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3
6개월 전 상훈은 스페인 발렌시아를 보름 정도 되는 일정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비르헨 광장은 그가 저녁 무렵만 되면 찾는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해가 떨어지면 전구색 불빛이 구도심을 가득 채우고 대리석 바닥은 위에서 하사된 그 주황빛을 떠받드는 동시에 사방으로 반사하며 오랜 석조건물들에 둘러싸인 그 정취를 한껏 고취시켰다.
발렌시아 대성당 근처의 울타리 한구석에서는 하늘이 어둑해짐과 동시에 멜로디언이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의 악기 케이스를 앞에 열어두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곤 했다. 그들의 몇 발자국 맞은편 건물 입구 계단에는 산책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곳 주민 몇몇과 여행자들이 한 두 무리 씩 뒤섞여 앉아 그 연주를 감상한다. 이곳의 흔한 일상이다.
상훈은 보름 내내 숙소에서 낮에 사온 타코를 먹거나 근처 식당에서 빠에야 같은 걸로 저녁을 때운 후 광장을 찾았다. 광장 가운데 있는 분수를 중심으로 둔 채 주위를 어슬렁 거릴 때도 있었지만 주로 노천카페에 앉아 주변을 구경했다. 그는 주로 최대한 많은 것을 주워 담아가고 싶어 하는 욕심 어린 여행자의 눈빛을 띄고 있었지만 때로는 모든 것은 -그 자신까지도-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고 있는 하나의 인간이 되기도 했다.
예정된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발렌시아에 온 지 13일쯤 되던 날의 저녁이었다. 상훈은 광장의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날은 왜인지 수백 년 역사의 석조건물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 유리잔이 아닌 작은 종이컵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옆에 잠시 내려놓았다. 양쪽 무릎을 세우고 주저앉아 그 위에 양팔을 얹어놓고는 앞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휴대폰도 보지 않고 식어가는 커피도 잊은 채 허락도 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가는 모든 것들을 관찰했다.
앉아 있은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즈음 몸 안에서 일어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흡사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래에 있어야 할 것들은 위로, 위에 있어야 할 것들은 아래로 내려가려고 해서 빚어지는 혼선 같았다. 배구경기의 체인지 코트 타이밍을 착각해 상대의 코트에서 우왕좌왕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떠올랐다. 뭔가가 그의 장기를 나뭇가지 삼아 이 나무 저 나무로 마구 옮겨 다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실제로 어떤 통증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극한의 사실적인 상상을 했거나 그러한 종류의 꿈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정신적인 착란에 가까웠다. 상훈은 보통 이런 경우에 누구든 할만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여행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 2주간 쌓인 여독으로 인한 가벼운 몸살 증세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아니면 저녁으로 먹은 빠에야에 든 해산물로 인해 탈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상태로 오분이 지나고 이어서 십 분쯤 계속해서 잠자코 그 이질감을 느껴보니 그것은 역시 물리적이거나 육체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상훈이 이번에 발렌시아에 온 목적은 휴식이었다. 업무적인 일정이 끼어있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러니 몸살이 날 만한 무리를 하지는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잘 챙겨먹고 꾸준한 산책을 하며 충분한 하루 적정 운동량도 채워왔다. 일이 껴있어 불가능했던 모처럼의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만약 음식 때문에 탈이 난 것이라면 조금 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통증이 몸에 찾아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어떤 것이 급작스럽게 이런 느낌을 유발한 것일까. 앞서 생각했듯 약 이 주간의 여행은 평온과 건강 그 자체였다. 아침이 되면 바게트를 사고 서울의 한강처럼 발렌시아 중심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공원을 느린 걸음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산책한다. 가끔은 달리기도 했다. 끝에서 끝으로. 또다시 반대편 끝으로. 주말 아침이면 산책 중간중간 발렌시아의 부지런한 청소년들을 따라 철봉에 매달리며 잠시 그 활기를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상훈의 입에 익어있는 스페인어라고는 ‘영수증 주세요’,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정도와 커피 메뉴 몇 개 밖에 없었지만 그가 알고 있는 스페인어 단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가르쳐주면 굉장히 좋아했다. 그렇게 두세 가지 말을 돌려가며 주문처럼 외우면서도 함께 운동할 수 있었다. 감정이라는 공용어는 인간모두가 구사가능하다.
그리고는 주로 숙소로 복귀했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신선한 빵을 썰고 야채를 씻는다. 그리고 치즈를 준비한다. 치즈는 그날 기분에 따라 강판에 갈아 뿌려먹기도 하고 두부를 썰 듯 슬라이스로 만들어 빵 사이에 넣어 먹기도 했다. 근처 시장에서 사놓았던 신선한 하몽도 몇 장 곁들여서.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요리하고 먹고 씻는 것 따위의 본능적이고 기초적인 활동들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질을 높여보는 체험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정신과 육체의 톱니바퀴가 한층 더 정밀하게 맞물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훈은 휴식이 주목적인 여행이라면 의식주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데에 돈과 품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식사가 끝나고 그 뒤의 시간들은 정말 마음이 가는 대로 보냈다. 수족관을 가거나 공원을 한 번 더 산책하거나 벤치에 누워있거나 가보지 못했던 상점들에 들러 물건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슬슬 광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일정은 여독을 오히려 푸는 작용을 한다. 일부러 공을 들여서 뭔가를 덜어내고 청소하는 행위 속에서는 부정적인 것이 쌓일 틈이 없다.
