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

2020.04.13

by 스미레

상훈은 그림자를 처음 만났던 여행에서 귀국한 후 3주 뒤에 다시 그 장소를 찾았었다.


“응? 또 스페인이야?”


연주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꽤나 심심한지 상훈이 노트북을 켜고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뒤를 서성거리고 있다. 주스를 담으려고 한 건지 얼음을 담으려고 한 건지 모를 유리컵을 들고는 계속해서 상훈의 뒤통수를 알짱거리고 있다.

상훈 역시 3주도 채 되지 않아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행지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하고 있는 현상황에 대해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얼음 하나하나를 캐러멜 먹듯 손쉽게 씹어 삼키는 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그의 고막을 상처 낸다. 원래는 거슬리지 않던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점점 처음 만나는 자신의 모습이 많아진다. 이질감은 그렇게 한 인간의 성질 속에 파고들고 있다.


“주스를 마시든 얼음을 먹든 하나만 하면 안 돼?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단 말이야.”


상훈은 연주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짜증을 부린다. 애먼 노트북의 화면만 침방울에 젖어간다.


“왜 이렇게 예민해? 그리고 그 방법밖에는 없다니 무슨 소리야? 스페인에 뭐 두고 온 거라도 있어?.”


연주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맞선다. 무턱대고 부리는 짜증을 이해하고 넘길 만큼 오늘은 그녀도 자비롭지 못하다. 상훈은 항상 이런 식이다. 신중을 기울여야 할 때는 항상 연주를 옆에 두고 싶어 한다. 그는 항상 무엇이든 최소 3번을 체크한 후에야 안심한다. 자신의 눈으로 두 번 그녀의 확인으로 한번.

연주는 상훈의 그런 습관을 일종의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다. 원래부터 실수하는 일이 적은 그 이지만 시간이 쌓이며 과해진 신중함이 스스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임계점을 넘겨 버린것이라고. 그런 나머지 실수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겨버리고 만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을 투명하게 믿지 못하고 그렇다고 남을 완전히 신뢰할 수 도 없다. 심지어 영화표 따위를 예매할 때도 예외는 없다. 꼼꼼히 예약을 해두고 출발을 했는데도 영화관에 갈 때까지 시간, 날짜, 자리, 상영관등을 수시로 확인한다. 그녀로선 참 피곤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집착이 낳은 지저분한 부산물을 혼자 해소하지 못하고 연주에게 마구 튀겨댈 때가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금세 다시 차분해져 사과를 하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가끔 맞서 주지 않으면 그 습관이 굳어질 것이 뻔하다. 연주는 상훈이 자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둘의 관계에 스스로 먹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정신을 차린 뒤 깊은 후회를 할 것이다. 상훈을 향한 이런 세 발짝 앞선 사고는 연주만이 가능하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렇지만 설명하기 복잡해. 네가 내 말을 신중히 들어주고 믿어줄 것을 알지만 나도 지금은 누구한테 설명하기보다 설명을 듣고 싶은 처지야.”


상훈은 한숨을 쉬며 의자를 돌려 연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재충전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발렌시아로 출발하던 게 누군데?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상태로 또 거기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있으면 당연히 궁금한 거 아니야?. 그리고 뭔가 사정이 있으면 하다못해 일적인 핑계라도 대면 안돼?. 예를 들면 끝난 일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서 추가로 취재를 하러 가게 되었다던지 뭐 그런 거 있잖아. 하다못해 새로운 곳을 취재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게 마침 휴식으로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좀 짜증 난다. 이렇게 라도 말해주면 덧나?”


“그건 거짓말이잖아”


“그럼 사실을 말해.”


“그건 어렵다니까.”


“난 자기에게 들을 권리가 있어.”


“권리 물론 있지. 조금만 기다려줘.”


“그럼 감정이라도 잘 숨기던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모른 척 이해하는 건 언제까지 해야 돼?”


