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 록 Feb 05. 2016

새로운 렌즈

아멜리의 한국어 공부와 진짜 카메라 

여행지에서 하루의 시작

피곤했지만 새벽에 눈을 떠졌고 다시 잠들지 못했다. 친구가 2015년은 우리에게 삼재라고 하였다. 나는 듣자마자 안도했다. 2015년에 겪은 상황들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고 이제 곧 끝나니까. 여행을 오니 확실히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 즐거운 하루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몸의 사이클이 돌아와 새벽에 눈을 뜨고 있다.


새벽 1시에 깼다가 다시 자고 5시에 다시 깨서는 씻고 친구를 기다렸다. 어제는 같이 아침을 먹고 학교 쪽으로 갔었는데 오늘은 아침에 노트북으로 글도 정리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싶어 집에 홀로 남았다. 한국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설날에 시간이 나서 독일로 온다고 연락이 와서 함께 어디를 갈지도 의논하였다.


점심시간에 맞춰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오늘은 어제 커피를 마셨던 Zeughaus에서 피자를 먹기로 하였다. 친구는 싸구려라서 맛있는 피자라고 하였다. 먹자마자 그 말이 완벽히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커다란 피자를 우리는 한 판씩 먹었고 결국 배탈이 났다. 싸구려 피자는 너무 맛있었다. 피자를 먹고 친구와 언어 교환을 하는 아멜리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말없이 늦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오다가 자전거가 고장 났다고 하였다. 유럽에서는 자전거로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고장 나면 골치가 아프겠다 싶었다. 아멜리는 기초적인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그녀의 한국어 글씨체를 보니 너무 귀여웠다. 반대로 아멜리가 가르쳐준 독일어 욕을 열심히 하니 아멜리가 귀엽다고 한다. 서툴면 조금은 귀여워질 수 있나 보다.


맛있는 싸구려 피자 & 한국어 시험을 벼락치기 중인 아멜리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

나는 한국어 공부를 하는 아멜리를 보고 당연히 K-pop이나 K-drama에 관심이 있을 거라 예상하여 "무슨 드라마 좋아해?"라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아멜리는 자신은 사실 K-pop이나 K-drama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였다. 오히려 한국 역사와 북한에 관심이 있고, 자신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북한에 가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나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왜?"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북한 여행이 이상하고 낯설지만 그만큼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꼭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내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냐는 질문에 자신은 외국인이라서 조심만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덧붙여서 비자 신청에 대한 어려움과 여행 도중 따라붙는 경호원에 대한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도 사실 케이팝이나 케이 드라마보다 미드와 영드를 즐겨본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나에게 물어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편견에 사로잡혀 모두 한국의 방송 문화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줄 알고 질문을 하다니 처음부터 답을 정해놓고 한 질문이 부끄러워졌다. 


아멜리는 우리에게 은/는과 이/가의 차이점을 물어보았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배운 한국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따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걸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와 친구는 버벅거리며 그냥 은는이가라고 배웠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하여 당연시했던 것들이 내 입 밖으로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웠던 순간

아멜리를 만나서 대화하면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게 막았고 모르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배움을 막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빠가 몇 년 전에 주신 DSLR를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처음 꺼내어 가져오니 이제야 내가 사진기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은 셔터만 누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배움의 태도는 일상에서 진정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소소하게 하나씩 시도를 하고 과감하게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어려울 수 있지만 한 번 용기를 낸다면 나만의 진짜 세상을 보는 눈과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를 가지게 될 거라 믿는다.


REWE에서 장보기 & 저녁의 Menza & 새우 볶음 밥과 로제 와인으로 황홀한 저녁 식사


비 오는 날의 이야기

비가 계속 오며 날이 흐렸지만 우중충한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아멜리와 헤어진 후 장을 보러 갔다. 어제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지 못한 과일을 사러 REWE 매장으로 갔다. 역시 Netto보다 값이 비싼 대신 깔끔하고 신선한 과일들이 한가득 있었다. 우리는 바나나와 만다린 귤, 시리얼, 우유 등을 사고 다시 학교로 갔다. Menza에서 친구가 친하게 지내는 오빠와 그의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친구 분의 워킹홀리데이 경험이다. 그분은 어릴 적 워킹 홀리데이로 일하면서 도살장에서 6개월간 일하였다고 하였다. 경험담으로 우리에게 염소와 돼지를 잡은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눈 앞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염소와 돼지를 잡는 일에 대한 것보다는 그 일을 선택하여 6개월간 지속해서 일할 수 있었다는 경험이 나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커다란 이질감이 느껴졌다. 또 다른 편견과 다름을 배척하는 마음이 나에게 생겨났고 나는 친구에게 나의 감정을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나름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년 후의 이야기

여행을 다녀온지도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일기장 같은 나의 여행기를 꺼내보았다. 비 오는 날 들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감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잘못된 줄 알았다. 나는 왜 이렇게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못난 마음이 있나 상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잘못돼서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꼭 애써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지금 와서 말해주고 싶다. 마음을 닫아놓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온다. 천천히 나에게 시간을 주어도 괜찮다.

이전 02화 같은 곳, 다른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