상훈은 이번 여행을 돌아보는 것에서 이질감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살면서 지금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문득 9살 무렵 초등학교 소풍 때가 생각났다. 현 상황은 무릎이 까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것 같은 육체적인 사고와 고통이 아니 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걷어내면 고통, 통증에 대해 남는 기억은 몇 가지 없었다. 아무튼 그것이 소풍이었는지 수학여행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9살 무렵이었으면 소풍이었을 것이다.
실제 몸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적은 살면서 그때 한 번이 전부였다.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었다. 친구들과 싸우지도 않았고 상훈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지금처럼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관찰하고 내보내 주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때는 발원지가 명확했다. 식도 쪽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그마한 것이 걸린 듯한 이물감이 찾아오더니 이내 그것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식도 중간에 점점 바람이 들어가고 있는 풍선이 껴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터질 줄 모르고 계속 커졌다. 실제 풍선이라면 이미 터지고도 남았을 크기까지 갔다고 느껴지자 그에게 극심한 공포감이 찾아왔다. 식도 중간에서 부풀대로 부풀어버려 삼켜버릴 수도 토해낼 수도 없는 풍선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연실 구역질을 해대었다. 몇 분간 계속되는 구역질이 멈춘 후 오한과 불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까지 떠올린 상훈은 정신적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나 지금의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는 9살의 그 사건을 어린 시절을 굉장히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쌓인 독소를 빼낼 능력이 없었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결론짓고 살았었다.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에 비해 계단에 앉았을 때 찾아왔던 것은 조금 달랐다. 어렸을 때의 그 부풀어진 풍선은 상훈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부모의 양육, 그로 인해 갖추어지는 여러 환경적 조건들이 연쇄 작용함으로 인해 받은 정서적 피폭이었다. 그는 피해자였다. 피해자로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억울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번의 현상에서 상훈은 식도 안에서 풍선을 불고 있는 것이 부모나 타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혼선을 주고 있는 것이 마치 스스로가 자초한 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에도 전조증상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여행지의 날씨도, 사람들도, 음식도, 풍경도, 숙소 주인도, 이 주간의 그 자신도.
상훈은 맞은편에 있는 멜로디언 연주자와 눈이 마주쳤다. 멜로디언 연주자는 그가 오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최소 그곳에서 한 시간 이상은 연주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에 놓여있는 악기 케이스를 보니 텅텅 비어있었다. 아무도 저 사람의 연주에 대가를 치르고 싶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도 연주자는 그를 보며 계속해서 미소 지었다. 상훈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을 텐데’
상훈은 몸을 조금 옆으로 기울여 뒷주머니를 뒤져본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을 빼낸다. 펼쳐진 손에는 4유로 정도가 있었다. 그날 하루 동안 사용하고 남아있던 잔돈이었는데 다음날 바게트와 커피를 사기에 딱 맞는 금액이라 일부러 남겨두고 있던 돈이었다. 그러나 상훈은 마음을 바꿔 그 돈을 지금 눈앞에 있는 연주자에게 주기로 했다. 길거리 음악가에게 지나가며 주는 금액으로 한 번에 4유로는 크다면 큰 금액이다. 그래도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연주자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으니 공연비를 내는 셈 치자고 생각했다. 옆에 같이 앉아있던 작은 에스프레소 컵의 몫까지 두 명분을 치르는 것이다.
일어나서 몇 걸음 앞의 연주자에게 다가갔다. 연주자는 당연하지만 상훈이 다가가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팔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멜로디언을 연주했다. 2유로짜리 동전 두 개를 악기 케이스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턱수염이 무성하게 난 라틴계 길거리 연주자는 기존의 미소위에 미소를 한층더 올려 웃어주었다.그리고는 나지막이 ‘Muchas gracias’라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상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에스프레소 컵 옆으로 다시 와 풀썩하고 앉았다. 뭔가 허탈함이 찾아왔지만 뱃속부터 뇌까지 파동 쳤던 아까의 이질감이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다.
상훈은 점잖게 자신을 기다려 주었던 종이컵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덮여있는 플라스틱 뚜껑에서부터 컵의 허리까지를 쓰다듬듯 살며시 잡아 올렸다. 고양이를 기특해하듯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던 것을 단숨에 들이켠다. 커피에 문외한인 상훈은 아직도 커피 속에 존재한 다는 초콜릿, 견과류, 과일 껍질 같은 향들을 구분 짓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 그런 고로 그 각각의 다채로운 풍미들은 그의 입에서 쓴맛으로 뭉뚱 그러져 넘어간다.