연주는 그렇게 억울함과 분노를 남긴 채 문을 닫고 나갔다. 싱크대에 얼음과 주스가 내팽개쳐지는 과격한 소리가 나고서 몇 분 뒤에 도어록이 열리는 짧은 알림음이 들렸다. 상훈의 예민함과 짜증은 극에 달했다. 그녀를 따라가 부여잡고 사과할 틈은 충분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발렌시아의 그 계단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생각은 비행기표를 예매하려는 그와 무례한 연인으로써의 그의 중간에서 멍청하게 서있도록 만들었다. 그림자를 만난 이후로도 줄곧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질감은 상훈을 점점 멍청하고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상훈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점점 무능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반향을 불러오는 선택이라도 일단 결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결정하는 일은 끝없이 연속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앞에 두고 단지 눈앞에 밟을 계단 하나를 놓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상훈은 이때까지 그냥 이 모든 것의 원인이 그림자와 연관되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답을 그림자를 다시 만나면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주는 그렇게 나가버리고 며칠 뒤 상훈이 다시 발렌시아로 떠나는 그날까지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공항까지 나와 배웅받는 일 같은 것 또한 당연히 바라지 않았다. 연주의 말이 맞다. 상훈은 둘의 관계를 병들게 하는 짓을 줄곧 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연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훈은 이 정신적인 질병같은 것이 연인관계의 면역력을 키우는 정도로 끝날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 대단한 생각도 아니며 근거도 없다. 결국 그녀가 좀 더 버텨주었으면 좋겠다는 투정일 뿐이다.

탑승수속을 밟는 동안 상훈은 5주 전 같은 장소에 서 있으며 느꼈던 것과는 아주 극단에 있는 감정을 느꼈다. 두고 온 것을 찾으러 가는지 가지고 온 것을 놔두고 와야 하는지 헷갈렸다. 그렇게 돌아온 지 3주 만에 다시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상훈의 맹목적이고 이기적이며 무모해 보이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딱히 특별한 해석을 할 수 없다. ‘맹목적이고 이기적이며 무모해 보인다’는 해석까지 포함해서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아야 할 행위와 사고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발렌시아로 바로 도착하는 비행기를 탈 수 도 있었으나 그림자를 만났던 여행과 최대한 같은 경로로 움직여 보기 위해 마드리드에 먼저 발을 딛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그림자와의 만남에 대한 힌트로써 비르헨 광장의 계단 이외에도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발동되는 일종의 마법 현상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상훈에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보는 것 외에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랜딩 하려 준비하는 순간 또다시 이질감이 몰려왔다. 긴장한 탓인 듯했다. 갑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간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연주에게 사과하고 사이가 좋아지면 다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다 보면 뭔가 해결될 것 같기도 했다. 누구나 삶은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다.

이번에도 장기들이 뒤섞이는 느낌이었다. 아마추어 배구선수보다 더 꼭 알맞은 말을 찾아냈다. 오랑우탄이다. 오랑우탄이 몸속에서 오장육부를 차례차례 움켜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번에 자신의 장기를 나뭇가지 삼아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것도 이 오랑우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훈은 속에서부터 제대로 쥐어짜지고 있었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는다. 오랑우탄이 말한다.

‘날 보낸 사람을 찾아’.

상훈은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배웅하던 승무원들을 뒤로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야외에 있는 카페의 바 테이블에 털썩하고 앉았다.

