 휴가차 온 서울에서도 읽어야 할 책과 과제를 떠안기는 했지만 더 잘해보고 싶은 일, 글쓰기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 그 또한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고 싶어 집니다.


서울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 등산입니다. 의외일까요? 어제 그러니까 늦은 저녁 금요일에 도착해 짐을 풀고, 씻고, 특별할 것 없는 반찬과 식사를 간단히 한 후 깊은 잠에 빠졌죠. 시차 덕분에 일찍 눈 뜬 토요일 새벽, 따뜻한 차 한잔을 텀블러에 담아 산에 올랐습니다. 혼자는 아니고요, 엄마와 함께요. 운동은 매 주 하고 있지만 산을 오르는 움직임은 또 다릅니다. 산다람쥐처럼 걷는 엄마 뒤를 졸졸 따르며 숨을 헐떡이죠. 그러다 저 멀리 서울의 아파트 숲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닿으면 그제야 바위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엄마와 별 것 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차를 다 마셔갈 때즈음 내려갈 채비를 하죠. 산을 다 내려와 주택가가 나오면 갖가지 나물이 담백하게 담긴 보리밥 집이 나옵니다. 망설임 없이 그곳에 들러 한국식 브런치를 한 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요.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 주문해 둔 책을 꺼내 읽습니다. 


웃기게도 해외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이렇게 별 것 없는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도 별 것 없어요. 식사도, 술도 유난스럽지 않게 나누죠. 점점 더 별 것 없는 것들을 향해 별스럽게 다가갑니다. 이렇게 카페에 앉아 끼적이는 시간을 이어가며 런던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서울의 심심한 일상을 담아가죠. 외국에 살다 보면 그곳의 말과 문화에 적응하느라 자신이 가진 고유의 것들을 잃어가기 쉬워져요. 그럴 때면 전 서울에서 별스럽지 않게 했던 일들을 떠올립니다. 그 속에는 긴장의 끈을 풀어내고 나답게 보내는 시간이 숨어있거든요. 그 시간이 담아낸 말투, 표정, 취향 등을 따라가다 보면 타지 생활하며 잊기 쉬운 자신의 모습을 다시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것을 이어가며 서울과 런던의 시간 속에 새로운 나다움을 만들어가죠.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이 되는 순간, 이 또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일이네요. 아, Love wins all. 


토요일 조곤조곤 수다라지만 오늘은 유독 더 다양한 말들을 쏟았네요.

다음 주에는 좀 더 단정한 말을 데려올까 싶어요. (하지만 자신은 없습니다, 솔직히)

오늘은 여기까지에요.

날이 좋네요, 서울은.

예쁜 시간 보내다 다시 만나요.

안녕,











이전 07화 게으른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