카페인도 한껏 들이켠 그는 조금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다시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본다. 구도심의 분위기가 왜인지 아까와는 달라졌다. 소리를 실어 나르는 공기의 파동이 분명히 바뀌었다. 냄새를 싫어 날랐던 파동도 분명히 바뀌었다. 빛을 실어 나르는 파동은 그대로이다. 아니, 조금 더 어두워졌나?. 상훈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어본다. 착각이 아니다. 소리와 냄새가 분명히 바뀌었다. 다시 보니 빛을 실어 나르는 파동 역시 뭔가 변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두운 곳은 조금 더 흑에 가까워지고 밝은 곳은 좀 더 백에 가까워진 듯했다. ’ 카페인 때문인가’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본다. 그러나 조금 전 여독이나 배탈에게 덮어 씌우려 해 봤던 때처럼 역시 의미 없는 추측임을 금세 깨닫는다. 정말로 -실질적으로- 뭔가가 변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상훈은 혼란스러운 나머지 자신처럼 살아 움직이며 숨 쉬는 것들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냄새나 소리, 빛 같은 것만으로는 현재의 변화를 납득하기 어렵다. 가까운 시야에 여행 내내 들르던 카페가 들어온다. 그곳의 노천 테이블에서 바라보는 광장의 풍경이 썩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곳 보다 좀 비싸지만 자주 찾았던 곳이다. 늘 커피를 가져다주던 턱시도를 입은 청년 웨이터가 손님들이 놓고 간 빈 잔과 함께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놓인 동전들을 챙기는 것이 보인다. 카페에서 시선을 좀 옮기면 광장의 구석이 있다. 그곳에는 역시 늘 서있던 베레모 차림의 경찰들이 보인다. 제복을 입은 채 회색 파마스 F1기관단총을 들고 서있다. 오늘의 근무조는 남자 한 명에 여자 한 명의 구성이다. 처음 발렌시아에 발을 들였을 때 보았던 얼굴들인 것 같다. 아마 일주일을 주기로 근무지를 옮기는 듯하다. 상훈이 주로 찾던 인기 없고 비싼 카페의 맞은편에 보면 인기 많고 저렴한 노천카페들이 세 곳 정도 나란히 있다. 그곳은 바 테이블이건 야외테이블이건 늘 거의 만석이다. 조금 더 떠들썩 한 곳이 맥주를 같이 파는 곳이다. 퇴근 후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함께 나온 가족들이 카페 손님들의 주를 이룬다.
발렌시아인들의 저녁 나들이 테이블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보통의 가족모임 테이블이 으레 그렇듯 초콜릿 음료나 아이스크림, 커피 혹은 차, 주스, 맥주 등의 음료들이 장르가 뒤섞여 난잡하게 올라가 있다. 함께 온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거나 어른들의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다가 소행성처럼 돌진한다. 어른들은 눈으로 아이들을 예의 주시하며 입으로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즐거운 혹은 심오한 대화를 나눈다.
이제 막 문을 닫고 있는 꽃가게 아주머니도 보인다. 그 아주머니는 면으로 된 회색 챙모자를 즐겨 쓴다. 직접 새겨 넣은 듯한 자수가 박혀있는 모자다. 아주머니는 아침 일찍 가판대 형식으로 된 자신의 작은 가게를 연다. 그곳에서는 꽃과 함께 신문을 판다.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침마다 보채는 눈꺼풀에 못 이겨 산책을 나온 노인들은 매일 아침 꽃집에서 파는 신문을 사 간다. 발렌시아의 아침은 꽃집 아주머니의 셔터 여는 소리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꽃 향기와 그날의 여러 가지 희소식들은 그 작은 가게에서 시작되어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다.
상훈은 다시 카페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골목들 뒤편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 검은색 하프 랩 앞치마를 하고 같은 검은색 바지와 구두, 흰 셔츠를 입은 웨이터들이 모여 하나 같이 필터가 노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열댓 번의 단물 같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러다가 같은 옷차림에 얼굴과 체형만 다른 두 사람이 오면 인사를 하며 피우던 담배를 끄고 자리를 내준다. 교대시간이다.
광장에서 동네 시장이 있는 방향으로 나있는 널찍한 길목을 바라보면 중년의 여성들이 둘셋씩 모여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맨발에 샌들을 신고 화려한 블라우스 차림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고 정장을 입은 사람도 있다. 각자의 일터에서 퇴근하고 엄마 혹은 누군가의 배우자로 또는 스스로의 친구로 복귀한 사람들이다. 그 사이에는 괜스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두 손 가득 레토르트 식품만 사 오는 중년의 남자 회사원도 껴있다.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대는 여전히 물을 내뿜고 있고 그 물은 공중에 떠있을 순간만큼은 도시에서 내뿜는 주황빛으로 물든다. 분수대 주변으로는 친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십 대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보통 여자들은 후드에 레깅스 차림이거나 남자들은 스웨트 셔츠에 조거 팬츠 차림을 하고 있다. 축구공을 들고 있는 무리들이 대체로 좀 더 어려 보인다.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무리들은 축구공을 들고 있는 이들과 상의의 차림새는 크게 차이가 없으나 하의가 청바지 혹은 면바지 차림이다.