가지고 온 가방은 그냥 발밑에 대충 던져 놓았다. 유럽의 소매치기 따위를 걱정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괜 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그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바리스타는 상훈의 앞에 슬며시 커피잔을 놓고 갔다. 눈을 가리고 있었으나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눈에 힘을 주고 부릅뜨려 노력했다. 발밑을 본다. 아직 가방은 그대로 있다. 상훈은 가방을 획하고 집어 들어 그 안에 있는 자주색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카페와 조금 떨어진 공간에 세워져 있는 스테인리스 재떨이를 향해 걸어갔다.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인원이 그 재떨이를 중간에 두고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첫 연기를 버린다. 바로 다시 입으로 가져가 진짜 한 모금을 폐에 가득 머금었다가 뱉는다. 첫 번째 연기와 두 번째 마시는 연기의 차이는 마치 첫 연애와 첫사랑의 차이와 같다. 상훈은 심호흡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도움을 받으려 찾은 니코틴과 카페인은 오랑우탄의 손아귀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저기, 괜찮은 거요? 몸을 많이 떨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아, 괜찮습니다.”


“혹시 비행기 때문인가? 나도 처음 탔을 때는 그랬지.”


“아뇨. 그런 건……”


노인은 자기 말을 가만히 들어보라는 듯 상훈의 말을 끊고 나섰다. 말이 고픈 듯 보였다.


“담배는 나름 도움이 되지만 커피는 안 좋아. 차라리 따뜻하고 설탕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게. 그나저나 꽤나 독한 걸 피우는 군.”


“아버지가 피우시던 겁니다.”


“자네 아버지도 참 괜한 걸 물려주셨네. 그 라이터도 그럼 아버지 것인가?.”


“네.”


“아무튼, 저 철 고래 같은 것 안에 내 몸을 싣고 가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돼. 확률로 따지면 자동차사고 보다 드물고 속도도 빠르다지만, 쾅. 한번 일어나면? 속수무책. 100% 라니까. 차나 기차는 하다못해 창문을 깨고 뛰어내릴 수나 있지. 그리고 배는 튜브만 챙겨서 둥둥 떠있으면 누가 오든 구해주잖아?”


“배에서 조난된 내용의 영화 같은 거라도 한번 보고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매번 기차를 탈 수도 없잖아요? 그리고 어디서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드리드까지 운전해서 오신 것도 아닐 텐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나도 역시 비행기를 탔으니까 여기 있는 거지. 아니, 타야 했으니까 여기 있는 거야.”


“여태 몇십 번은 족히 타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한적은 없어요. 보통 도착할 여행지, 일, 직장, 담배, 술, 연인, 호텔, 섹스, 음식에 대한 생각을 하죠.”


“그게 젊다는 증거야. 미래를 생각하는 것. 아니 미래까지도 가지 않아. 항상 '이따가'를 생각하잖아. 내 나이가 되면 지금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돼. 담배를 피우는 지금, 처음 본 이국의 젊은이와 대화하는 지금. 그러다 보면 점점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당연하게 찾아왔던 것들에 대한 단절이 점점 많이 찾아와. 그래서 자꾸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지. 우연이라는 건 지금 존재하는 거니까.”


“저는 굳이 지금부터 애써 생각할 필요가 없네요 그럼.”


상훈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죽음이라니. 비행기 옆자리에서 이 노인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아무쪼록 젊은이의 앞날이 잘되길 비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찾고 있더군. 자네도 그런가? 내가 자라던 때에는 보통 추구한다는 표현을 썼지. 둘의 공통점은 불확실할 때 가장 강해진 다는 거야. 둘의 약점은 그것이 눈앞에 나타날 때 퇴색된다는 거지. 안색이 계속 안 좋은데 샤워실을 좀 찾아봐.”


“샤워라뇨?”


“그냥 겉모습이 너무 지쳐 보이잖아.”


“그럴 듯 한 추리를 하신 줄 알았더니만. 비행기에 내린 사람들의 3분의 2는 그 생각을 하고 있을 걸요. 통계도 있는 건데.”


“자네 성격이 원래 그렇게 빡빡한가?”


“하실 거면 좀 더 연륜 같은 게 묻어나는 창의적인 걸 들려주셔야죠. 상대를 놀라게 할 만한 거로요. 예를 들면 오랑우탄이라던지.”


