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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Feb 04. 2016

같은 곳, 다른 시간

하이델베르크에서 알찬 하루 

같은 공간이지만 시간이 다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제목이 같은 곳, 다른 시간인 이유는 하이델베르크에서의 겨울이 저번 여름과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예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나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을 보냈다. 저번 여름, 나는 매우 지치고 피곤한데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연히 호스텔에서 한국분을 만나 함께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왔다. 내 마음이 지치고 힘드니 모두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성에도 올라가고  노천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흔치 않은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지만 감동은커녕 내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에 따라 그곳이 어디든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힘든 순간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알찬 하루를 적어본다. 


첫 만남이 편안하고 즐겁다.

어제 만나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마친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와 같은 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어제부터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기로 한 친구는 사실 어제 처음 만났다. 알고 지낸지는 2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수상한 관계다. 2년 만에 우리는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동갑이지만 존댓말을 하며 간간이 연락을 하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 친구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며 유학 중이다. 나는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친구를 따라 학교 앞까지 갔다가 하이델베르크 거리를 거닐며 스타벅스에 들어가 여동생에게 보낼 엽서를 썼다. 한참을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나니 학교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비오는 하이델베르크 거리

 

오늘 점심은 친구가 다니는 학교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하이델베르크 학생들이 학생 식당을 애용하는지 자리가 아예 없어서 다른 학생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생 식당은 뷔페식으로 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들이 많아서 자리가 없는 이유를 수긍하며 이것저것 담았다. 가격은 무게로 책정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가득 담은 접시를 들고 자리를 찾고 있으니 친구가 아는 시리아 학생이 같이 먹자며 자리로 초대해주었다. 함께 모여있던 친구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고 평소에는 독일어로 대화하는데 나를 배려하여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 그런 고마운 마음이 겹쳐 배는 맛있었던 점심이었다. 다 먹을 때쯤 카페에 가서 핫 초콜릿을 사주겠다 하여 우리는 쫄래쫄래 따라갔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먹을 거 사준다고 따라가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 스쳐 지나갔다. 고민은 잠시도 하지 않고 바로 따라가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본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카페에 도착한 우리는 어색함 없이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수다를 떨다가 체스를 두었다. 시리아 친구는 체스를 매우 좋아하며 어릴 적에는 체스 대회에도 나갔다고 했다. 콜롬비아 친구가 시리아 친구에게 체스를 단계대로 착착 져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안타까웠지만 즐거웠다.   

학생 식당 & 점심을 함께한 유쾌한 친구들 & 카페에서 체스 두며 수다 타임


시리아 친구가 주말에 함께 근교에 놀러 가자고 하여 우리는 바로 알겠다고 하였다. 아쉽게도 콜롬비아 친구는 가족들과 선약 때문에 시간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처음 만났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이케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러 갔다. 이케아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한 곳밖에 없는 이케아를 가본 적이 없어서 얼른 이케아에 가보고 싶었다. 이케아를 가는 길에 보이는 집들이 너무 아늑하고 아름다워서 기대감이 한껏 올라갔다. 깨끗한 공기와 나무들과 어우러져 꼭 동화나 영화 속에 나오는 부유하고 화목한 가족들이 사는 마을 같아 보였는데 친구와 로또를 맞아야 이런 집을 살 수 있겠다며 이야기를 나누니 이케아에 도착하였다. 이케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모든 물품을 사고 싶었다. 아마 내가 독일에 거주했더라면 바로 샀을 것이지만 오직 형광펜 12개 세트만 구입하였다. 정시에만 오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우리는 서둘러야 했는데 핫도그를 포기할 수 없어 빠르게 먹고 버스에 무사히 탑승하였다. 동네로 돌아와서 우리는 저렴한 Netto 마트에 들렸다. 역시나 과일이 신선하지 않아 사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에서 만원에 육박하는 초콜릿 그레놀라가 여기서는 단돈 3000원쯤 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흥분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목이 말랐던 것을 생각하며 물을 6통을 구입하려고 하자 친구는 너무 무거울 것이라며 말렸다. 친구의 만류에도 나는 물 6통이야 쉽게 들 수 있다며 사들고 나갔지만 마지막엔 힘이 떨어진 팔로 겨우겨우 힘겹게 들고 왔다. 친구가 저번 주에 혼자 이사를 했다고 하였는데 갑자기 온몸으로 공감이 되면서 내 팔이 후들거리는 것을 보고 신기함과 함께 피곤해졌다. 그렇게 와인을 뒤로하고 피로함에 잠이 들었다.


이케아와 핫도그 & 생수와 초코 그래놀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

만약 내가 친구를 몰랐다면 나에게 하이델베르크는 잊혔을 것 같다. 아니면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하는 도시 정도?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도 친구 덕분에 하이델베르크에 다시 갈 수 있었고 이번에 만난 하이델베르크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보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값비싼 음식과 쇼핑이 아니라도 웃음을 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그래서 이번 여행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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