분수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혼자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도 있다. 귀에 유선 이어폰을 꽂고 아이팟을 만지작 거리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지켜보며 상황을 파악한 상훈은 ‘뭔가가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훑어본 모든 것은 종전의 한 시간 여의 시간 동안 그의 눈을 스쳐간 모든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무엇이 빠진 것일까. 무엇이 더해진 것일까.
그러다가 상훈은 본능적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여행자들은? 생각이 먼저였는지 입이 먼저 나선 건지 자신이 말하고도 흠칫 놀랐다. 머리 위까지 치켜 올라간 배낭을 메고 기능성 티셔츠와 짧은 러닝 팬츠 차림에 플립플랍을 신은 이들이 사라졌다. 땀에 젖고 건조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어 풍기는 시큼 따뜻하고 탁한 습기가 사라졌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먹을 걸 사들고 어슬렁 거려 자칫 현지인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걸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어딘가 과하게 닳아 있는 이들도 사라졌다.
짜증 나는 표정으로 유럽의 길바닥을 째려보며 미친 말처럼 다그닥 거리는 슈트케이스를 억지로 끌고 가는 이들도 사라졌다. 그들은 유럽 각국의 도시공사와 슈트케이스 회사들과의 모종의 결탁 같은 걸 의심할까?.
상훈은 빛과 냄새와 소리의 파동이 뒤바뀐 이유를 알아냈다. 지금 이곳엔 이방인들이 모두 사라졌다. 오롯이 이 도시에 두발을 모두 딛고 정착한 이들만이 남아있다. 정착민들의 발끝에는 방향이 없다.
한쪽 발끝을 현재에 딛고 다른 발끝을 미래에 딛고 있는 이들은 사라졌다. 항상 그 다음을 염두에 둔 채 머무르는 이들의 존재가 사라졌다. ‘완벽하다’라고 어디선가 음성을 보내온다.
현지에 거의 완벽히 동화되어 보는 것은 상훈이 지금까지 했던 여행의 목적이자 이유였다. 지금의 그는 자신이 추구해왔던 이상향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풍덩 빠져있는 것이다. 순간 상훈은 행복했다. 뒤바뀐 공기에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완벽의 경지를 바라본 것 그 자체로 그는 고취되어있었다.
상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눈으로만 훑은 경로를 그대로 발로 걸어보았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거리를 구석구석 노려봤지만 이방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뒤바뀐 세계에 자신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광장에 도착했을 때 에스프레소를 포장했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더 사보았다.
첫 번째로 카페를 들어갔을 때는 카페의 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주었었다. 사장이 서있던 자리에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서있었지만 그를 대하는 것에 특이점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마시지도 않을 커피 컵을 민망한 듯 쳐다보고는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린다. 스테인리스로 된 이 작은 쓰레기통은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안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종이, 비닐 할 것 없이 모두 이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음식물이 담겨 있어도 말이다. 사정에 따라서는 액체마저도 가차 없이 쏟아붓는다. 상훈은 그 안에 쓰레기를 취향대로 가려 먹어대는 케르베로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리 개수는 세 개가 아니라 쓰레기의 종류만큼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들의 분별없는 짓을 이 금속 캔 하나가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순간 시야 가장 가리로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검정 비닐봉지 같은 것이 바람에 날아간 것 같다. 검정 비닐봉지?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본 적은 없다. 쓰레기를 담는 비닐을 제외하고 말이다. 슈퍼에서도 마트에도 어느 상점에서도 검은색 비닐은 쓰지 않았다.
상훈은 부러진 뼈가 잘못 붙어버린 듯한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대장과 소장이 머리에 가있고 뇌는 복부 쪽에 붙어 버린 상태로 얼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마추어 배구선수들은 끝내 제 코트를 찾아가지 못한 채 경기가 중단되어버렸다. 좀 전의 검은 물체가 날아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길거리 악사들이 공연을 펼치던 곳이다. 그러니까 상훈이 좀 전까지 앉아 있던 계단이 있던 곳이다. 그는 그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뇌가 배에 붙어있는 관계로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한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였다.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가니 숱이 무성한 턱수염의 멜로디언 연주자는 어딘가로 자리를 옮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계단 위에 있는 조명은 연주자 없는 빈 무대에 애먼 스포트라이트만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상훈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사람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별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좀 이상한 것은 상훈이 계단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 사람은 선명해지기보다는 실루엣을 잃어갔다. 정확히는 빛이 물체에 도달했다가 반사되며 그려지는 실루엣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빛의 실루엣을 잃으면 잃을수록 그 사람은 무엇보다도 더 흑에 가까워짐으로써 흑의 실루엣을 그리고 있었다. 주변보다 빛남으로써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보다 어두워짐으로써 존재가 부각되고 있었다.