“당찬 건가 무례한 건가……. 그나저나 오랑우탄?”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창의적 이어 보라면서? 그냥 뜬금없는 소리 같은데.”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필터밖에 남지 않은 담배를 불씨도 끄지 않고 대충 던져버렸다.


“실제로 제 안에 있다니까요.”


상훈은 아까 이질감으로 괴로웠던 부위 주변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오랑우탄이?”


“그렇다니까요.”


“언제부터?”


“착륙할 때부터요. 아니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나타난 건 착륙할 때부터에요.”


상훈은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림자를 만나기 직전의 그 이질감이 오랑우탄이 건넨 첫인사였던 것이라고.


“자네한테 괜히 말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맘대로 생각하세요.”


“아니면 아시아 사람들에겐 그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거야?”


“그거 좀 인종차별이에요. 어르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독일.”


“그쪽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투구를 쓰고 도끼를 든 바이킹이 영혼을 데리러 온다는 게 사실이에요?”


“악의가 있던 건 아니야. 그냥 이해해보려 한 거네. 그런 걸 보통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다니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 안 해?”


“누구한테 실제로 말한 건 처음이에요. 말하고 나니까 말하고 싶었다는 걸 알겠네요.”


“자네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가? 위로나 공감 같은 게 필요한 거야?.”


“위로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아마 그걸 얻어도 끝나진 않을 거예요. 제가 찾고 있는 건 일종의 화해 비슷한 겁니다. 위로는… 굳이 말하자면 화해라는 여행지로 가기 위해 타는 비행기 같은 게 될 수 있겠네요. 기차나 배는 역시 너무 느려요.”


“그 오랑우탄을 꺼내서 만나게 해 줄 수는 없어?”


“그랬으면 좋겠는데 꽉 붙잡고 놔주지를 않아요.”


“유인할 수 있는 걸 찾아봐. 뭐 바나나 같은 거면 되려나.”


“듣고 보니 그걸 찾으러 여기 온 걸 지도 모르겠네요. 유인하는 방법. 혹은 바나나 같은 해결책.”


“자네가 찾는 건 부디 퇴색되지 않길 바라네.”


“퇴색되면 쾅, 100%, 속수무책인가요?”


노인은 그 말을 듣고는 씩 웃어 보이더니 담배를 하나 더 꺼내어 피우기 시작했다.


상훈은 공항버스를 이용해 마드리드 중심으로 향했다. 그랑비아 거리에서 하차하자마자 큰길을 벗어나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입구 역할을 하는 작은 골목 하나를 두고 두 세계가 양립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순식간에 사람의 수가 자동차의 수를 압도한다.

눈앞에 보이는 초록색 간판의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시설이 낡고 지저분하다.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이고 객실은 기본적으로 모두 6인실에서 8인실이다. 건물 내 느껴지는 공기가 탁하다. 전 세계 남녀노소의 체취가 한데 모여 내뿜는 꿉꿉한 습기다. 마치 아무 색이나 마구 섞어 회색이 되어버린 물감이 들어있는 어항을 머리에 거꾸로 뒤집어쓴 기분이다. 허나 하룻밤에 9유로라는 가격은 만성 여독의 부작용으로 습관성 불만만 가득한 떠돌이들의 힘없는 외침을 손쉽게 잠재우고도 남는다. 여기서 더 인색하게 구는 이를 맞이하는 것은 공원 벤치일 뿐이다.

