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집안일에 정성을 기울여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지난 몇 달은 깔끔하게 집을 가꾸느라 정성을 쏟는 중이다. 매일 해도 끝이 없는 청소며 빨래는 물론 구석구석 필요 없는 물건들을 솎아내는 일까지 쉬엄쉬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설거지 사랑!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혹은 아침, 저녁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꼭 하는 일과인데, 하면 할수록 그 심심한 재미에 푸욱 빠진다. 얼마 전 주식하는 사람들끼리 쓴다는 '괜히 설거지하러 들어가지 말라'라는 말을 주어 들었다. 잔칫집 갈 때 시간을 잘못 맞춰 음식은 얼마 남지 않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냥 가기 미안하니 쌓인 설거지 도와주느라 허기진 배로 잔칫집을 나온다는 상황을 빗대어 쓰인 말이라며, 오를 대로 오른 주식에 괜히 들어갔다가 제대로 수익도 못 내고 손실만 내고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게 음식 찌꺼기 잔뜩 묻은 그릇을 씻어내는 허드렛일 설거지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친김에 근래에 좋아하게 된 설거지를 곰곰이 곱씹어 볼까 한다. 브라이튼 조이스 할머니의 설거지 방법에 기겁했던 기억이다. 할머니는 씻어야 할 모든 식기들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잔뜩 받아 세제를 푸시고는, 솔로 무심히 접시를 슬슬 문질러 닦으시더니 행주로 그것을 대강 훔쳐 내고는 그 접시를 건조대로 옮겨 놓으셨다. 접시에는 아직도 기름기가 미끄덩한데... 설거지를 마쳤다며 기분 좋아하시던 그 모습에 내심 당황했다. 며칠 뒤 아무리 생각해도 설거지는 내가 직접 하는 게 좋을 듯싶어 집에서 밥을 먹으면,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 자청했다. 그리고는 설거지할 기회가 생겨 내 방식대로 세제가 묻은 접시를 흐르는 물에 뽀독 뽀독 닦으며, '설거지는 이렇게 해야지.'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신 할머니께서는 물을 왜 그리 낭비하냐며 흐르는 물을 얼른 잠그셨다. 그 후로 할머니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나에게 설거지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다.
올리브 오일을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안 남편은 그만의 설거지 법이 있다. 아주 뜨거운 물은 그에게는 필수 요소다. 뜨거운 물을 싱크대에 받아 세제를 풀어 식기를 한참 동안 담가 두었다가 구석구석 닦아 내고는 이내 뜨거운 물로 다시 빡빡 헹구어낸다. 그래야 올리브기름이 다 닦여 나간단다.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드니, 그에게 설거지는 한껏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해치우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도 그의 손에서 닦여진 모든 식기들은 유별나게 반짝인다. 뽀독뽀독 깨끗하게 설거지해내는 그의 방법이 좋기는 하지만 마구잡이로 담가진 그릇을 꺼내어 씻느라 우당탕탕하는 사이 아끼는 접시나 그릇들의 이가 빠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있어 속이 상한 경우도 꽤나 자주 있다. 그의 정성이 고마워 그 방법에 대해 뭐라 하지는 않지만, 그 후로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 미리 말하는 날이면, 무거워도 투박하고 힘센 그릇들을 내어 식탁을 차리곤 한다. 사랑하는 접시와 그릇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나에게 설거지를 위해 꼭 필요한 장비는 바로 고무장갑이다. 아직 설거지의 고수가 되려면 멀었는지 음식물 찌꺼기나 기름기가 맨 손에 닿는 느낌까지 괜찮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표" 고무장갑을 꼭 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건조대에 접시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크기별로 접시를 세워두고, 잘 마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정성스레 그릇을 포개어 놓는다. 이러한 지속적 반복은 깔끔하게 잘 정리된 그릇들을 보며 만족하는 습관을 남겨 두었다. 고무장갑에 무엇이 닿아도 상관없으니 설거지하는 동안 깨끗하게 씻겨지는 그릇을 바라보며 내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무엇보다 그 시간동안 복잡하게 꼬인 문제나 생각을 꽤나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속 시끄런 마음을 엄한 그릇을 통해 풀어버리시던 엄마의 뒷모습이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은 자주 연출되었다. '아니 왜 일을 만들어서 할까, 그러지 않아도 머리 아플 텐데.' 깨끗하게 자리 잡은 그릇들이 주방에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날이면 그저 엄마가 또 무슨 근심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슬쩍 방으로 몸을 숨겼다. 그 주변을 배회하다 괜히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으니. 그리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을 지나고 보니 나도 하고 있다. 엉킬 대로 엉킨 생각의 실마리는 왜 설거지하는 동안 그리 잘 찾아지는지. 그리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장면을 나도 해가며, 주방도 정리하고 무거운 머릿속도 비워낸다. 커봐야 안다고 넘기던 엄마의 말씀이 때론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반복적인 일을 피할 길이 있을까? 한 때는 그 반복을 견디지 못해 '어딘가 이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 분명 있을 거야'하며 손에 잡히는 듯하면 사라지는 그것을 찾아 길게 배회하곤 했다. 커보면 안다던 그 말을 떠올리며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에 집중해 볼 수밖에 없는 일상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반복적 행위에 정성을 기울이고, 일상을 잘 가꾸다 보면 그 안에서 솟아나는 감정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건 행복이라기보다 충만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충만함에 집중하며 반복에 정성을 기울이는 게 건강한 일상이라는 걸 더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배회하던 젊은 날에 설거지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하는 허드레 일이었는데, 이젠 찬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듯 흐르는 물에 그릇을 씻어내며 사는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