상훈이 좀 전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계단 앞까지 도달 하자 마침내 그 사람은 모든 빛을 잃었다. 동시에 모든 흑을 쟁취했다. 상훈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꼭 그림자의 그림자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새까만색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눈앞까지 온다면 아마 시력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이 상황 어디에서 논리를 찾아볼 수 있는가. 그 검은 실루엣은 계단 앞에 멍하니 서있는 상훈을 올려다보았다. 이목구비가 있지는 않다. 머리와 목으로 추정되는 쪽의 움직임을 보고 올려다본다고 추측한 것이다. 그렇게 2초 정도가 지난 후 그 실루엣은 슬쩍 옆으로 자리를 비켜준다. 상훈에게 앉을자리를 내어준 것 같다.
“앉으라는 뜻인가?”
상훈이 먼저 질문을 했다. 평소에 그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그럼, 우리는 가까워져야 해.”
실루엣이 말했다.
“그렇군.”
상훈은 일단 상황을 따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체념하고 실루엣 옆에 앉았다. 경계심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들기까지 했다. 좀 전까지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로 착각했던 이 실루엣이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안에서 빠져나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식도안에서 계속 부풀고 있던 풍선의 정체일까?
“궁금한 건 감출 수 없군. 통성명도 하지 않고 미안하지만 질문부터 하나 해도 될까?”
상훈은 실루엣을 향해 몸을 틀며 안달 난 듯 물어본다.
“그렇게 해. 하지만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이 상황을 만들어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리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할 거야.”
실루엣이 대답했다. 그 말투 끝에서 조금의 실소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상관없어.”
“그래, 뭐가 궁금하지?”
“나는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인가? 평행우주 같은 곳 말이야. 어느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나 소리 같은 것들의 질이 달라졌네.”
상훈은 참았던 걸 쏟아내듯 다급히 질문했다. 실루엣은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돌려댔다. 상훈은 답답하다는 듯 질문을 이어갔다.
“자네도 이 자리에 앉아서 전부 지켜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함을 느낀 후로 이 광장 한 바퀴를 돌고 왔네. 여행자들이 전부 사라졌어. 여행자가 없는 세계에 들어왔다면 나는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
“안타깝지만 당신이 쏟아낸 많은 질문들 중에 내가 주워 담아 정리해줄 수 있는 건 없어. 그렇지만 당신이 느꼈다던 몇 가지 그 이질적인 것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
실루엣이 대답했다.
“하, 결국 같은 처지라는 말이군.”
“같은 존재라는 말이지”
실루엣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같은 존재? 그래, 그럼 자네는 그림자 같은 것 인가?”
상훈이 실루엣을 향해 물어보았다.
“맞아, 정확히는 당신의 그림자이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건 아마 우리의 세계 속에서 무엇인가 뒤틀렸기 때문일 거야. 어느 순간 보니 나도 거의 소환된 듯 이 자리에 있더군. 상황을 파악하려 두리번거리는 찰나 저 멀리 당신이 걸어오는 걸 봤을 뿐이야. 아까 당신이 말했던 그 한 바퀴를 돌고 있을 때 말이야.”
“우리의 세계?”
상훈은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나는 당신의 그림자이고 당신과 나는 평생 서로를 보며 살아왔어. 이건 이제 알겠지.”
“그래.”
“한 가지 사실만 짚고 넘어가지. 당신은 빛이 있을 때만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을 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네. 당신이 나에게 걸어오면서 알아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빛이 없어도 흑 그 자체로써도 존재해. 단순히 빛이 자신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남기는 흔적 같은 것이 아니라는 소리네. 다만 이렇게 당신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지”
“자네의 말을 이해했네. 어둠보다 더 어두운 것도 있는 법이니까.”
상훈은 일단 맞장구는 쳤으나 솔직히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될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흘러가는 상황에 떠있는 것뿐이었다. 그림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빛의 부산물로써의 역할도 분명히 존재하지. 말하자면 양지쪽에 있는 당신이 빛의 편에 서서 앞을 향해 달려가며 놓치는 것들 혹은 소모하는 것들은 온전히 나에게로와 쌓이게 돼. 실제로 만질 수 있는 뭔가가 쌓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피로도로 알 수 있게 되지.”
“앞을 향해 달려간다는 건 시간 말인가?”
“아, 응 그렇지.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것 말이야. 가끔 역행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좀 논외로 하자고.”
“놓치거나 소모한다는 건 뭐야? 스트레스나 피로,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 같은걸 말하는 건가?”
“그렇지, 정확히는 그것들에 대한 해석이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내가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네한테 가는 피로도가 달라진다고?”
“그런 셈이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로도는 있는 건가? 에너지를 줄 수는 없어?”
“안타깝게도 그런 구조는 아니야. 해석의 성격에 있어서 긍정과 부정은 피로도의 양을 결정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 그러나 꾸준히 긍정적이라고 해서 피로도가 쌓이지 않는 것은 아니야. 쉽게 말해 나를 게이 지화 하자면 0 위로는 수치가 없어. 0과 마이너스로만 이루어져 있지.”
“왜지?”
“이봐, 인간은 항상 주관과 객관의 농간에 속고 있단 말이야. 자신이 이건 긍정적이다라고 선언한다고 그게 모든 관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정의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세상이란 게 몇 개나 존재한다고 생각해? 단 하나? 천만에. 먼지 같은 개체인 인간조차 꽤나 총체적이고 복합적인데 말이야. 인간은 정의 내리는 걸 좋아해. 언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럼 정의 내려지지 않거나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10 단위로 떨어지는 게 좋다고 7이나 8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나?”