순수한 얼굴에 생기 가득한 목소리를 가진 데스크 직원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훈은 일부러 ‘헬로’라고 하지 않고 ‘부에노스 디아스’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데스크 직원은 뛸 듯이 기뻐하며 맞받아 준다. 조금 과할 정도로. 인사말이 끝난 그 뒤로도 쫀득쫀득한 스페인 억양은 십몇초간 이어졌는데 상훈은 그것까지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래 봤자 날씨나 그의 국적 따위를 물어봤을 것이다. 어차피 대화 같은 걸 하려고 스페인어 인사를 익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관계없다. 그냥 주제넘은 배려를 했을 뿐이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곳에서 생업이 게스트하우스 데스크 직원이라면 살면서 듣는 인사 중 절반 이상이 외국어일 테다. 그 외국어 중의 대부분은 영어일 테고. 그런 고로 예상치 못하게 웬 동양 남자에게 모국어로 인사를 받는 경험을 선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직원은 몇 주 전 숙소 입구에서 자신에게 라이터를 빌린 적이 있는 동양인 남자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십 명의 여행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이곳에서 라이터를 빌린 정도의 사건은 직원의 머릿속 기억창고 문을 통과할만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상훈은 멋쩍게 웃으며 열쇠고리가 달린 열쇠를 조금 전 건넸던 자신의 여권과 함께 받아 들었다. 초록색 원형의 작은 플라스틱 열쇠고리에는 투숙객의 베드 넘버 겸 캐비닛 넘버가 될 번호가 적혀있다. ‘161’. 지난번과 같은 번호다.


‘이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마법 현상 같은 일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현혹시켜본다. 아니다 우리가 마법이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저 의미가 부여된 우연이 우연찮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었을 뿐이다. 상훈의 마음속에는 이대로 과거의 길을 순항해 어서 빨리 그림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마치 그림자가 그를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상훈은 비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고 질긴 이질감의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움직이고 싶다. ‘날 보낸 사람을 찾아’. 그것이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고무나무 색깔의 목재로 만들어진 이 층 침대의 아래층에 가지고 온 짐을 전부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전자기기를 챙겨 오지 않아 배낭 안에는 딱히 귀중품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여권과 지갑, 휴대폰 정도만 챙겨 밖으로 나간다. 오래 머물 계획도 아니었고, 도시에만 있을 예정으로 왔기 때문에 인출해놓은 현금도 얼마 없었다.

상훈은 아토차역까지 좀 걷기로 했다. 그곳에서 다음날 발렌시아로 가기 위한 기차표를 예매해야 한다.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쏠 광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내친김에 길을 잃어보기로 한다. 마음껏 충분히 헤매고 돌아 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인 발권기가 말썽이었다. 스크린의 언어를 그나마 자신 있는 영어로 선택하고 조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신용카드를 뱉어냈다. 상훈은 역무원을 찾아 발권기 사용법을 물어보기로 했다.

한 남자 역무원이 역사 구석에서 뚱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다만 눈빛만은 잠복중인 형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장소는 때로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역무원은 상훈의 영어 섞인 스페니쉬를 듣다 못해 중간에 말을 끊으며 짜증을 냈다. 상훈은 말을 내뱉은 자신이 생각해도 곧장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엉망이었다고 마음속으로 인정하고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다시 말했다.


“투머로. 발렌시아. 일레븐 에이엠.”


역무원은 그제서야 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설명하며 손에 들고 있던 상훈의 신용카드를 빼앗듯 받아 들었다. 남의 카드를 마치 자기 나라 국보를 환수하듯 대하는 그 당당한 모습에 상훈은 순간 말을 잃었다. 지금 앞에 있는 인물이 역무원이 아니라 소매치기였다고 하더라도 아마 똑같이 몇 초간은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역무원은 직접 발권기로가서 스크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조작법 따위 설명을 해줄 생각은 아예 없는 듯했다. 이번에도 발권기는 뭔가를 뱉어냈지만 다행히도 그건 카드가 아닌 비행기 보딩 티켓만 한 기차표였다. 표를 집어 들고 이어서 나온 카드까지 꺼내 든 역무원은 상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역무원은 표와 카드를 든 왼손을 상훈의 가슴 쪽으로 쑥 하고 내미는 동시에 오른팔을 치켜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쫀득함을 풍기는 스페니쉬로 뭐라 뭐라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침을 뱉듣 말을 했다. 역무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대의 귓가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듯했다.

