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랑 그리고 미래
할배요~ 보소! 눈 온다~!
7년 만에 이사를 했다.
사정이 생겨 부모님 명의로 된 우리집에서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엄마는 내게 적당한 집을 찾아달라 부탁했고 리스트를 뽑아드렸다. 아파트로 가길 내심 바랐지만 엄마는 짐 때문에 평수가 더 넓은 주택을 선택했다.
주택에서 살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거의 유년시절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20년 전에 살았던 집이다. 아직도 그 집 풍경이 선명히 떠오른다. 집주인은 노부부였다.
검은색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감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감나무를 기준으로 우측에 우리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좌측으로는 잘 꾸며진 마당이 있는데 마당 구석구석 화초와 자그마한 나무들로 가득했다. 앞마당의 오른쪽 맨 구석엔 웅덩이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크고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엔 금붕어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
1층 주인댁 앞엔 발코니가 있었고 두 분이서 여유롭게 담소도 나누고 신문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의자도 놓여있었다. 그리고 발코니 안쪽 미닫이 창 너머엔 새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새장이 있었다.
동생과 나는 종종 자그마한 잎을 손에 가득 모아 2층 난간 앞에 서서 떨어뜨리며 놀기도 했고(그게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졌다.), 먹다가 나온 과일 씨앗들을 모아 땅에 심기도 했고, 주인댁이 키우는 새들이랑 새 알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자그마한 연못 앞에 쪼그려앉아 금붕어를 관찰하기도 했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키운 적이 있었는데 고 녀석이랑 1층에서 술래잡기를 하듯 뛰어놀기도 했었다. 환경이 좋아서인지 그 쬐끄만 녀석은 시뻘건 닭벼슬 그리고 장닭과 견줄만큼 굵직한 다리를 가지게... 사실 징그럽단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 집은 마치 도시 속에 숨겨진 자그마한 시골같았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동생이 책상서랍에서 찾았다며 눈스프레이를 보여줬고, 나는 잽싸게 낚아채 나오는지 확인 차 흔들어 뿌렸다.
"오오오! 나온다!"
두 작은 악마 같은 우리는 신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려다 마음을 바꾸고 이파리를 떨어뜨리며 노는 자리에 서서 스프레이를 뿌리려는데 때마침 주인할머니가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2층 난간에 기대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그녀가 발코니쪽에 있는지 확인했다. 할머니가 1층 발코니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서둘러 눈스프레이로 가짜 눈을 뿌려댔다.
"할배요~ 보소! 눈 온다!"
할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곤 몸을 숨겼다. 동생이 웃음을 참고 자기도 해보고 싶다며 눈스프레이를 달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열심히 흔들곤 그 걸 기꺼이 내어주었다. 동생도 열심히 눈을 만들었다.
우리는 들키지 않으려 숨었다가 살짝 고개를 내밀었는데 밖으로 나온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곧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할배요! 눈이 아니고 아~들이 장난한 거요."
우리는 할머니 근처로 다시 눈스프레이를 뿌려줬고, 그녀도 우리만큼이나 즐거워했다.
이번에 이사한 집은 1층이고 그 만큼 예쁜 마당도 없고 오래 살 계획도 없지만, 그래도 지내는 동안 무탈하게 또 20년 후에 떠올릴만 한 작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