“난 단지 자네를 도울 방법이 없나 해서 물어본 거야.”
“갑자기 화를 내서 미안하군. 그냥 잊어버려. 맥락에도 맞지 않는 분풀이 였네. 지금은 그냥 이 정도까지만 받아들여줘.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자네의 탓이 아니야. 내가 이런 걸 설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불려 나온 건 아니라서 말이야.”
그림자는 약간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나?”
“대답할 수 없어.”
“알겠네.”
상훈은 아쉬웠다. 동시에 막막했다. 무엇이 막막한지도 모른 채로.
“그래, 그러나 내가 한 말에 대해 오해는 하지 마. 빛의 쪽에 서있는 당신과 그 반대에 있는 그림자인 나를 연결하는 우리가 가진 메커니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한 건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봐.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존재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때문에 내쪽에서도 당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일정 부분 알 수 있지. 하나 예를 들어볼까?”
“응 계속해보게.”
상훈은 흥미롭다는 듯 그림자 쪽을 쳐다보았다.
“말했듯 당신은 여타 인간들처럼 총제적인 존재야. 그 안에는 비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당신 안에 제일 무거운 부분은 아마 여행일 거야. 당신은 여행자야. 이건 기질 같은 거지. 당신의 직업이 여행작가인 것도 기질과 연관되어있어. 세포에 입력되어 있는 것 같은 거야. 나는 한낱 그림자라 당신이 가진 정보 속에서 학습한 말로 짜깁기해 내뱉을 뿐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당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할 수 있지.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가는 행위는 아마 당신이 육체를 쓰지 못하게 되더라도 정신 속에서라도 이루어질 거야.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해볼까. 당신이라는 여행자의 성격 중 하나를 말해보자고. 여행자인 당신은 여행지에 오면 집을 생각하지, 집에 오면 여행지를 생각해. 그게 이상한 건 아니지. 스스로의 행동이나 경험에서 오는 양면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게 되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의 흐름은 좀 더 균형 잡히고 다채로운 선택을 지속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당신은 이런 걸 뭐라고 했더라? 그래, 시소가 있다고 했었어. 그건 우리 관계를 비유적으로 잘 설명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림자는 여기서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잠시 쉬는 듯했다. 그러면서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상훈은 약간 찡그린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자의 말을 소화해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 관계라.”
“그래, 우리 관계.”
“자네에 말에 토를 달 용의는 없어. 그럴 배짱도 지식도 없기 때문이지. 자넨 처음부터 모른다고 일관했지만 현상황에서는 분명히 자네의 이해도가 월등한 것 같은데? 그림자인 자네와 지금 자네에게 말하고 있는 나를 합친 ‘총제적인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도 말이야. 왜냐하면 문자 그대로 나는 궁금해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럼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지? 자네의 말에 따르면 시소가 바닥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총제적인 나’가 도달해야 할 가장 안정적인 상태인 것 같은데 말이야. 빛의 쪽의 대표와 어둠 쪽의 대표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무슨 의미냐는 말이야.”
상훈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듯 연실 그림자에게 질문을 던져댔다.
“왜 만난 거냐고 간단하게 물어봐도 돼. 시간으로 따지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빛의 쪽에 서있는 당신이야. 나는 구조적으로 부산물을 받아 소화해내며 따라가는 입장이지. 하지만 나에게도 정해진 크기는 있어. 얼마나 크냐고? 말해 뭐해. 딱 당신만큼의 크기겠지. 다시 말해 당신 쪽에서 겪는 것이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친다면 내 상황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일단 시소가 기울겠지. 그 후엔? 내가 찢어지고 터질 거야. 어쩌면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그런 관계로 ‘총제적인 나’가 잠시 가동을 멈추어 버렸기 때문 일 수도 있겠지. 어딘가 실밥이 터졌다는 거야. 그렇다고 자신이 이기적이었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마. 나아가려는 쪽에서는 피하지 못할 상황이야. 뭔가를 상실하고 포기하고 상처 입고 인내하는 것 말이야. 그런 것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인간은 총체적이지만 그 안에도 비중은 있는 법이니까. 몇 걸음을 걷더라도 근육과 관절에는 분명한 피로도가 쌓여. 하지만 상실하고 포기하고 상처 입고 인내함과 동시에 돌보지 않으면 앞으로 오래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야. 보통 나아가는 쪽은 나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그 뒤처리는 내 쪽의 몫이야. 그게 효율적이니까. 일종의 분업.”
거기까지 말하고 그림자는 다음 말을 생각하는 듯 다시 조금의 틈을 가진 후에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가끔 좀 그것이 당신의 실루엣의 경계를 넘칠 경우에는 방향을 잃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게 돼. 그때서야 뒤를 돌아 그늘진 쪽을 바라보는 거야. 아마 그런 수순으로 내가 이 공간으로 끄집어져 올라온 것일 테고 당신이 말했던 빛이나 소리, 공기가 뒤바뀌었다는 것도 이 공간과 연관이 있겠지. 그나저나 여행자가 없는 여행지는 당신이 항상 생각한 이상향에 가깝지 않나? 항상 현지에 완전히 동화되고 싶어 했잖아. 물론 좀 이기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꼭 여행이라는 개념을 혼자서만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 같잖아.”