상훈은 순간 건네받는 것을 먼저 해야 할지 역무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것을 먼저 해야 할지 헷갈렸다. 이번에는 오랑우탄이 그의 정수 리위로 올라갔다. 그는 마리오네트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나사가 몇 개쯤은 잘못 끼워진 기계처럼 행동하는 상훈을 보며 역무원은 하던 말을 멈추고 이번에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상훈은 그 소리에 놀라 카드와 티켓을 냉큼 받아 들고는 역무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화살표가 난무하는 안내판들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아래로 우수수 분리되어 나와 상훈의 가슴에 사정없이 내리 꽂힐 것만 같았다.

상훈은 어딘가 심하게 의기소침해진 걸음걸이로 숙소로 돌아왔다. 역으로 갈 때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한 나머지 숙소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밖은 많이 어두워져 있는 상태였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조그맣게 난 창밖을 바라본다. 그 조그만 액자에 그려진 그림은 굉장히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나마 손바닥 만한 하늘이라도 보여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품게 할 정도였다. 차갑다 못해 건조해진 회색 벽이 그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상훈은 10분 정도 멍하니 있은 후에야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또 저녁을 먹을 힘도 나지 않았고 근처로 나가 식당 같은 것을 탐색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가는 또 현지인에게 책을 잡혀 혼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시스템에 침입한 바이러스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를 혼내고 제거하고 추방시켜야 할 존재로 대할 것 같았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의 모든 행동에 예상되는 결말이 안 좋게만 도출되자 상훈은 문득 무서워졌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의 용기가 의심스러웠다.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각 기관들끼리의 상호 간의 신뢰가 깨져버린 것 같았다.

눈이 정보를 받아들이면 뇌는 그것을 처리한다. 그러나 지금은 눈이 뭘 받아 들던지 뇌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상에 빠져있었다. 팔과 다리는 방향을 협의하지 않고 제 갈길 대로 움직인다. 현재의 그와 미래의 그 사이에 벌어지는 간극은 계속해서 상훈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과거를 어둡게 해석하게끔 떠밀었다. 아마 결국에는 자신마저 까맣게 칠해버릴 것이다. 상훈은 두려움의 극복과 멍청한 자신의 모습을 잊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슬리퍼를 신고 게스트하우스 지하 1층에 있는 펍으로 내려간다. 볶은 땅콩 한 접시와 맥주를 시키고는 첫 잔을 한 번에 들이켠다. 희열과 슬픔이 가시처럼 뒤섞여 목구멍을 수도 없이 난도질한다. 상훈은 내일이 오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뇌가 마음대로 알딸딸하게 꼬아버린 것에 불과하다. 모순된 가상의 기쁨을 취해 현재의 두려움을 가리려는 나약함이다. 그는 한술 더 떠 그 나약함 위에 내일과 함께 찾아올 자신의 열등감을 미리 덧칠한다. 덧칠하고 가리고 덧칠하고 가린다. 그러나 진실과 사실의 땅 위에는 잡초가 오래 자랄 시간을 주면 안된다.

다행히 기차를 오전 일찍 잡아놓지 않은 덕에 늦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엔 길을 잃지 않고 곧장 아토차역으로 간다. 보안검색대에 올리기에 민망할 정도로 간소한 짐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는다. 상훈은 스크린에 비치는 가방 속 물건들의 실루엣을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나오는 바구니에 담긴 가방을 챙겨 기차에 올라탄다. 앞으로 세 시간을 달려야 한다.


