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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r 15. 2016

마지막 하루

유한함의 소중함  

마지막으로 T와 함께
마지막은 늘 아쉬운 마음이 들어

T와 헤어지는 건 여느 때보다 더 힘들었다. 아쉽고 아쉬웠다. 나눌 것이 아직도 많았는데 떠나야 한다니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게만 느껴졌다. 힘겹게 발걸음을 떼어 마드리드 도심에 위치한 호스텔로 짐을 옮긴다. 

마드리드 도심 호스텔

구글 지도를 보고 따라가니 사진과 똑같은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고 생각했으나 같은 이름의 다른 곳이었다. 길치였지, 나. 캐리어를 돌길에 끌며 다시 호스텔을 찾아갔다. 다행히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캐리어를 끌며 걸었던 탓에 땀이 뻘뻘 났고 새로 지어진 호스텔은 매우 깨끗했다.

체크인 시간 전이라 호스텔에 짐만 맡겨 놓고는 Atocha 역 앞 백화점 9층 식품관을 찾아갔다. 점심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치즈와 와인이고 독일에서는 빵과 버터, 프랑스에서는 고기와 타르타르! 

염소 치즈를 샀다

한국에서 10층 이하 건물은 오히려 낮게 느껴질 만큼 높은 건물이 많은데 반해 유럽은 높은 건물이 많지가 않아 9층만 올라가도 한국의 30층쯤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야가 탁 트이면서! 

스페인 사람들은 우체국을 잘 이용하지 않나? 싶은 소박한 우체국

점심을 먹고 그동안 써두었던 엽서를 옆에 두고 몇 장의 엽서를 더 적기 시작했다. 그동안 보냈던 엽서를 모두 합쳐보니 20장이 훌쩍 넘는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쉽게 보였던 우체국이 스페인에서는 보이지 않아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는데 제대로 도착하는지 미덥지 않아서 우체국을 찾고 싶었다. 경찰관에게 물어 물어 겨우 찾은 우체국은 또 다른 백화점 지하 2층에 있었다. 오, 신기하다. 우체국이 지하 2층에 있다니!  

햇살이 아름다운 Buen Retiro 공원

호스텔에 잠시 들어와 쉬고 있으니 다시 일어나기가 귀찮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호스텔에서 보내고 싶지가 않아 마드리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는 Buen Retiro 공원에 간다. 생각보다 더 넓고 좋은 공원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맞고 있으니 풀밭에 누워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푸른 하늘과 조금 더 파란 호수에 보트에 탄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오리배가 생각난다. 

우연히 프라도 미술관 가는 길

공원을 가로질러 나가니 우연히 프라도 미술관으로 가는 방향으로 걷는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무료 관람이라더니 프라도 미술관 앞은 이미 기나긴 줄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아무리 못해도 1시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빠르게 포기한다. 맛집도 기다리지 않는 나에게 프라도 미술관 앞에 많은 사람들 틈에 낄 의지는 없다. 기다린 후에 들어가도 빨리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또 다른 기회인 소피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프라도 미술관의 표 파는 곳을 아시는 분이라면 사진에서 보이는 지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피아 미술관은 오후 7시부터 무료입장인데 30분 일찍 기다려서 7시 정각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들어가자마자 무료입장으로 들어온 걸 후회했다. 더 일찍 와서 천천히 보았다면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은 작품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3층 테라스는 꼭 가야 한다

3층에 있는 테라스는 낮에 간 백화점 9층과 같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높이다. 해가 질 때 갔더니 낮에 본 풍경과 다른 황홀함을 준다, 고맙게도. 미술 작품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피아 미술관 3층 테라스는 추천한다.

미술관에는 미술 작품도 많았지만 영상이나 영화, 사진 또한 상당히 많다. 영상 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다른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사진 속 4명의 사람들은 작품 구경을 하며 한 바퀴를 돌고 돌아왔을 때도 똑같은 자세로 있었는데 관람객인지 행위 예술가인지 모르겠다. 관람이든 예술이든 방해할 수 없어 돌아왔는데, 아직도 궁금하다. 

맛있는 스페인 요리!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톡톡 튀는 그림을 지나 친구에게 추천받은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여러 명은 앉지도 못하고 서있기까지 했다. 사람들로 분주한 가운데 동양인은 우리뿐이다. 메뉴판을 받아 들자마자 유명하다는 새우와 바삭한 버섯 튀김을 시키고 빼놓을 수 없는 샹그리아도 한 잔씩을 주문한다. 샹그리아가 나오고 이어 바게트와 과자 그리고 소시지가 나왔다. 푸짐한 양과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행복한 저녁 식사 후 호스텔에 들어가 새벽 5시에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일찍 잠을 청하려던 찰나에 들어온 여자 아이가 나에게 Japanese? 하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답하니 한국말로 반갑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계획과 다르게 새벽 2시쯤 잠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었는지 깊게 잠들지는 못하였는데 새벽 3시에 들어온 세 명의 취객들 때문에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호스텔 방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최악이다. 그때부터는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지도 않은 상태로 버티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이니 참고 새벽같이 호스텔을 나선다. 피곤한 밤을 보내고 새벽에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안녕, 유럽. 나중에 다시 만날 때는 오래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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