그림자는 상훈을 향한 질문으로 말을 끝냈다.
소유라니, 상훈은 누구보다 현지와 동료 여행자들을 존중하는 여행을 한다고 자부해왔다. 그림자의 말에 반박하려 나서려는 순간 그의 귓가에서 파열음 같은 것이 들렸다. 눈가가 저절로 찡그려지는 그 소리는 아주 불쾌하게 오랫동안 고막을 잡아 흔들었다. 쓰레기통 바닥에 있는 케르베로스들의 이빨이 심벌즈로 변해 마구 저작질을 해대고 있는 것 같았다.
“맞아. 나도 처음엔 완벽하다고 느꼈네. 유토피아에 왔다고 착각할 정도였어. 끝을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들었지.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질감과 자네가 찾아왔지만. 어쨌든, 항상 나는 남들과 다른 여행을 꿈꿨어. 정확히는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는 여행 말이야. 이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는 여행을 넘어서 내 삶 자체를 그렇게 꾸미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실제로 한동안은 그렇게 살았다네. 자네가 말했듯 시소의 균형을 이루며 말이야.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지 않나? 나는 으레 정해진 굵직한 경로를 택하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 그들은 용기가 없는 사람들 같았지. 자신이 방향을 결정하고 노를 한번 저어 보는 것도 없이 그냥 구명조끼만 입은 채 파도에 몸만 맡기는 사람들 같았어. 그들은 자신의 삶이 어디로 도착하든 상관없어 보였다네. 그저 상하좌우로 전부 자신과 비슷한 것들 속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눈치였지. 노란색으로 태어난 사람을 주변이 전부 파란색인 공간에 두었더니 글쎄 짙은 파랑, 연한 파랑, 하늘색, 남색 같은 것을 삶의 목표로 택해버리는 거야. 안타깝다고 생각안하나? 그에 반해면 나는 황무지의 개척자 같다는 생각까지 했지. 노란색은 좀 더 짙은 노란색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좀 오만한가?”
“많은 이들의 선택이 한 개인의 시선으로써 왈가왈부될 필요는 없어. 세상에는 파란색이 더 오리지널 한 파란색을 부러워하는 비율보다 파란색이 노란색을 부러워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
그림자가 대답했다.
“그래?. 추측하건대 그런 오만한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자네가 말한 시소의 균형은 이미 깨지기 시작했던 것일지도 몰라. 실밥이 터졌거나. 생각해보면 스스로 주장한 개척자로서의 삶에서 받는 시선, 차별, 어려움 등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처하고 극복해나가지는 않았어. 대부분 내 삶에 대한 도전 또는 불평등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지. 스스로가 한 선택에 집어삼켜진 꼴이 된 거야.”
케르베로스는 쓰레기를 꽤나 게걸스럽게 먹는 듯했다. 상훈의 귓가에 울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꼭 누가 지금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고 있는 말들을 막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오는 말은 멈추지 않았고 케르베로스들에게는 끊임없이 씹을 거리가 제공되었다. 상훈은 귀에 들어간 물을 빼듯 고개를 계속 좌우로 흔들었다.
“흠,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알겠군. 어디 불편하나?”
“아냐, 신경 쓰지 마. 나는 날 집어삼키려고만 하는 나쁜 파도에 저항하는 모험가였어. 내 생각에 나는 아무 잘못 없는 힘없는 피해자였지. 그저 저주를 대물림받은 듯 말이야. 잘못이라면 그 큰 바다에 나만의 물길을 내고 싶어 했다는 것일 테야. 어쨌든 노를 버리고 구명조끼를 입기는 싫었어. 나에게 그때 필요한 것은 일종의 결단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지. 모험을 떠나지도 구명조끼를 입지도 못했어. 직시해야 할 것을 보지 않기로 한 거야. 고집이 나를 고립으로 몰고 갔지. 내 선택에 대한 나만의 만족과 책임으로 꽃 피웠던 삶인데 어느 순간 내 꽃을 스스로 오만으로 물들여 버렸지. 고립된 후로는 지금까지 줄곧 남들과 반대되는 것만을 선택의 목표로 하고 앞으로 나아갔네. 그것에 뿌듯함을 느끼면서 말이야. 속 빈 성취였지. 다행히 직업적으로는 좀 도움이 된 것 같지만 말이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외면하게 되는 것은 견디기 힘들어. 그러면서 자네 쪽으로 감당하기 힘든 부산물들을 많이 쏟아냈을 거라 생각하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챌만한 여유는 나로서는 없었고.”
상훈은 그렇게 말을 끝마쳤다. 동시에 꽹그르르 하는 소리가 한번 나고 귓가가 조용해졌다.