3주 만에 다시 찾은 발렌시아는 여전했다. 이 역사 깊은 도시를 3주 만에 크게 바꾸어버릴 만한 힘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훈은 그 계단도, 그 계단에서 일어났던 현상도 여전하기를 바라며 발렌시아 북역의 출구를 나온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는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는다. 곧장 밖으로 나와 공원을 거닐어 본다. 아무도 없는 철봉에 괜히 매달려본다. 공원 끝에서 맞은편 끝까지 산책도 한다. 늦은 점심으로는 타코를 먹었다.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기념품도 몇 개 사본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저녁이 될 때까지 시간대별로 완수해야 할 과제들을 차례로 해치웠다. 하나라도 어긋 내지 않겠다는 듯이. 그러나 사실은 많은 것이 어긋나 있다. 발렌시아에 도착한 후부터 저녁 전까지의 행동만 추적해 보더라도 그림자를 만났던 날의 일과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가령 철봉에 있던 곳에 발렌시아의 어린 친구들이 없었다. 또 그날의 점심은 타코가 아니라 빠에야였다. 기념품을 산적도 없다. 과거의 전철을 밟아 계단을 다시 찾는 일이 그림자를 만날 수 있게 해 줄지 그렇지 못한 지를 떠나서 상훈은 지금 일정 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좋을 대로 사고하며 행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떠먹여 줄 상황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순항 중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소극적인 속내로 큰 성취를 바라는 자신을 알아채지 못한다.

세상에는 일의 과정과 결과와는 별개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취해야 하는 자세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때로 자세는 무언가를 직면하게 된 후의 상황을 통제한다. 상훈에게는 아직 좀 이른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 찾아오는 이질감에 대응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자를 마치 만병통치약 취급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상훈은 지금 그저 이끌리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되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주황색 가로등이 켜지며 해가진 후 잠시 가려졌던 도시의 모습을 하나둘 다시 보여주기 시작하는 시간. 숙소 창가에 서있던 상훈은 겉옷을 챙겨 입고 비르헨 광장으로 걸어갔다. 잊지 않고 에스프레소를 사서 계단으로 가 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느꼈던 긴장감 또는 식은땀이 흐를 만한 이질감의 영향력에 지배되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매끄러운 행동이었다. 어딘가 젠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그림자에게 모든 것을 의탁한 채 다시 이곳으로 날아오기를 결정했던 순간부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거리의 악사는 없었다. 악사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한눈에 봐도 50L 이상 되는 배낭을 멘 채 종이로 된 관광지도를 유심히 보고 있는 남자가 서있다. 공기의 흐름은 뒤틀리지 않았다. 오랑우탄은 여전히 그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날 보낸 사람을 찾아.”


상훈은 이제껏 그 존재가 그림자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거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있었다. 오랑우탄은 분명히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림자는 사람이었나? 오랑우탄을 그림자가 보낸 것인가? 모르겠다.

상훈의 시도는 실패했다. 생각했던 유일한 방법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막막했다. 이 이질감을 어디서, 어떻게 없애야 하지? 만약 그림자를 제외하고 상황을 바라본다면?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차례대로 상황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5주 전 발렌시아로 휴가를 떠났다. 여행이 잘 마무리되던 중 불현듯 현재 이질감이라고 부르는 느낌이 찾아왔다. 그것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히고 있다. 정확히 그를 타격하거나 통증을 주는 것은 아니나 천천히, 또는 급작스럽게 상훈을 잠식해가고 있다. 한 인간의 주체성을 망가뜨리고 있다.

자신의 그림자라고 주장하는 존재를 만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림자는 찾아왔던 방식 그대로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일단 원래 계획되어있던 일정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어서 이것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마치 벨크로가 달린 바지를 입고 도깨비바늘 사이를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돌아온 지 3주 만에 다시 그림자를 만났던 계단을 찾았다. 혹시 몰라서 당시 그림자를 만났던 날의 일정까지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첫 만남에서 그림자는 상훈과 그림자의 총체성에 대해 말했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총체적인 나’의 필요에 의해 잠시 개념적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상훈은 생각이 넘쳐 댐의 수문을 열듯 입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의 원흉은 나 자신인가?’. 스스로 꾸준히 용암을 만들어 내며 불타고 있었던 것인가? 또 다른 개념적인 존재와의 만남에 대비해야 하는 것인가? 그림자는 그저 내가 앞으로 만나야 할 수많은 존재중에 하나였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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