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Y Sep 25. 2016

30살의 나

일상, 사랑 그리고 미래


  산책다운 산책



  여지껏 살아오면서 거리나 공원을 혼자서 한적하게 거니는 그런 산책다운 산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걷는 등의 산책이 아닌 진짜(?) 산책 말이다.


  토요일 한창 낮인데다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고싶진 않아 따뜻하게 옷을 챙겨입고 지도 한 장 들고 밖으로 나갔다.


  Cork에서 가장 큰 대학이 있는 방향으로 걷다가 넓은 풀밭이 있는 공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늘한 바람

  지저귀는 새 소리

  싱그러운 풀과 나무 냄새

  폐를 세척해내는 신선한 공기

   나는 평화롭게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연히 다리를 발견했다.

  다리 위로 조깅을 하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는데 다리 너머로 보이는 대저택 같은 건물에 홀리듯 걷다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걸음을 멈췄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소리에 내 안에 남아있는 소음들이 말끔히 씻겨내려 가는 기분이었다.


  다리 너머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왠지 사람도 잘 보이지않고 혼자가기 불안한 마음에 다음으로 기약하고 공원 밖으로 나갔다.


  다시 대학 쪽 방향으로 가다가 대머리아저씨와 그의 두 손을 나란히 잡은, 노란 우비를 입고 물통을 든 쌍둥이 꼬마형제를 보았다. 그들이 어디론가 들어갔는데 나는 거기에 또 다른 공원이 있는 걸 알았다.

뮤지엄이라고 되어있지만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탁 트인 이런 공간이 정말 마음에 든다.

  아까 간 공원보다 조금 더 볼거리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커다란 놀이터도 있는 곳이었다.

저 길을 지나면 작은 인공 호수와 분수대가 있다.
Boy with boat라고 새겨져있다.

  나는 소년조각상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두 장 정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보이는 인공 호수에서 청둥오리들을 보며 아이처럼 꽥꽥 오리소리도 냈다.

  그렇게 선비처럼 여유롭게 거닐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노부부와 그들의 손자로 보이는 황금빛 머리칼의 세살배기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까치발을 들고 소년조각이 있는 곳 앞에 서있었다. 나는 아이의 그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 보면서 지나갔는데 다시 보고픈 마음에 뒤돌아보니 아이가 걸어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노부부도 손자를 보고 또 날 보며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나도 크게 손을 흔들어줬다.


  아이가 날 착한사람으로 봐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장미꽃처럼 향기가 기가 막혔다. 어쩌면 장미일지도..

  지금 이 사진들을 다시 보며 떠올리니 혼자가 아니라 나도 이곳의 일부였고 이곳과 함께였다는 생각이 든다.


붉은 벤치

  하지만 내 사람과 함께 여기 오고싶다. 오늘 저녁엔 집 근처 펍에 가볼 생각이다. 거기서 만날 수 있으려나?

작가의 이전글 30살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