“너무 당신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마. 말했듯이 그런 부산물들을 소화해내는 것은 내 일이니까. 나도 최대한 노력했지만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하나 위로를 해주자면 우리는 만나지 않아야만 좋은 관계는 아니야.”
그림자는 상훈을 향해 약간 위로하는 듯 말을 건넸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이 상황을 쉽게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되겠군. 우리 둘, 쉽게 말해 빛과 그림자를 이루고 있는 ‘총제적인 나’를 하나의 회사라고 생각해봐.”
“회사?”
“그래 회사, 그리고 우리 둘은 그 회사에 있는 두 개 부서를 책임지는 각각의 임원인 거야. 평소에는 직원들을 데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물론 사실상 모든 업무는 회사라는 가상의 것을 위해 유기적으로 협업하기 위한 활동이지만 말이야.”
“이해했네. 협업하지만 서로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지.”
“그래, 협업은 허용되나 침범은 안돼.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우리는 효율적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관계도 같은 것을 그려보기 위해 쉽게 이렇게 예를 드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각 부서는 점점 전문성을 띄게 돼. 그리고 전문성이 높아진 부서들끼리 유기성까지 더 상승하지. 우리는 이걸 보통 성장이라고 하지 않나?”
“맞아. 성장.”
“당신도 알다시피 성장에는 양과 질의 상승이 동반돼. 양과 질은 성장과 함께 선순환을 하며 황금알을 낳지만 그 목표가 일회성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뻐하는 동시에 알을 낳는 거위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끊임없이 던져지는 화두, 상황에 대해서 굵직한 줄기를 기반으로 한 가치판단과 결단력이 없으면 n번째 황금알을 기대하는 것은 말짱 꽝인 거지.”
“그 말은 나보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네에게 미안할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군.”
“아니야, 그게 아니지. 당신은 의식적으로 우리를 하나로 생각하며 내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어. 어차피 우리는 하나야. 이렇게 빛과 그림자의 부서로 나누어진 것은 대화와 협업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형식상 나누어진 거지. 우리가 본래 이렇게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야. 당신이 빛이고 내가 그림자든 그 반대든 이렇게 대화의 형식을 빌리든 스스로 자각하는 방법을 띄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림자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알겠네. 계속 풀이 죽는 구만.”
상훈은 힘이 빠진 채 대답했다. 그림자는 말을 이어갔다.
“성장 이야기를 마저 하지. 아까 당신이 말했던 자책과 미안함은 성장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야. 내 쪽에서는 피로함을 느끼고 내 까만 실루엣 가장자리의 실밥이 뜯어지는 것처럼 말이지. 아까 말했듯 양과 질의 상승은 수많은 가치판단과 결단력이 요구돼. 여기서 잠시 정체되거나 일보 퇴보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이때 회사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끝없는 회의의 연속. 대표이사의 빠지는 머리카락 같은 것이 연상되는 군.”
“그래, 이제 좀 알아듣겠나? 우리는 임원회의 같은 걸 하러 여기 불려 온 거란 말이야. 그러나 그건 회사의 위기 상황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성장하는 와중에서도 끝없는 대화는 필요한 일이잖아?”
그림자가 말을 끝마쳤다.
“임원회의라, 정리하자면 나는 미래로 나가는 쪽 자네는 그 부산물을 처리하는 쪽의 책임자로서 이 ‘공간’에 불려 왔다.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는 ‘나’라는 회사의 뭔가 뒤틀린 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군.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안건을 상정해야 하나?”
상훈은 계속 질문으로 밖에 자신의 말을 끝내야 함에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이봐, 자네는 아직 조급한 상태인 것 같군. 꼭 뒤틀리고 잘못되어서 이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니라니까. 이 회의는 짧게 끝나지 않아. 준비가 안된 것 같으면 종료될 수 도 있어. 그러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소집될지도 모르지. ‘나’라는 존재가 소멸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만나야 할 거야.”
그림자가 상훈을 달래듯 대답했다.
“다소 막막하군.”
상훈은 몇 번째 내뱉는지 모를 한숨을 또 한 번 쉬었다.
“낙담하긴 일러. 내 정보망에 따르면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희망이 보이는 편이야. 어떤 곳은 시장에서 상장폐지가 되고 문을 닫을 때까지 회의 한번 열리지 못한 곳도 많은 것 같더군.”
“그런가.”
“오늘은 당신과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현황을 파악하지 않았나? 그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같다는 것도 확인했고. 회의의 성과가 큰 편이라고 생각해.”
“자네는 줄곧 긍정적이군. 상황 파악도 빠르고 냉정해.”
“말하지 않았나. 나는 부산물을 처리하는 쪽이라고 자네가 지금처럼 부정적이고 낙담을 하고 있으면 나는 평소에 그 부산물을 어찌 처리할 것 같아?”
상훈은 그림자의 말을 들으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가, 이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는 것인가.’ 그 순간 공기가 빠지고 들어가며 소리를 내는 악기의 소리가 들렸다. 멜로디언이다. 상훈은 무릎 사이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땀에 절은 체취가 그의 후각세포를 건드리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